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맹인의 치유

- 요한복음 8:12, 9:1-7, 39 -

샬롬선교회 


[요한복음 8:12, 9:1-7, 39]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9: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9: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9: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9: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9: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9;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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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복음)는 모두 '맹인 개안의 기적'을 다루고 있다. 게다가 그 기적은 공관복음서의 경우 예수의 전도 생애 후반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공관복음서 후반부의 큰 주제는 '예수님은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라는 것이다. 참고로 전반부의 주제는 '예수님이란 누구인가'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제자 중 가장 먼저 제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한 것이 복음서 전반부의 주제에 대한 대답이다. 이때부터 예수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서 장로, 대제사장, 율법학자들로부터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을 제자들에게 반복해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깨닫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수님은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반복해서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감히 그것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도 없고, 그 의미를 묻는 사람도 없었다.

 

예수님이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중대한 일을 말씀하시는데, 제자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찾아와 자신의 아들들이 장차 출세할 것이니 한 명은 당신의 오른쪽에, 한 명은 당신의 왼쪽에 두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를 지켜보던 다른 제자들은 이 일로 인해 '화를 냈다'고 한다. 자신들도 오십보백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매우 슬퍼하셨고, 외로움을 느끼셨을지도 모른다. 그런 와중에 각 복음서가 일제히 '맹인의 눈이 열린' 기적의 기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눈이 열리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 마태복음 9:27-31, 20:29-34  

두 맹인에게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눈을 만져주셨다.

 

+ 마가복음 10:46-52

맹인이며 거지였던 바디매오에게 예수님은 "어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 누가복음 18:35-43

한 맹인에게 예수님은 "보게 되라"고 명령하신 후 "네 믿음이 너를 고쳤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조금 다른 설정이다. 요한복음에서는 '빛과 어둠'이라는 주제 속에서 어둠의 세력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 사건이 자리 잡고 있다.

 

요한복음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은 어둠 속을 걷는 자들을 향해 하신 말씀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자들이다.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자들은 누구 하나 자신이 어둠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수님도 그들과의 반복된 대화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8: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라고. '듣지 않으려 한다'가 아니라 '듣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느냐 안 기울이느냐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들을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요한복음 8: 44 이후부터 예수님은 그들의 아버지인 마귀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한다. 마귀는 처음부터 진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거짓된 자, 아니 '거짓의 아버지', 즉 모든 거짓의 근원이 되는 존재라고 말씀하신다. 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가? 그것은 그들이 거짓 아버지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수님을 적대시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8:47)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유대인 역시 유대인으로서 예수님께 "당신이 악령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8:52)라고 말함으로써 양자의 결정적인 단절이 드러나고 있음을 요한복음 8:52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단절의 끝에는 그들(유대인)이 돌을 가져다가 예수님에게 던지려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이 사건 이후 요한은 요한복음  9장 전체를 사용하여 '선천적 맹인 치유 사건과 그에 얽힌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1. 선천적 맹인을 향한 예수님의 시선

 

공관복음서는 맹인이 "다윗의 자손이여"라며 예수님을 찾아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9:1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 쪽에서 먼저 다가오신다. 예수님께서 '선천적 맹인'에게 주목하신 것이다.

제자들은 이때 질문한다. "선생님. 그가 선천적으로 맹인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입니까? 아니면 그의 부모입니까?" 예수님은 재빨리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일이 이 사람에게 나타나기 위함이다"(9:3).

 

고통의 현실에 부딪혔을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무슨 벌이 아닌가, 조상의 원한이나 인과응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어떤 종교에서는 분명히 조상의 영혼을 제대로 제사지내지 않아서 이런 불행이 일어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예수님의 관점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의 대답이었다.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맹인으로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이 사람에게 나타나기 위함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과거가 아닌 미래로 시선을 돌린다. 이 맹인에게 필요한 것은 고통의 원인을 캐묻는 것이 아니라 소경의 눈에 빛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믿는 것. 9:7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요한복음 9: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요한복음 2장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도 포도주가 떨어지는 상황에 대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하인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물동이에 물을 가득 채웠을 때, 그것은 포도주가 되어 있었다. 포도주가 없는데 물동이에 물을 한꺼번에 채우는 행위는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했다. 바로 여기이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4장에 나오는 외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 찾아간 아버지가 예수님께 들은 말씀은 무엇이었을까? "돌아가라. 네 아들이 다 나았으니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아들의 아버지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믿고 돌아갔던 것이다.

