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스라엘의 역사, 문화, 지리적 관점에서 본 
-성경과 설교자들의 오해-

1. 뽕은 없는데 뽕을 친 이야기
   눅19장의 키가 작은 삭개오가 올라간 뽕나무는 시크모아라도 불리는 “돌무화과 나무(공동번역)”이다. 무슨 뽕이 여리는 뽕나무가 아니라 그냥 돌무화과 나무인 것이다. “나무에 올라가 주님을 기다리며 나무에 달린 뽕을 따먹고 시퍼런 입을 도포자락으로 훔치며 ‘삭개오야, 내려 오너라’하고 부르신 주님 앞에 이른 세리장.” 이런 설교를 들었고, 이런 어릴 적 주일학교 선생님의 성경이야기를 들어왔던 터라 우리는 뽕나무에 뽕이 없다는 이야기는 우리를 당황케 한다. “아니 정말 뽕(오디)이 없다구, 아니 그러면 뽕이 없는데 ‘뽕(?)을 친 거로구만.  그나무 이름이 뭐라고 했지?  “시크모아”인지 뭔지 그거 봐 뽕이 있긴 있었던 거로구먼 그게 시큼하다면서......“
 
착각하지 말 것은 눅17:5, 6의 뽕나무는 그냥 뽕나무(Mulberry)다. 결코 그 뽕나무가 무슨 신령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이 뽕나무에 올라갔던 그 세리장 삭개오의 뚜렷한 삶의 변화를 기억하고 있기에 여리고 이르는 모든 이들이 삭개오의 뽕나무에 촉각을 모은다. 지금도 여리고를 들어가다 보면 그 입구에서 마주치는 커다란 고목인 이 시크모아 나무를 보며 다시 한 번 우리의 오해 속에 빚어진 옛이야기를 떠올리며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2. 로뎀나무가 이거야, 차라리 죽는 게 났지
   엘리야가 이 나무아래 누워 죽기를 간구 했다더니 그 말이 이해가 된다. 브엘세바의 네게브 광야에서 만나는 로뎀나무는 우리를 그 날에 엘리야의 심정을 이해하게 한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픈데다가 그 뜨거운 햇볕아래 이런 나무그늘 아래 누워있었으니 차라리 죽는 게 났다고 했지. 아닐 이걸 무슨 그늘 좋은 사막의 오아시스에 있는 나무인 줄 알았더니, 아니 이거 아예 싸리나무라고 해야 되겠구먼.”  

이 로뎀은 공동번역에서 “싸리나무”, 또는 “노간주나무(시120:4)”, 대싸리(욥30:4)로 한국적인 상황에 이해를 돕도록 번역을 시도하였으나 번역의 통일성을 기하지 않고 있으며, 왕상19: 4, 5에서는 이것을 또한 “싸리나무 덤불”이라고 의역하여 처리하였는데 이것은 정확한 번역은 아닌 것 같다. 영어 번역들은 “노간주 나무(Juniper tree)” 또는 “금작화 나무(broom tree)”로 번역하고 있다. 이 로뎀(ם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