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 베드로전서 2:1-5 -

샬롬선교회 


[베드로전서 2:1-5]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말씀의/新改訳)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영의 집/新共同訳)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서언

 

신약성경의 서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것은 핵심의 부분을 찾는 것입니다. 나무에 비유한다면, 가지와 잎을 깎아내면 줄기의 부분이 확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신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정리됩니다. 그리고 줄기의 부분을 결정하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주요 동사를 찾는 것입니다. 주문의 동사를 찾아서 주문과 설명문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베드로전서 2장에 있는 주요 동사를 찾아보면 다음의 두 가지 동사를 찾을 수 있습니다.

* 하나는 본문 22, 말씀의 젖(영의 젖/신공동역)'사모하라'. 다른 하나는 25, 신령한 집(영의 집/新共同訳,新改訳)으로 '세우라'(세우기를 계속하라).

= 모두 명령형이지만 이 두 가지의 주요 동사에 다양한 설명구가 덧붙여져 있는 것입니다. 주체적·자발적인 의미가 강한 명령형입니다.

 

1.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사모(思慕)하다'는 국어사전에 '애틋하게 생각하고 그리워하다', '우러러 받들고 마음속 깊이 따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 구원받은 성도는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아도론 가라' αδολον γαλα, 말씀의 젖/新改訳, 영의 젖/新共同訳)을 사모해야 합니다.

아기는 몸이 안 좋으면 젖을 안 먹으려 하지만 정상적이면 엄마의 젖을 사모합니다. 아기는 엄마의 젖을 잘 먹을 때 건강하게 잘 자라게 됩니다. 이와 같이,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젖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것을 순수한 말씀이라고 말한 것은 이단사설들, 인본주의적 생각들이나 말들,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는 흥미 위주의 말들과 구별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사모해야 하며 성경의 바른 교훈을 늘 읽고 듣고 묵상해야 합니다.

 

+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할 이유는 영적으로 자라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에베소서 4:13-16). 또 디모데후서에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말했습니다(디모데후서 3:16-17). 히브리서는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장성한 자를 구별했습니다(히브리서 5:13-14).

 

베드로는 본문에서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말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긍휼과 은혜와 자비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인자하심을 통해 의롭다 하심을 받았을진대, 온전한 자가 되기를 힘써야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2.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라'

 

+ 말씀을 '사모하다'는 것은 개인적이지만, 두 번째 신령한 집으로 '세우다' 것은 공동체적입니다.

신령한 집('오이코스 프뉴마티코스' οικος πνευματικος, 영의 집/新改訳,新共同訳)이란, 하나님의 집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세워지다'는 것은 천지창조 이전부터 이루어진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서 불러내 주셨다면, 우리는 각각 그 집을 짓기 위하여 '선택을 받은 자', '존귀한 자', '살아있는 돌', '거룩한 제사장'으로서의 자각이 필요합니다. , 교회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관계가 공동체적이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가 선교적인 사명을 완수해 나가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관점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덧붙여서, 베드로의 서신(전서, 후서)에서는 '교회'라는 말은 한 번도 사용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수형으로 표현되는 '집합명사'와 복수형으로 표현되는 '보통명사'에 의해 '교회'가 표현되고 있습니다.

'흩어진 자들'(단수형)과 거기에 '기류자', '선택된 자들'(복수형).

'신령한 집'(단수형)'산 돌'(복수형).

'택하신 종속',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국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단수형)'나그네', '기류자'(복수형).

* 특히 이들은 이 세상에서 선교적인 사명을 담당하는 존재로 불리고 있습니다.

 

+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신약성도들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와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집니다.

신령한 집이라는 말은 성도들이 모여 건립되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교회는 돌들로 지은 건물에 비유됩니다. ‘신령한이라는 말은 교회가 단지 물질적 건물이나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고 성령께서 거하시는 집, 성령의 전인 것을 나타냅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3:16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말했습니다.

 

+ 또 우리는 신약교회라는 이 성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영적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제사장이라는 원어('히에라튜마' ιερατευμα)제사장들의 집단을 가리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다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들로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영적 제사들을 드려야 합니다. 그 영적 제사란 우리의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헌신과 봉사의 삶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모든 악독과 속임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을 버리고 경건하고 거룩하고 의로운 생활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합니다.

 

결언.

 

우리는 모든 종류의 악독과 거짓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 등의 악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함으로써 거룩하고 온전한 신앙으로 성장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으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