 

요한복음 5장 베데스다 연못에 38년 동안이나 누워있던 병자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무엇이었을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다. "일어나서 걸어가라"였다. 그 사람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따랐다. 그러자 그는 일어설 수 있었다.

 

요한복음 9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믿음이 요구된다.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일로 눈이 열리는 것일까? 적어도 맹인은 예수님 말씀대로 했다. 그러자 눈이 뜬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행하자. 그러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2. 맹인의 개안의 기적이 가리키는 것

 

요한은 여기서 '선천적 맹인'이 눈을 떴다고 했다. ', 다행이다'라는 것을 기록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육신의 치유를 계기로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의 중요성을 지금부터 기록하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요한이 다루는 예수님의 기적은 단순히 신기한 기적이 아니라 '표적'이라고 한다. '표적'은 어떤 것을, 더 중요한 것을 가리키는 징조이다. 선천적으로 눈이 멀었던 사람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이 가리키고자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인이다.

 

요한복음 9장 전체의 결론은 39절에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자신은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맹인이 되어 결코 진리를 깨달을 수 없게 된다는 선언이다. 예수님은 반복해서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자는

(1) 결코 어둠 속을 걷지 않는다. '어둠 가운데'란 사탄의 거짓에 지배당하는 것을 말한다. 그 거짓된 아버지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2) 생명의 빛을 가진다. (요한계시록 12:12) 

 

여기서 '생명의 빛''진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알 수 있다. ,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를 맺으면 진리의 빛으로 깨달음을 얻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다는 뜻이다.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 진리를 갖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요한은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을 믿으면 눈먼 자가 볼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예수님을 거부하면,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실제로는 소경으로 간주될 수 있음을 예수님은 경고하신다.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영적인 눈이 뜨이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이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실로암'의 의미)이신 예수님께 나아가 그분께, 그분의 말씀에,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러야 한다.

 

요한복음에서 ''이라는 단어가 쓰인 것은 이 구절뿐이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침을 뱉다', '침 뱉음을 당하다'라는 표현이 모욕적인 행위(수치를 당하게 하는 것)로 다음과 같이 쓰이고 있다.

(1) 마태복음 27: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2) 마가복음 10: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3) 누가복음 18: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예수님의 수난이 공관복음서에서는 수동적인 반면, 요한복음서에서는 능동적이고 스스로 고난을 받는다는 점이 강조된다. 예수님이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에 바르는 일련의 행위는 이를 암시하고 있다. 요한복음의 수난은 수동태가 아니라 능동태의 주체적 행위인 것이다. 게다가 땅에 침을 뱉었다는 행위도 상징적이다. 왜냐하면 ''으로 번역된 어휘는 헬라어로는 '카마이' (χαμαι)인데, 이를 히브리어로 바꾸면 '-아다--'(הָאֲדָמָה)이기 때문이다. 창세기에 따르면 최초의 사람은 '아담'('-아담' הָאָדָם)이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마지막 아담)의 모형이다(로마서 5:14). 본체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으로서의 예수님에게 있다. 그 분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채찍질 당하는 수치를 당하는 것이다. '땅에 침을 뱉고, 그 침으로 진흙을 만들어 그 진흙을 맹인의 눈에 바르다'는 표현으로 예수님이 수난을 당하실 분이 될 것을 예수님은 징표로 나타내셨고, 그것을 요한이 기록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땅에 침을 뱉고, 그 침으로 진흙을 만들고, 그 진흙을 맹인의 눈에 발라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게 하는 일련의 행위는 당시에는 안식일 위반이며, 죽어 마땅한 죄악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맹인에게 "땅에 침을 뱉고 그 침으로 진흙을 만들어, 그 진흙을 맹인의 눈에 바른다' 뿐만 아니라, "시로암(보냄을 받은 자, הַשִּׁלֹחַ)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다는 점이다. '연못''베레--' (בְּרֵכָה)이며, 어원은 '-라프'(בָּרַךְ)'무릎을 꿇다'라는 의미와 '축복받다'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는 말은 보내신 메시아 앞에 무릎을 꿇으면 축복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 축복은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게 되는' 개안(開眼)의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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