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인풋'과 '아웃풋'의 균형
- 누가복음 4:31-44 -
샬롬선교회
예수님이 자신의 고향에서 복음선교를 선포한 후 첫 활동의 기록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의 초기 사역은 갈릴리 호수 북쪽 기슭에 있는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본문의 성경 구절에도 예수님의 공생애를 요약할 수 있는 사항들이 암시되어 있다.
1. 예수님의 영적 힘의 원천
누가복음 4:31-44에서 매우 주목해야 할 것은 사역으로서의 '아웃풋'과 한적함을 통한 '인풋'의 균형이다. '인풋'에 대한 설명은 4:42의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라는 단 한 구절뿐이지만, 이 한 구절이 모든 사역, 여기서는 '귀신 쫓아내기'와 여러 가지 '병 고침'을 지탱하고 있다.
+ 누가와 마가는 예수님의 '인풋'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누가복음 4: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마가복음 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누가는 예수님이 아침이 되어 한적한 곳으로 나가신 목적에 대해서는 특별히 기록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당연히 아버지와 함께 보내는 기도를 위한 것임을 포함하고 있다. 마가의 '기도하고 계셨다'의 원어는 '프로세우코마이' προσεύχομαι의 미완료형, 중태, 직설법이다. 미완료형은 과거의 행동이나 습관의 지속 또는 반복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서의 뉘앙스는 "예수님은 아침 일찍 한적한 곳으로 나가셔서 그곳에서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으셨다."라는 것이 된다. 누가복음 5:16에서는 그 뉘앙스를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라고 기록하여 예수님의 기도 생활이 지속적이었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
'한적한 곳'도 '광야'도, 혹은 '외딴 곳'도 원어는 모두 동일한 '에레모스' ερημος이다. 인기 없는, 한적한 곳이다. 그런 장소를 갖는 것은 영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예수님은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시간을 자신의 삶에서 그 어떤 것보다 우선순위를 두셨던 것이다. 그리고 충분한 영적 '인풋'이 있었기에 4:31 이후에 기록된 바쁜 사역을 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의 기도 생활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기 위한 자신의 영적 장비로서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바쁘면 바쁠수록 영적인 장비는 더 많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바빠서 기도할 수 없다'는 것은 아무런 이유가 되지 못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성령은 기도의 영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한 필요를 채우기 위해 그 원천으로 인도하시는 분이다.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은 신비 속에 싸여 있다. 아무도 그것을 들여다 볼 수 없다. 신비로 가득 차 있지만, 그 기도의 내용을 엿볼 수는 있다. 그것은 훗날 예수님의 사역의 힘의 원천이 기도에 있음을 깨달은 제자들이 자신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을 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 있다. 그러나 그 단순한 기도는 기도의 개요에 불과하며, 그 내용은 매우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주기도문'을 한 번 외우고 끝나는 그런 기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영적인 '인풋'과 '아웃풋'. 기도와 사역. 은둔과 공현. 한적과 활동. 그 균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수님의 경우, 아버지와의 친밀한 교제를 통한 기도가 넘쳐흐르는 것이 구체적인 사역으로 나타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문제에 깊이 관여하는 그 중심에 홀로 물러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의 제단을 세워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모든 것을 '기도'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놀라운 반응
(1) 악령들의 놀라움
예수님의 권위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악한 영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4:41에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줄 알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악령들에게 패배를 의미했다.
많은 군중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움을 표시했지만, 악령들처럼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아는 것'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예수님의 생애가 끝날 때까지 많은 사람들(지도자와 군중 모두)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항상 엇갈림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 엇박자는 오늘날에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2) 많은 사람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의 표징으로 영적인 속박에 있는 자들, 병으로 고통 받는 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귀신을 쫓아내시고 많은 병을 고쳐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명성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 놀라움의 어휘는 미묘하게 뉘앙스가 다르다. 누가복음이 4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놀라움의 어휘를 정리해 보겠다.
(1) 4:22 "모두 예수를 칭찬하며 그 입에서 나오는 은혜의 말씀에 놀랐다."
'놀랐다'는 '사우마조' θαυμαζω 신약에서 43번 나온다. 매우 놀라다, 크게 놀라 의심하다, 의아해하다, 신기해하다. 누가복음에서는 1:21/1:63/2:18/4:22/7:9/8:25/9:43/11:14/11:38/
20:26/24:12/24:41/
(2) 4:32 "사람들은 그 가르침에 놀랐다."
여기서 '놀랐다'의 원어는 '에쿠프레-소' εκπλησσσω로 신약에서 13번 나온다. 누가복음 2:48/4:32/9:43, 사도행전 13:12, 누가복음 2:48/4:32/9:43, 사도행전 13:12, 기절하다, 경악하다, 놀란다는 뜻이다.
(3) 4:36 "사람들이 다 놀라서 서로 말하되..."
여기서 '놀라서'는 명사가 사용되었다. '삼보스' θαμβος가 사용되고 있다. 누가복음에서는 3번. 복음서에서는 4:36/5:9, 사도행전 3:10, 놀라움과 두려움, 놀람, 경악을 뜻한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에 대해 '놀라움'의 반응을 보였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곧 예수님의 명성이 널리 퍼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병 고침을 요청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축복인 해방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셨다. 그러나 그것이 곧바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올바른 이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예수님을 자기들 곁에 머물러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다른 도시들을 방문하셨다. 그리고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고 계셨던 것이다.
3. 한 번 시작한 일을 계속하는 것
본문 4:31-44의 첫 절과 마지막 절에는 Be 동사의 미완료형과 분사(동사가 명사화된 것)가 결합되어 있다. 즉, 그것은 지속적인 반복 행위를 의미한다.
첫 구절인 31절은 "예수께서 ... 안식일마다 사람들을 가르치시니라"라고 되어 있다. -정확하게는 '계속 가르치셨다'이다.
마지막 44절은 "(예수님은) ... 유대인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고 계셨다"라고 말한다.
많은 준비 기간 후, 예수님은 한 번 시작하신 일을 계속해 나가셨다. 결코 사역을 멈추지 않으시고, 한 곳에서 혹은 다른 곳에서 지속적으로 사역을 이어가셨다. 초기 선교사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지만, 점차 예수님과의 간격이 벌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걸려 넘어지게 된다. 마지막 십자가에서는 제자들조차도 넘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일생 동안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셨다. 지속하는 힘의 비결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밀한 교제에 몰입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싶다.
http://meigata-bokushin.secret.jp/index.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