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생애에 관한 성경적 연구
  
서론
  `이삭'을 그저 단순히 아버지 아브라함의 말을 잘 듣는 효자로만 여기고 있습니다.  모리아산에서 자신을 죽이려는 아버지 앞에서도 묵묵히 순종을 잘하였다고 효자 중의 효자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이삭을 본받아 부모에게 효도를 잘 하라는 의도로 이 성경 말씀을 기록하였을까요?  이제 성경에 나타난 이삭에 대하여 고찰하여 보며, 그 속에 감추어진 메시야의 비밀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닫는 계기를 마련하여 보겠습니다.

1. 이삭의 때늦은 임신과 출생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티끌같이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고 사라의 나이가 90세가 될 때까지도 첩인 하갈의 소생 이스마엘 외에는 아무도 주시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아브라함이 99세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타나 명년에 사라에게 아들을 주시겠다는 언약을 하시자,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기를 백 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창 17:17)라는 언약을 재차 강조하여 주십니다.  또한, 이 놀라운 하나님의 언약을 다시 들려주는 여호와의 사자의 말을 장막 문 뒤에서 듣던 그 아내 사라 역시 `18: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창 18:12)라고 하며, 부부가 같이 하나님의 언약을 비웃으며 불신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부부의 비웃음과는 상관이 없이 다시 한 번 `여호와께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8:14)라는 언약을 다짐하여 주십니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하신 대로(창 21:1-2) 이 두 노부부에게 아들을 태어나게 하여 주셨습니다.  이에 사라는 기뻐하며 말하기를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창 21:6)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사라 자신이 이미 나이 늙어 경수가 끊어져 단산하였으나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16절에서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르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라는 증거로써, 아브라함의 외아들 이삭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적인 인물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언약을 의심했던 노부부의 불신앙 역시 메시야를 바라보는 `믿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19-2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히 11:11)

간단 요약 정리하면
이삭의 이름의 의미는 "웃음"이며  아브라함 100세에(B.C. 1890) 사라의 몸에서 출생한 아들(창21:-3,마1:2). 성품이 온유하고 겸손하고 정직하여서 농업에만 전심하였기 때문에 아브라함이나 야곱같이 다사한 생활을 하지 않고 평온 하였다. 25세시에 부친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결박하여 제단에 올려 놓고 잡아 제사하려고할 때 효심이 극진한 그는 조금도 원망이나 반항이 없었으나 이 광경은 흡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의 태도와 같은 모형이다(창20:1-5,22:2-13). 40세에 외종형 부두엘의 딸 리브가를 아내로 취하여 60세에 쌍동이를 낳으니 곧 에서와 야곱이다(창24:67, 25:20-26). 흉년을 피하여 그랄에 거하는 중 그 아내를 누이라 하였다가 탄로되고 농사로 거부가 되니 그곳 사람들이 시기하여 우물을 메우니 다른 곳에 옮겨 팠더니 또 메우고 이같이 4차나 따라 다니며 메웠다. 그 다음에 파매 메우지 않는고로 그 우물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였다(창26:1). 나이 많아서 장자 에서에게 축복하려는 것을 야곱이 알고 가장하여 들어 가니 눈이 어두운 이삭은 속아서 축복하였고 에서가 축복을 빼앗기고 야곱을 죽이려 하니 야곱을 불러 다시 축복하고 이르기를 밧단 아람에 가서 외삼촌 라반의 딸에게 장가들라 하여 보냈다(창27:28:1-4). 180세에 헤브론에서 별세하니 막벨라굴에 장사하였다(창35:28-29).

2. 모리아산의 대속 제물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겨우 생긴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으로 데리고 가서 번제를 드리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시험을 하시게 됩니다.  그러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묻는 이삭의 질문에, 아브라함의 마음속에는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인하여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는 `여호와 이레'의 신앙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창 22:8)

  이 사건에 대하여 히브리 기자는 아브라함의 신앙 상태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나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7-19)라는 기록대로, 아브라함은 이삭이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임을 확신하여, 혹 자신이 번제로 죽여 하나님께 드린다 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부활시키실 줄로 생각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이미 아브라함에게 부활의 신앙이 있었기에, 그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이삭을 묶어 번제로 드리려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모리아산은 지금의 골고다 언덕입니다.  아브라함의 외아들 이삭이 번제로 바쳐 지려 했던 바로 그 같은 장소에서 2000년후에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 희생 제물이 되셨던 것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라는 말씀과 같이, 십자가의 수욕 앞에서 아무 입도 열지 아니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의 무서운 칼날 앞에서도 잠잠하였던 이삭의 모습이 너무도 흡사하지 아니합니까?

  3. 이삭의 예정된 신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낳아 줌으로 자신의 사명을 다한 아내 사라가 죽어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굴에 장사하고 나서(창 23:19), 아브라함은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창 24:4)라는 부탁을 하게 됩니다.

  `종이 가로되 여자가 나를 좇아 이 땅으로 오고자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의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창 24:5)라고 하자, 아브라함은 종에게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맹세와 섭리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삼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 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창 24:6-7)  즉, 바로 가나안 땅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언약하신 약속의 땅이므로, 아브라함은 그 종에게 이삭을 데리고 본토로 돌아가지 말 것과, 하나님께서 이미 그 사자를 앞서 보내어 이삭의 아내를 예비하여 주시리라는 믿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에 하란에 도착한 아브라함의 종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그가 가로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를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창 24:12-14)라는 기도가 끊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을 하여 주십니다.  `말을 마치지 못하여서 리브가가 물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창 24:15)  이 놀라운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에 아브라함의 종은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와 찬송을 드리게 됩니다.

