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잔"의 의미

- 누가복음 22:35~46 -

 

* 본문에는 두 가지 내용이 제시되어 있다. 하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겟세마네에서의 예수님의 기도이다.

 

1. 새로운 사태에 대비해야 할 것 (35~38)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리신다. 그것은 예수님과 관련된 일이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죄인 중에 계수되리라'고 예언하신 말씀이 성취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여러 번 말씀하셨듯이, 예루살렘에서 종교 지도자들에게 잡혀 고난을 받고, 버림받고, 죽임을 당할 것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당연히 제자들에게도 어려움이 닥칠 것을 예상하고 지시하신 것이다.

 

* 지금까지 제자들이 선교지로 파송될 때 예수님께서는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제자들을 받아줄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런 보장이 없다. 마음을 열고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은 지갑이 있는 자는 지갑을 가지고, 가방이 있는 자는 가방을 가지고, (호신용 단검)이 없는 자는 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서 가지라"고 지시하신 것이다.

 

*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금까지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것임을 알려주려고 했던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주여. 주여, 여기 칼이 두 자루가 있나이다."라고 말하자, 예수님은 "그것으로 충분하다"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으로 충분하다'(新改訳)로 번역된 구절은 원문에서는 '충분한'이라는 형용사 '히카노스''~이다'라는 뜻의 동사 '에이미-'가 사용된 것뿐인데, 문제는 '무엇이 충분한가', 그 이해하기에 따라 다음과 같이 다르게 번역되는, 말하자면 난해한 구절이다.

[신공동번역] "그것으로 충분하다"

[프란치스코회역] "이제 그것으로 충분하다"

[柳生訳]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

[바르바로 역] "이제 그만" (각주에는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야기를 중단하고 '이제 그만'이라고 말씀하셨다"고 되어 있다.

[이와나미 역] "(그런 것으로) 충분하냐"라는 조금 아이러니한 번역이 되어 있다.

 

2. 예수님이 기도하신 말씀 - '이 잔'의 의미

 

*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잔'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지금까지 내가 이해한 ''의 의미는 '진노의 잔', '심판의 잔'의 의미로 이해했는데, 최후의 만찬의 흐름에 있는 ''으로 생각할 때, 혹은 '유월절'이라는 유월절적 관점에서 이 ''을 생각할 때, 새로운 면이 보인다.

 

* 예수님과 제자들이 유월절 식사를 한 것이 같은 장 14절부터 기록되어 있다. 참고로 누가복음 22장에는 ''으로 번역되는 '포테-리온' ποτηρίον4번 나온다(17, 20, 20, 20, 42). 모두 같은 단어이다. 마태복음 20:22에는 '내가 마시려는 잔'이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요한복음 18:11에서는 그 잔을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마셔야만 하는 ''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이라는 그릇 자체가 아니라 잔의 내용물이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유대적(히브리적)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이 잔''유월절 식사'에서 마시는 '네 번째 잔'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네 번째 잔'은 유월절 식사의 '완성의 잔'이면서 동시에 '찬양의 잔'이기도 하다. <각주>

 

* 겟세마네 기도에서 예수님은 이 네 번째 잔, 즉 하나님의 어린양 그리스도로 맺어질 새 계약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완성을 의미하는 '네 번째 잔'을 마셔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극심한 고통을 맛보아야 하는 잔이었고, 겟세마네의 기도에서 예수님은 그 고통 때문에 주저하고 계신다. 도저히 마실 수 있는 잔이 아니었다. 그래서 천사들이 하늘에서 예수님께 나타나 '힘을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누가복음 22:43).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마침내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처럼 땅에 떨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기도가 통했기에 예수님은 '일어서셨다'고 한다. '일어서다'라는 동사는 '아니스테-' άνίστημι, 말하자면 부활의 용어이다. 바로 예수님은 기도에서 이미 승리하셨고, 그 이후에도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포로로 잡혀 수난의 길을 가신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즉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나이다.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나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심으로써 누가복음 22;42'이 잔'을 다 마시게 된다. , 유월절 식사의 마지막 잔인 '완성의 잔'을 다 마신 것이다. 이 잔을 다 마신 사람은 예수님 한 분뿐이었다.

