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
- 요한복음 13:1-11 -
샬롬선교회
[요한복음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키워드; '자기 때', '남김없이 보여주신 사랑'
서언
요한복음 13장 1~11절까지의 묵상에서는 13장 1절의 '나의 때'(my time)와 '그 사랑을 남김없이 나타내셨다'는 부분을 다룬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행위 부분은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을 참고한다.
1. '자기 때'란?
+ 요한복음 13장 1절에는 '나의 때' my time, 이라고 되어 있다. 이 '때'는 헬라어로 '호-라' ώρα이다. 아래 성경 구절의 '때'는 모두 '호-라' ώρα가 사용되었다. 아래는 요한복음의 '나의 때', '예수님의 때'를 인용한 구절이다. [※]
2:4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 7:30 "사람들이 예수를 잡으려 하였으나, 아무도 예수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이는 예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8:20 "...그러나 아무도 예수를 잡지 못하였다. 이는 예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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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이르렀다'고 말씀하셨다."
12:27 "지금 내 마음이 요동치고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아버지여. 아버지, 이 시간부터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라고 말할까? 아니, 이 때문에 내가 이 지경에 이르렀나이다."
13:1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이른 줄 아셨으니..."
16:32 "보라. 너희가 흩어져 각각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나만 남게 될 때가 올 것이다."
17:1 "'아버지여, 때가 되었습니다. 때가 이르렀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이 영광을 드러내 주십시오.'"
+ 시간을 나타내는 어휘는 그 외에 '크로노스' χρόνος(NT/54)와 '카이로스' καιλός(NT/85)가 있다. 전자는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 또는 '기간'을 의미한다. '오랜 기간, 한동안, 시기' 등에 사용된다. 후자의 '카이로스'는 '정해진 특정한 때'를 의미한다.
+ 구약성경 시편 31편 15절의 '나의 때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의 '때'는 LXX 번역에서는 '카이로스'로 번역되어 있다. 전도서 3장 1절의 "천하 만물에는 기한이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느니라"의 '기한'에는 '크로노스' χρόνος가,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느니라'의 '때'에는 '카이로스' καιλός가 쓰여 있다. (모두 LXX 번역). 그리고 2절~8절에 사용된 '때'는 모두 '카이로스'이다. 실로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일은 때(카이로스)에 합당하고 아름답다'(11절)는 것이다.
+ 신약에서는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 예수님이 선교를 시작하실 때 말씀하신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때'는 '카이로스' 카이엘로스이다. 또한 에베소서 1장 10절의 '때가 차매'의 '때'도 역시 '카이로스'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마지막 단계의 도래를 의미한다.
+ '카이로스' καιλός는 신약성경에서 총 85회 나온다. '그때, 그 때, 그 무렵, (수확의) 시기, 때(의 징조)' 등으로 번역된다.
+ 그런데 요한복음 13:1에 나오는 '호-라' ώρα는 본래 시기나 계절 등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어떤 특정한 사건을 수반하는 때의 징조를 의미하는 것 같다. 이 말씀의 좋은 해석의 예가 요한복음 16장 21절에 있습니다.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고통을 당한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는 기쁨을 위하여 그 심한 고통을 더 이상 잊어버린다." 라고 한 것처럼 요한은 새로운 것을 낳기 위한 출산 고통의 사건(징조)으로 이 '호-라' ώρα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 '나의 때' 혹은 '예수의 때'는 하나님의 '영광의 때', 즉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기쁨의 사건을 낳는 산고(産苦)의 때로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의미한다. 또한 죽음에서 부활하여 높이 들림을 받아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시간도 포함한다. '영광의 때'는 동시에 '어둠의 때'가 최고조에 달할 때이기도 하다. 바로 그때가 아버지와 아들이 영광을 드러내는 때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최고조에 달할 때이다. 네 복음서에서 예수의 생애는 모두 수난의 시간을 정점으로 그려지고 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이어지는 부활의 사건은 사복음서가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 요한복음 13장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이 여기까지 오셔서 '내 때'가 왔음을 알리신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에게는 영광의 시간이었지만,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난이라는 '산고의 고통'을 거쳐야만 했다.
2. '남김없이' 보여주신 사랑
+ 13장 1절에서 맛보고 싶은 또 하나의 어휘는 '예수님은 그 사랑을 남김없이 보여주셨다'(새번역)는 말씀이다. 저는 이 말씀에 큰 감명을 받는다. 요한복음에서 1~12장까지는 '생명'과 '빛'이 강조되고 있지만, 13~17장에서는 특히 '사랑'이 강조되고 있습니다(동사와 명사를 합쳐 31회).
+ 주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소유를 사랑하셨다"(13:1)고 했다. '자기 것'은 예수님을 받아들인 자(작은 무리)를 의미한다. 고의적으로 예수님을 거부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분의 백성'(요 1:11)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세상에 있는 자기의 것을 사랑하셨다'는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 이 13장 1절 구절에서 "(사랑을) 남김없이"로 번역된 '에이스-테로스 εις τελος'는 '~까지, ~에'를 나타내는 전치사 '에이스 εις'와 '마지막, 실현, 끝'을 의미하는 '테로스 τέλος'이다. '텔로스' τέλος는 요한복음에서는 여기밖에 나오지 않지만, 신약성경에서는 40번이나 사용되었다. '테로스' τέλος는 '끝나다, 끝나다, ~하다, 다하다, 이루다, 성취하다, 실현하다, 완성하다'를 뜻하는 동사 '테레오' τελέω의 명사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19:30)는 바로 이 '텔레오'이다.
+ 나가이 나오히지 씨의 '요한복음 어구해설'에 따르면, 이곳은 '자기 때가 이르렀음을 알고 먹이신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재림의 마지막 날까지라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프란치스코회 번역에서는 '끝까지'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그 주석으로 예수의 생애의 '끝까지', 그리고 '철저하게'라는 두 가지 의미가 모두 있다고 한다.
+ 여러 성경의 번역을 살펴보면 '에이스 테로스' είς τέλος에는 '끝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하다'라는 의미와 '극한까지, 철저하게, 완전히, 궁지에 이르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것의 상징적인 행위로 예수님의 '세족식' 행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순한 세족식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것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사랑의 궁핍함이 앞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의 때'임을 알게 된다.
+ 추가사항(2015.3.13)
13장 1절의 '그 사랑을 남김없이 나타내셨다'는 원문에는 '그들을 극진히 사랑하셨다'로 되어 있다.
예외적으로 요한복음에서는 7장 6절과 8절에 '나의 때'(새번역)로 번역되어 있지만, 원어로는 '카이로스' kαιλος로, 그것도 세 번이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나의 때 καιλος는 아직 오지 않는다. 그러나 너희의 때 καιλος는 언제라도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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