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미국의 일류대학을 나온 명문가의 자녀들이었다. 더러는 교수 직에 있었던 이들도 있었다. 나이는 25~27세의 열정에 불타는 젊은이들이었다. 미국의 기독교인들 중 베스트가 온 것이었다. 사실 유럽에서 천주교 선교사들이 동양에 올 때에도 서양 최고 수준의 인물들을 파송하고 있었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한국의 오랜 문화와 그 찬란한 유산에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전도와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틈나는 대로 열정적으로 한국에 대한 연구에 몰구하고 있었다. 한국학은 선교사들이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서양의 과학적인 방법론에 따라 정말 제대로 된 한국학을 착수하고 체계화했던 것이다.

천주교 계통의 것으로는 1874년 파리 외방 선교회의 신부 달레의 ‘한국교회사’가 있다. 방대한 역사서로 그 자료의 수집과 해석을 명쾌하게 한 한국 최초의 교회사 책이다. 그리고 1880년에는 한국에 왔던 리델 신부의 ‘한불자전’이 간행된다.

 

선교사는 아니지만 일본에 와서 오랫동안 동경제국대학 전신인 가이세이학교 교수로 있었던 그리피스의 ‘은자의 나라 한국’은 한국 근대사에 대한 서양인 최초의 방대한 저서로 평가되고 있는 책이다. 그가 당시 한문이나 조정문서들을 보고 번역하고 해석한 그 피땀 어린 공로는 이를 최고의 명예로 송축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선교사들의 한국학 연구는 한국 역사에서 실로 눈부신 금자탑을 이룬다. 한국사 관계로는 우선 존 로스가 1891년에 간행한 ‘한국 고대현대사’란 책을 들 수 있다. 이는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업적이다. 1905년에는 헐버트가 ‘한국사’를 펴낸다. 1906년 역시 헐버트의 방대한 ‘한국근대 쇠망사’와 1924년 게일의’한국민족사’가 간행된다. 다들 정밀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료들을 수집하고 해석한 명저들이다.

 

다음 한국어 연구로는 역시 1877년 존 로스의 ‘한국어 초보’를 들 수 있다. 1877년이면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8년 전의 일이다. 그의 학구열과 혼자 애쓰던 모습이 갸륵하게 보이기만 한다.

그는 이것을 1882년에 ‘한국어와 문법, 단어들’이란 이름으로 대폭 보완 증보해서 내놓는다. 헐버트는 한글의 기원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으며 그 결과를 선교지에 수십 편 발표하였다. 이런 노력을 무시하고 한글 연구는 첫 발을 들여 놓을 수도 없었다.

 

여기 그들의 한국학 연구 일람표를 만든다는 것은 지면상 불가능하다. 그들은 한국의 거북선이나, 광산, 묘지, 화폐, 가정, 농업, 금융, 무역, 군사, 외교, 질병 등 이로 말할 수 없는 여러 분야에 걸친 연구를 착수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언더우드 2세가 1931년에 ‘한국에 관한 서양서지목록’을 간행하여 1594년부터 1930년까지 서양의 한국관계 저서와 논문들이 2,882여 개에 이른다는 것을 밝혀낸 사실이다.

 

 

http://www.jangro.kr/Jmissions/detail.htm?aid=13268648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