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

- 요한복음 14:25-31 -

샬롬선교회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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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장에서 처음 등장하는 '평안' 에이레-- είρήνη14:272, 16:331, 그리고 20장에 3번 사용되었는데, 20장의 3번 모두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의 인사말 - "평안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에이레-네 휴민-' ερήνη μν.)로 사용되었다(20:19, 21, 26).

 

그러나 14, 16장에서는 각각 '나의 평안', '내게 있는 평안'으로 표현하고 있다. '평안'을 제자들에게 주시고, 제자들도 그 평안을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어느덧 예수님은 제자들이 따라갈 수 없는 곳으로 가려고 하신다. 예수님을 따라온 제자들이 불안해하는 것도 당연하다. 14:1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 14:27에서도 다시 한 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고 있다. '불안과 두려움', 그에 대응하는 단어가 '평안'이다.

 

1. '예수의 평안'이란?

 

예수님의 '평안' είρήνη'편안함'이나 '안식'과는 다르다. 전자의 '편안함'의 헬라어는 '아나파우시스' αναπαυσις, 노동의 일시적 정지에 의한 휴식을 의미한다. 후자의 '안식'의 그리스어는 '카타파우스' καταπαυσις, 고통과 수고로움에서 벗어나 편안히 쉬는 것을 의미한다. '안식', '안식일'을 히브리어로 '샤바트'라고 하는데, 그 헬라어 번역은 후자의 '카타파우시스' καταπαυσις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평안' είρήνη는 어떤 의미인가 하면, 그것은 히브리어 '샬롬' שָׁלוֹם에 가까운 의미를 가지고 있다. ,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총칭을 의미하는 말로, 인간의 실존을 위협하는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을 이겨내는 힘으로서의 '평안'이다.

 

* 샬롬의 의미:

예수님의 평안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밀한 교제에서 주어지는 평안이다. 사람이 한 번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에 마음이 지배를 받으면 많은 힘을 잃게 된다. 혹은 사람 안에 있는 '불안과 두려움'이 모든 생각과 행동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심, 노력'이나 '친절, 상냥함' 속에도 그 안에 불안과 두려움이 지배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성자 예수님은 '나의 평안'을 제자들에게 주시고자 하셨지만, 제자들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성자 예수님이 얻으신 비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비결은 아버지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이다. 성부와 성자의 그 친밀한 관계를 성령을 통해 키워야 한다.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자가 성부께 머물렀던 것처럼 '머무는' 법을 배워야 한다.

 

2. 평안과 성령의 관계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는 목적이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묵상의 목적은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기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자 예수를 믿는 자에게 항상 함께하시는 '보혜사'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요한복음 14:26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성령은 성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중요한 것들을 기억나게 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지셨던 '평안'을 얻는 비결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모든 중요한 것들을 깨닫게 해 주실 뿐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시다. 이 성령의 '도우심'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 분의 도움 없이는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들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없고, 보는 것과 듣는 것에 따라 항상 마음이 흔들리고 방황하게 된다. 그래서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 준다. 우리의 생존 보장과 방어를 보장해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신뢰는 성자 예수님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러나 성자는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부와 성령이 끊임없이 관여하고 계신다. 이 관계의 신비 속에 우리가 살아갈 때, 세상의 평안과 전혀 다른 예수님의 '평안'이 우리 마음을 채우게 될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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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불안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모든 축복의 총칭을 의미하는 '샬롬' שָׁלוֹם으로서의 '평안'(헬라어로는 '에이레-' είρήνη)이다. 항상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걱정하면서 동시에 예수님의 평안 가운데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수님의 평안은 예수님이 가지고 계셨던 평안이고, 그것은 예수님과 늘 함께 하셨던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이며, 성령의 열매이다. 그것은 성자 예수님이 성부께 머물러 계셨던 결과로 주어진 것이다. '머무름'은 다음 요한복음 15장에서 더 자세히 다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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