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안 인사

 

갈라디아서   

[1-3]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평안]이 있기를 원하노라.

 

사도는 주의 제자들 중에 특별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누가복음 6:13에 보면, 예수께서는 공생애 초기에 열두 제자들을 택하여 사도라고 칭하셨다. 후에, 바울도 사도가 되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라고 말한다. 그의 사도직은 인간적 기원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사람이 세운 사도가 아니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예수님 믿는 자들을 잡아오려고 다메섹에 가까이 가고 있었을 때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빛 가운데 나타나셔서 그를 변화시키셨고 그를 택하여 주의 이름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하셨다(9).

 

바울은 또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된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것은 복음 진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시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믿을 만한 자가 되지 못하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부활할 것을 3차례 이상이나 제자들 앞에서 공언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만일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는 우리가 신뢰할 만한 선생님과 구주가 되실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그의 처음 제자들은 그의 부활을 친히 본 목격자들이었다. 그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들이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살리셨다. 그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도로 삼으셨다. 이와 같이 바울의 사도직은 신적 기원을 가진 것이었다. 또 그것은 그의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이기도 하였다.

 

바울은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문안하였다.

하나님의 진리는 몇몇 개인들의 진리가 아니요 하나님의 모든 백성의 공동적 진리요 주의 백성이 다함께 고백하고 증거하고 감사하는 진리이었다. 디도서 1:4같은 믿음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공통적 믿음’(코이네 피스티스)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믿음은 모든 성도의 공통적 믿음이다. 유다서 1:3에는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말도 원문에서 공통적 구원’(코이네 소테리아)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모든 성도가 공통적으로 받은 구원이다. 우리는 공통적 믿음을 가지고 있고 공통적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바울은 자기와 함께 있는 성도들과 일꾼들을 형제라고 불렀다.

그것은 그의 겸손한 처신을 보인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형제라고 부르셨다. 그는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셨고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고 하셨고(12:50; 23:8),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셨다(28:10). 사도직은 권위 있는 직분이었지만, 바울은 높은 마음으로 성도들을 대하지 않고 겸손히 대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24에서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고 말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안이 있기를기원하였다.

은혜는 단순히 마음에 감동을 주고 눈물을 일으키는 감정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사함의 은혜이다. 죄인을 향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은혜이다. 그 은혜 때문에 죄인이 구원을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죄의 사랑을 더욱 깨닫고 받아 누리는 것을 말한다. 평안은 문제들, 싸움, 갈등, 불안이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안정과 평안을 가리킨다. 이것은 죄문제의 해결, 곧 죄사함을 통해 온다. 세상의 많은 문제들과 싸움, 갈등과 불안의 근본 원인은 사람의 죄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모든 문제의 해답을 가지며 우리의 심령도 죄사함으로 말미암은 안정과 평안을 누리게 된다.

 

성도들의 평안은 마음의 평안 뿐만 아니라 건강과 물질적 안정과 환경적 평안도 포함한다.

그러나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구약성경 욥기가 그것에 대해 교훈을 준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성도들에게 훈련의 의미를 가지는 고난을 때때로 허락하신다.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고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삶을 살기를 힘쓰는 성도들에게도 때때로 고난이 닥친다. 그러나 그런 고난들을 통해 성도는 믿음과 거룩에 있어서 자란다. 주께서 바울에게 주셨던 육체의 가시도 비슷한 목적을 가졌다. 바울은 그 육체의 가시, 아마 어떤 질병이나 연약성을 통해 교만에 떨어지지 않고 겸손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이었다(고후 12:7). 그렇지만, 그런 고난 속에서도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린다.

 

 

우리는 사도직의 신적 기원을 인식하자. 그의 말씀 사역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다. 또 그가 증거한 복음은 초대교회의 공동적 증언임을 알자. 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을 사모하며 항상 누리자.

 

 http://www.oldfaith.net/01exposit/02nt/2-09갈라디아서.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