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심
- 마가복음 16:12-13 -
샬롬선교회
[마가복음 16:12-13] “12.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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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복음 16:12-13, 누가복음 24:13-32
1. 부활부터 승천까지 40일의 의미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다시 한 번 다양한 측면에서 가르치신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닫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나타나신 목적은 다름 아닌 제자들의 이해의 틀을 깨뜨리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이해의 틀로는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통해 제자들의 이해의 틀은 깨지기 직전이었지만, 그것을 결정짓기 위해 예수님은 제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올바른 이해의 방법을 가르치실 필요가 있었다고 믿는다. 약속의 성령이 강림하면 진리에 대한 눈이 열리지만,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해 엠마오의 제자들, 베드로와 도마, 그리고 다른 제자들에게도 그 준비 기간으로 예수님이 직접 가르치시는 것이 필요했던 것 같다.
부활부터 승천까지 40일이라는 기간, 성경에서 40일, 40년이라는 숫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노아의 홍수 때 40일,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기까지 40일, 약속의 땅 정찰 기간인 40일, 이스라엘의 광야 방황 40년,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기간 40년, 예수님의 광야의 유혹 40일...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무언가를 시험받는 기간', '훈련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훈련의 기간', 혹은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 기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수님의 부활 후 40일간의 현현은 '새로운 것을 위한 준비 기간'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여기서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처우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마가복음은 "예수께서 다른 모습으로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16:12)고만 기록되어 있지만, 누가복음은 그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2. 성경 전체에서 자신에 대해 쓰여진 것을 설명하신 예수님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11km 정도 떨어진 엠마오라는 시골 마을에 실망하고 돌아가는 두 제자에게 다가오셨다. 두 사람은 예수님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성경(구약성경)에 예언된 것임을 알려주셨다. 만약 그들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함께 유하사이다."라고 무리하게 부탁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성경을 이야기해준 사람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두 제자는 식탁에서 예수님이 빵을 떼어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셨을 때,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임을 알았다. 게다가 그들은 예수님이 성경을 설명해 주셨을 때에도 마음이 뜨거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점이 중요하다.
나중에 예수님은 사도들에게도 나타나시는데, 그때도 "나에 관하여도 성경에 기록된 것은 반드시 다 이루리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시며(부활 전에도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셨다) 성경을 깨달을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눅 24:44~45).
예수님의 현현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즉, 성경에 기록된 것, 특히 예수님, 즉 메시아에 대해 기록된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사도 베드로는 성경을 근거로 한 사람 빠진 사도직의 보충을 제안할 때나 오순절 설교에서 자주 성경 말씀을 인용해 성령강림을 설명하며, 예수님이 죽음으로 연결될 수 없음을 성경을 통해 입증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베드로의 이미지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무식한 베드로가 메시지를 전할 때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해석할 때도 모두 성경을 근거로 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런 준비를 시키기 위해 예수님은 현현하셨다고 할 수 있다.
3. 우리 이해의 틀을 깨뜨려라.
우리의 이해의 틀을 깨뜨리는 것 -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 사실은 잘 깨닫지 못한다. 우리 이해의 틀을 깨기 위해서는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그것은 실질적으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전체적 관점에서 예수님의 사실 - 사건과 가르침 - 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 관점을 잘못 볼 때,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기 때문에 그 하나님 나라의 완성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보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의 모든 부분은 그 관점에서 성령에 의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해의 틀이 깨지고, 성경 전체의 모든 조각들이 하나로 맞물려 돌아가는 그런 읽기를 하고 싶다. 그러면 엠마오의 두 제자처럼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풍성하게 갖게 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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