아름다운 주종관계
- 에베소서6:5~9 -
샬롬선교회
[에베소서6:5~9]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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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의 복음이 부부 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 그리고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부부, 부모와 자식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회를 형성하는 관계의 근간입니다. 또한 가정 안에 존재하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도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부분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존재였습니다.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이번 본문을 읽어 봅시다.
+ 본문에 나오는 '주인과 종'의 관계를 교회에서 주종관계에 있는 자로 확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예를 들어, 목사와 신도라는 입장, 리더와 그 무리, 즉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책임을 맡은 자와 그 사람을 따르는 자들의 관계입니다. 교회도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에 그 틀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과 각 교회에 있는 성도들의 관계도 새로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주인과 종의 관계'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인격의 존엄성이라는 대전제
+ 다시 한 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가정의 관계의 큰 전제를 살펴봅시다.
① 그것은 에베소서5:21에 나오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하라'는 것이 대원칙입니다. '서로 복종하라'는 것은 매우 완곡한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서로 복종하라'는 것은 거기에 주종관계, 권위와 복종, 상하관계라는 질서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복종이라는 표현이 사실 중요한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관계를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번 보아왔지만, 이 '서로 복종하라'는 표현을 여러 성경 번역본에서 살펴보면,
② 그것은 서로를 '섬기는 것', '서로 양보하는 것', 그리고 '상대를 세워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③ 그리고 그 의미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인격의 존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이 '인격의 존엄성'을 생각할 때, 특히 자녀의 인격의 존엄성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그것은 '자녀가 결코 부모의 소유물로 여겨지지 않고, 또한 부모의 꿈을 실현하는 도구로 여겨지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이 맡겨주신 존재로 인정받고, 결국 자녀가 스스로의 의지로, 사람으로서 자립해 나갈 권리가 존중되는 것'입니다.
2. 종인 동시에 친구라는 신기한 관계
+ '서로 복종하라'는 것은 서로 상반되는 표현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이번에는 또 하나의 상반되는 표현, 신비한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에 대해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요한복음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① “나는 더 이상 너희를 종(노예)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느니라.
② '종'과 '친구'... 이것은 '있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참으로 이상한 관계입니다.
+ 성경에서 말하는 '종'과 '친구’: '종'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를 말하지만,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의 종 ○○'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최고의 영광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하나님의 종'은 사람에게 붙일 수 있는 최고의 칭호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 이스라엘의 왕을 대표하는 '다윗'을 각각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렀고, 신약의 사도를 대표하는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종(노예),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 한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렀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렸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위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을 믿은 사람입니다. 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구원의 계획을 보여주셨습니다. '친구'로서 말입니다. 이것저것 율법을 지키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신뢰의 관계를 맺는 것이 그의 소명이자 평생의 과제였습니다. 그가 한 일은 믿음으로 이삭을 낳은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단 한 명입니다. 대단한 업적은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친구'가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서로 믿을 수 있는 관계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는 더 이상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고 말씀하셨는데, ‘친구’란 어떤 관계일까? 성경에는 '다윗과 요나단이라는 훌륭한 우정'이 기록되어 있는데, 우정이란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고, 결코 상대를 착취하거나 속박하거나 지배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대가 빛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우정을 가진 '종의 모습'이 바로 에베소서 6장에서 말하는 '종의 모습'입니다.
+ 이 세상에서는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스스로 소개한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친구입니다. '친구'로서 서로 섬기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전혀 새로운 관계입니다.
+ 권위를 우산으로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또 그것을 우산으로 쓰고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하라는 섬김의 정신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https://meigata-bokushin.secret.jp/swfu/d/auto_5jicGL.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