 

< 각주 >

 

* 전통적으로 유월절 식사에서는 '네 잔'에 포도주를 부어 마신다. 그 네 잔은 출애굽기 6:6, 7'나는...하겠다'는 네 가지 약속에 근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애굽기 6:6-7] "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7.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 영어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은혜로서의 강한 의지가 보인다.

I will bring you 

I will rescue you

I will redeem you 

I will take you / and I will be your God

-이를 바탕으로 이와 관련하여 네 개의 잔은 다음과 같이 불리고 있다.

 

(1) '거룩한 잔' 유월절 식사가 거룩하게 시작될 때 마시는 잔이다.

 

(2) '감사의 잔' 출애굽기의 10가지 재앙이 내리는 장면이 낭독될 때마다 잔에 손가락을 담그고 포도주를 한 방울씩 떨어뜨려 마신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잔째인 ''을 마신다. 이 잔은 '심판의 잔'이라고도 한다. 시편 113, 114편이 기도문으로 낭독된다.

-전반부의 의식적인 식탁이 끝나고, 여기서 식사를 하게 된다.

 

(3) '속죄의 잔' 저녁 식사 후 세 번째 잔에 포도주를 채운다. 여기서부터 후반부의 의식적인 식탁이 시작된다. , 성찬식의 기원이 되는 부분이다. 주 예수님께서는 떡을 받으신 날 밤, 빵을 취하여 감사함으로 떼어 주셨다. 여기서 빵(마짜)은 식후 디저트(아피코멘)로 남겨둔 세 겹의 빵(마짜)을 말한다.

 

*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것을 행하라."(마가복음 14:22) - 예수님은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여기서 모두 아피코-멘을 먹는다. 다 먹은 후 예수님은 세 번째 잔을 들고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26:29),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태복음 26:28)라고 말씀하시며 건네주셨고, 각자는 여기서 세 번째 잔을 마신다.

 

* 예수님과 제자들은 식사를 마친 후 할렐루야 시편을 부르며 겟세마네 골짜기 너머, 즉 올리브 산으로 가셨고, 예수님은 기도하셨다. 아직 마지막 네 번째 잔은 다 마시지 않은 것이다. 만약 여기서 네 번째 잔을 다 마셨다면, 그 이후의 수난과 죽음에 이르는 사건은 의미가 없어진다.

 

(4) '찬양의 잔', '완성의 잔' 유월절 식사에서 '네 번째 잔'은 주님을 찬양한 후에 마시는 잔이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찬송을 부르며 올리브 산으로 나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유대인의 전통적 '유월절 식사'는 예루살렘 성벽 안에서 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따라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벗어나 인적이 드문 감람산으로 나간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 올리브 산으로 나가기 전 예수님과 제자들은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여기서 '찬송가''할렐루야 시편'이다(아마도 시편 115~118편 및 시편 136편으로 추정된다). 누가는 찬송가를 불렀다는 기록은 없지만, 전통적 '유월절 식순(하가다)에 따라 시편을 불렀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특히 마지막 시편 118편은 '메시아적 시편'으로 죽음과 부활을 예언한 '집을 짓는 자들이 버린 돌이여. 그것이 주춧돌이 되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다. 우리 눈에는 기이한 일이다"(118:22~23)라는 구절은 유명하다.

 

* 그런데 문제는 유월절 식사에서 마지막으로 마시는 '네 번째 잔'에 관한 것이다. 어느 공관복음서에도 식사 자리에서 그것을 '마셨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든 공관복음서에는 공통적으로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은 공통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여기서 '이 잔'은 당연한 흐름으로 '유월절 식사'의 마지막 잔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 실제로 유월절 식사의 '네 번째 잔'이 다 마신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누가복음 23:46)라고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셨을 때이다. 요한복음은 이를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다(요한복음 19:30). 즉 예수님은 다음날(유월절은 니산월 14, 다음날 저녁까지) 오후 3시경, 십자가 위에서 홀로 유월절 식사의 '네 번째 잔'을 마신 것이다. 참고로 오후 3시는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유월절 양을 도살하는 시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인가? 도살된 어린양 그리스도를 통해 '새 언약'이 하나님 편에서 준비되고 실현된 것이다. 제자들은 아무도 이 잔을 마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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