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좇아 행하라

 

갈라디아서5장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구원받은 성도의 성화(聖化)는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이루어진다. ‘성령을 좇아라는 원어(프뉴마티)성령으로라는 말인데,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라는 뜻이라고 본다. 구원받은 성도의 성화(聖化)는 인간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물론 성도는 영적으로 죽은 자가 아니라 새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으므로 스스로 노력할 수 있고 또 노력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성화(聖化)는 성도가 성령을 좇아,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행할 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성화(聖化)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로마서 8:13-14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의를 행하게 된다는 것은 이미 구약성경에 예언된 바이었다. 에스겔 36:24-28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故土)에 들어가서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성령]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17] [이는]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구원받은 성도 속에는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의 대립과 싸움이 있다. 성도의 싸움은 단지 육과 영 혹은 영혼의 싸움이 아니다. 성도의 싸움은 인간 본성의 타고난 죄악성과 성령의 싸움이다. 본문에 육체라는 원어(사르크스)는 단지 ’(소마)을 가리키지 않고 죄성을 가진 몸을 가리킨다고 본다. 우리의 싸움은 우리 속에 있는 죄성과의 싸움이다. 성도의 마음 속에는 두 개의 대립되는 원리가 있다. 그것은 몸의 남은 죄성과 영혼의 새로워진 성향이라는 두 원리이다. 후자를,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속사람,’ ‘마음의 법,’ ‘마음’(누스)[생각]이라고 표현하였다(22, 23, 25). 그러나 중생한 자는 새 마음, 새 성향만으로는 성화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 7:24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하였던 것이다(24). 성도는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몸의 부패성을 극복해 나간다. 만일 성도가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지 못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는다면, 그는 몸의 죄성과 죄악된 욕심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구원받은 성도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산다면, 그는 율법 아래 있지 않다.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이라는 말씀은 구원받은 성도를 표현한다. 구원받은 자, 즉 중생한 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성령을 받았고 그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이다. 로마서 8: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말씀은 율법 제도 아래 있지 않다는 뜻이다. 구약의 율법 제도 아래서는, 사람이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했다. 율법의 요구는 한마디로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는 것이었다. 구약 아래서 사람들은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여 죄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율법은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해줄 뿐, 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율법에 암시된 메시아께서 오셔서 친히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제물로 내어주심으로 율법의 의()를 이루셨다. 그것이 복음이다. 이제 성령께서 오셔서 죄인들로 하여금 이 복음을 믿고 구원받게 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의 인도하신 바가 되면 그는 이 의 안에 있고 이 의 안에 있는 자마다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는 것이다. 이 의가 갈라디아서가 강조하는 성도의 자유의 근거이다. 이것은 물론 죄를 맘대로 지어도 된다는 뜻의 자유가 아니다. 그러나 이 자유야말로 성도가 항상 평안하며 기뻐할 수 있는 보장이다.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은 후 때때로 실수하여 범죄하여도 다시 진심으로 뉘우치며 씻음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의 때문이다. 성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의 때문에 율법의 공포와 정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었다. 그가 이미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므로, 그의 성화(聖化)의 싸움은 승리가 보장된 싸움과 같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성도들의 마음 속에는 몸의 남은 죄악성과 성령과의 싸움이 있다. 그것이 성도들의 성화의 과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싸움 속에서 성도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몸의 죄성을 극복하며 성화(聖化)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고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받는 구원받은 자라면, 그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다. 비록 때때로 실패할지라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율법의 요구와 그것을 만족시키지 못할 때 받을 형벌의 공포로부터 자유함을 얻었다. 율법은 더 이상 그를 정죄하지 못한다. 그것이 성도의 평안과 기쁨과 힘의 원천이다.

    

 http://www.oldfaith.net/01exposit/02nt/2-09갈라디아서.htm#5장: 자유자의 삶--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