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파격적인 언행(2)

- 누가복음 6:1-11 -

샬롬선교회

[누가복음 6:1-11] “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2.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서거늘, 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하시며, 10.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11.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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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누가복음 6:5) / Κύριός στιν τοσαββάτου υἱὸς τοῦ ἀνθρώπου.

 

예수님의 파격적인 언행은 안식일에 대한 이해도 당시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들과는 달라서 그들을 화나게 한다(11). 11절에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고 했는데, '안식일'에 대한 언행이 그들을 완전히 화나게 한 것 같다. '안식일'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고, 그 날을 거룩한 날로 삼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기 위해 여러 가지 규정이 정해져 있었다.

 

만약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거룩한 날로 지키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 유대인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그만큼 그들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율법이었다. 그래서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6:2)라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은 유대인의 근본을 건드리는 질문이었다.

 

1.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

 

누가복음 6:1-11에는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두 가지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는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병 고치는 행위를 한 것'이다. 그 두 가지의 중간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라는 말씀이 놓여 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는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종종 자신을 '인자'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셨다. 영어로는 the Son of Man, 헬라어로는 '-후이오스 투 안슬로포' ὁ υἱὸς τοῦ ἀνθρώπου이다. 예수가 자신을 메시아적 존재임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다. 그래서 이 표현은 복음서 고유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복음에서는 이미 5:24에 처음 등장한다.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것을 너희에게 알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처럼 '인자'라는 표현은 명백히 신적 권위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인자'라는 존재가 신적 권위를 가진 존재라는 것, 그래서 사람들(당시 지도자들)에게 거부당하고 고난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6:5에서도 예수님은 수시로 말씀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6:5'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시되''이르시되'는 미완료형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복해서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임을 분명히 말씀하신 것이다.

 

2.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누가복음 19:10'인자'의 이 세상에서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구절이다. '인자'는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다.

여기서 동사는 모두 과거형(아오리스트 시제)이다. 직역하면 '왜냐하면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예수님은 이 관점에서 '안식일'을 이해하신 것이다. 특히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일에는 규칙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학자, 바리새인들에게 역으로 질문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할 수 있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냐, 아니면 악을 행하는 것이냐. 생명을 얻는 것이냐, 아니면 생명을 잃는 것이냐?"(6:9). 이 물음은 안식일에 할 수 있는 일은 당연히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복음 전파를 위해 각지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안식일을 위한 식사 준비 등은 항상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안식일에 아쉬워할 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따서 손으로 비벼서 먹었다'고 변명하신 것이다. 참고로 '먹고 있었다'는 동사는 미완료형이다. 따라서 제자들은 종종 그런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안식일에 일어난 사건으로 '오른손잡이'(6:6-)의 치유가 있다. 예수님은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앞에서 그 사람의 오른손을 회복시켜 주셨다. 여기서는 왜 '오른손이 마른 사람'이 왜 오른손이 말랐는지 그 이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오른손'은 힘을 상징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의 일을 행하실 때는 항상 오른손으로 행하신다.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된 사람은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때까지 아무리 많은 일을 했어도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과 관련된 사람들도 생존의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19:10)을 생각한다면, 잃어버린 오른손을 되찾는 것은 '선을 행하는 것이요, 생명을 살리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 권한과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자만이 ''(큐리오스=하나님)이며 '인자'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두 번째 파격적인 언행이다. 그러나 그 파격적인 언행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본 것이고,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언행이었다.

 

안식일을 거룩한 날로 정하신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뜻을 실현하기 위해 당시 지도자들이 사람들을 살리는 것보다 율법에 얽매이게 하고 율법의 노예로 만든 것이 예수님의 언행과 대립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안식일에 모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다른 목적에 집중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 다른 목적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배우고, 그 율법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을 살아가기 위함이다. 예수님의 모든 언행의 본질이 거기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적대시하게 되는데, 11절에 보면, 그들은 격분하여 '예수님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했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의논하다'도 미완료 동사이다. , 이 시점부터 그들은 종종 일거수일투족을 지속적으로 논의하게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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