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위로

- 고린도후서 1:3-7 -

샬롬선교회

 

[고린도후서 1:3-7]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서언

 

하나님은 환란을 당하는 사도들을 위로하셨습니다. 그로인하여 사도들도 환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한 자마다 고난을 당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위로로 그들을 위로하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1. '위로'라는 말의 의미

 

본문, 3-7절에 '위로하다', '위로'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동사 '파라카레오-'(παρακαλέω)4. 명사 '파라카레-시스'(παράκλησις)6회입니다. 동사의 '파라크레오-'(παρακαλέω)'파라'(παρα)'옆에'를 의미하고, '카레오-'(καλέω)'부른다'를 의미하는 합성어로 '옆에 부른다'를 의미합니다.

참고로, 그것이 인격화된 것이 '파라크레-토스'(παράκλητος), '보혜사'(Counselor)라고 불립니다. '보혜사''옆에 부르신 자', 우리의 '옆에 다가와 주시는' 성령을 말합니다.

 

2. '위로'는 '고난을 견디는 힘'

 

+ '위로'와 '고난'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던 늙은 시므온이 부모를 축하하며,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누가복음 2:34-35)"라고 말했듯이 '위로'란 어려움이나 고난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용기를 주고 거기에 맞서게 하는 것, 곧 고난을 견디는 힘(고린도후서 1:6)을 의미합니다.

 

+ 바울이 여기서 '위로'라는 어휘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것을 견뎌내는 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가 사도로 부름을 받은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사도행전 9:15-16).

 

[사도행전 9:15-16]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 이 예수님의 말씀은 다메섹에 사는 예수님의 제자인 아나니아를 통하여 바울(그 당시는 '사울'이라고 불렸습니다)이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얼마나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를 보여 준 말입니다. 사도로 선택되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로서의 표적이라고 바울은 이해했습니다. 고난이 없는 사도의 임무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 사도와의 차이입니다(고린도후서 11:23-27).

 

[고린도후서 11:23-27]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 '위로'의 연쇄 

 

+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겪은 바울은 위로의 연쇄[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우리로부터 모든 사람들에게]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 진주는 조개 속에 이물질이 들어가서 생긴 결정인 것처럼 '위로'의 경험은 '어떠한 고난 속에 있는 사람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 이사야 40장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로 시작합니다. 원문은 '나하무- 나하무- 암미-'(נַחֲמוּ נַחַמוּ עַמִּי)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라고 계속됩니다. 40장은 아래에 보는 네 가지 위로가 있습니다.

 

'해방자에 의한 위로' = 이윽고 그 죄는 보상되고 해방된다는 약속. 두 배의 것을 주께로부터 받겠다는 약속. 이러한 약속은 완료 형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페르시아의 왕 큐로스에 의해 성취됩니다. 하나님은 이교의 왕조차 지배하시는 분입니다(2).

'목자에 의한 위로' = 주님은 양치기와 같이 자신의 백성을 기르고, 팔에 끌어당겨 품에 안고, 상냥하게 인도하시는 분입니다(11).

'창조자에 의한 위로' = '누가 ...를 한 것인가'라는 구문으로 채워놓고 있습니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고 말씀하시는 분입니다(12-26).

'영원자에 의한 위로' = 주는 영원한 하나님, 그 영지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지혜를 훨씬 뛰어넘는 분입니다. 그 주를 기다리는 자는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를 펼쳐 올라갈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위로'의 절정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31)"라고 말씀했습니다.

 

결언

 

사도들이 환난 중에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던 것같이 성도들도 환난 중에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로 말미암아 그들은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환난 중에 사도들을 위로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 아버지이신 위로의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