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올려지신 예수님

- 사도행전 1:8-11 -

 샬롬선교회 


[사도행전 1:8-11]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서언.

 

[누가복음 24:50-51]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일거수일투족에도 무의미한 것이 없으며 반드시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어떤 계시적인 행위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수님이 사도들을 굳이 '베다니'에 데리고 가신 의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은 구름에 가리어 하늘로 올려지셨다. [본문: 사도행전 1:9]

 

+ 예수님의 승천을 기록한 누가복음 2450-51절에는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라고 되어 있지만, 사도행전 19절에는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구름" ("네페레-" νεφελη)'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 구약시대에는, 모세가 시내산의 산정에서 구름 속에서 율법을 부여받았습니다. 광야의 성막에서 하나님의 임재는 구름에 의해 나타났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에도 역시 구름이 나타나, 제사장들은 그 임재에 압도되어 서있을 수 없었습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입니다.

 

 =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의 변모 때에 구름이 피어올라 제자들을 덮었습니다. 그러자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누가복음 9:34-35).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구름 속에 싸여 승천함으로써 그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다시 이 지상으로 돌아오실 때에도 구름을 타고 오시기로 약속되어 있습니다(사도행전 1:11, 마태복음 24:30, 26:64, 계시록 14:16).

 

2. 예수님이 하늘로 올려지신 장소는 어째서 "베다니"인가?

 

[누가복음 24:50-51]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 이 말씀의 뒷부분에 "떠나가셨다"는 것은 '하늘로 올려지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전반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베다니"까지 데려갔다고 하는데, 왜 예수님이 사도들을 베다니까지 데려갈 필요가 있었을까?

 

+ "베다니"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셨을 때 그곳을 본거지로 여러 번 예루살렘에 다녔던 곳입니다.

지리적으로는 예루살렘에서 약 2.8km거리에 있으며 감람산 동쪽 기슭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마가복음 11:1, 누가복음 19:29). 이 베다니라는 지명에 숨겨져 있는 의미에 대해 여기에서는 특별한 설명은 없지만, 예수님은 그곳에 데려옴으로써 사도들에게 그 의미를 깨닫게 하려고한 것 같습니다.

 

+ "베다니"에는 예수님을 맞아들인 '마르다''마리아'가 있었다.

 

 = 누가복음 10:38'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예수님을 기쁘게 집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마르다'라는 여자에 의해 기쁘게 환영을 받은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한' 자들 위에, 하나님은 특별한 축복을 내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한" 마르다의 집에 주님과의 놀라운 관계가 태어나고 있습니다. 후대의 시대에도 전해져 내려오는 놀라운 사건이 거기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 누가복음 10:39'마리아'라고 하는 '마르다'의 여동생이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더니"라고 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사도들이 깨달음 수 없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곧 죽어서 묻히게 될 예수님께 장례식을 위한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바르고, 게다가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닦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예수님이 실제로 죽고 무덤에 묻힌 후에도 다른 마리아들처럼 예수님의 무덤을 찾지는 않았습니다. 마리아의 예수의 죽음에 대한 깨달음은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그만큼 그녀의 귀는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도, 동생 '나사로'의 부활에 의해 확신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 '베다니'의 어원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지만, '무화과의 집' 또는 '고민의 집' '빈곤의 집'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르다''마리아'의 예수님을 추구하는 '심령'은 구약시대부터 흐르고 있는 '심령의 가난'이 가져다 준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태복음 5:3)."라는 말씀도 그런 '심령의 가난'의 흐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3.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이 땅에 재림하신다. [본문사도행전 1:10-11]

 

+ 예수님의 구원의 여정의 마지막 지점은 "승천"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사도 바울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하늘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로새서 3:1)"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모든 지배, 권위, 권력, 주권 위에 있는 자리요, 모든 이름 위에 높이 놓이는 자리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예수의 이름'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아 다스립니다.

 

결언.

 

예수님이 사도들을 '베다니'로 데려간 것은 지극히 예언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다니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들으며, 하나님의 본뜻 즉 하나님의 계획과 마음을 깨닫고, 하나님에 대한 회개를 가져오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또 하나님에 대한 회개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생명은 부활합니다. '나사로'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듯이 '베다니'는 생명을 회복하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