  `가로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 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창 24:26-27)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섭리에 라반과 브두엘, 그리고 리브가 자신도 그대로 따르는 것을 확인하여 볼 수가 있습니다.(창 24:50-51,58)  결국 이삭은 하나님의 미리 예정된 신부 리브가를 나이 40세에 맞아들이게 됩니다.(창 25:2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식이 여호와의 주신 기업(시 127:3)임을 깨닫게 하시려고, 이삭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십니다. (창 25:21;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라)  그리하여 리브가에게 쌍둥이가 임신되고, 여호와께서는 동생 야곱을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은혜로 삼아 주십니다.(창 25:23, 롬 9:11-12)

4. 이삭의 거짓말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더니 가나안 땅에 다시 흉년이 들자, 이삭은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러 지내게 됩니다.(창 26:1)  그러나 이삭은 그곳 사람들이 그 아내에 대하여 묻자, `그는 나의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곳 백성이 리브가로 인하여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나의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창 26:7)라는 비겁한 대답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과거 그 아버지 아브라함이 흉년으로 그랄 땅으로 가서 그곳 아비멜렉 왕 앞에서 그 아내 사라를 자신의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던 경우와 같은 것으로 父傳子傳 그 자체인 것입니다.(창 20:11-13)    

  이는 죽음을 두려워하여 사나이가 아내의 치마 폭 밑으로 들어가 숨으려는 너무도 유치한 생각이며,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불신앙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삭에게 언약하신 대로 많은 축복을 하여 주십니다.(창 26:12)

5. 이삭의 신앙(창세기 24장)
이삭은 4대 족장들 중에서 제일 장수한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은 175세를 살았고(창25:7), 야곱은 147세를 살았고(47:28), 요셉은 110세를 살았으나(50:26)이삭은 180세를 살았다(35:28). 그는 제일 장수한 사람이었으나 뜻밖에도 그에 대한 성경 기록은 가장 짧은 것이 이상하다. 창세기 50장 중에서 열두 장에 걸쳐 아브라함의 기록이요, 야곱과 요셉의 기록도 거의 그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삭의 기록은 몇 장의 걸쳐 조금씩 나오기 하지만은 완전히 그의 기록만으로 나오기는 창세기 26장 한 장뿐이다. 이것은 족장들의 생활 중에서 그의 생활이 가장 단순하고 평범했기 때문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사실 이삭의 생활은 평범했다. 진리는 평범한 중에 있다는 말과 같이 그렇게 생활 중에서 우리를 많은 신앙적 교훈을 오히려 찾아 볼 수 있다. 이제 성경에 나타난 대로 그가 산 시대 별로 그의 신앙과 인격이 어떠했음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청소년기
어린 이삭은 희생의 제물로 변제단에 오르기까지 순종했다. 그는 육신의 아버지만을 순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끝까지 손종했음이 다음과 같은 성경을 보아 분명하다.

창22:7에 보면, 그는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있나이까" 했을 때, 그의 아버지의 대답,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22:8) 하는 그 말을 듣자 그는 다시 말이 없었다. 드디어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 들을 잡으려"(22:9,10) 할 때에는 이삭은 아무런 반항이 없었다. 이것은 분명히 어린 이삭의 신앙이 얼마나 컸음을 보여 준다. 그는 아버지에게 "어린 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했는데 그 어린 양이 어디 있기에 나를 번제로 드리려 하나이까" 이렇게 반항할 수 있었을 것이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죽 기까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는 그 말씀을 굳게 믿었음이 분명하다. 진실로 위대한 신앙이었다고 생각한다.

2) 청장년기
창24:63에 "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약대들이 오더라" 하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그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위하여 그의 배우자를 구하러 보냈던 종이 돌아 올 때의 광경을 기록한 것이다. 그 때의 이삭의 연령은 40이었다.(창25:20). 연령이 40이라면 자기의 마음대로 적당히 배우자를 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형 에서는 나이 40세에 가나안 여자를 둘씩이나 취한 일이 있다. (창26:34). 그러나 이삭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그것을 아버지에게 맡길 뿐 아니라,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던 그 모습을 위의 분문에서 우리는 넉넉히 볼 수가 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더라" 하는 그 말씀은 그가 어떻게 고요히 모든 일에 순종과 기도에 준비하는 사람이었던가를 잘 묘사해 준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큰  일을 이룬 것은 없다. 또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크게 고생한 일도 없다. 그러나 그는 역시 위대한 믿음의 족장이었다.

3. 노년기
창세기 25:21에 "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하는 말씀이 있다. 참으로 우리로 하여금 위대한 족장의 믿음 을 배우게 하는 성구인 줄 안다. 이삭은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함으로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사람이었다. 얼핏 생각하면 그거야 뭐 당연한 일 이 아닌가. 생각하기 쉬우나 창세기 25장 전체를 고요히 읽어 보면 그 때의 그의 마음과 그의 믿음이 어떠했음을 엿볼 수 있겠다.

창세기 25:20과 25:26을 보면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했을 때와 또 아내 리브가가 아들을 낳았을 때의 연령이 각각 기록되어 있다. 즉 이삭은 40 세에 결혼하여 60세에 아들을 낳았음을 본다. 그러고 보면 이삭은 결혼 후 20년 동안 아들이 없었다. 생각해 보라 그는 아브라함의 외아들이었다. 그의 씨가 "하늘의 별 과 같이 땅의 티끌과 같이" 번성하리라는 약속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 동안 아들이 없었다. 60이 다 되도록 아들이 없었다. 그것은 진실로 큰 시험이 아닐 수 없다.

25:1-4 을 보면 아브라함의 후처 인 그두라는 벌써 6형제를 낳았고, 손자들과 증손자들까지 즐비하게 번성하고 있었다. 또 그뿐만 아니다. 25:12절 이하에 보면 아브라함의 첩의 소생인 이스마엘은 벌써 12형제를 두었고, 12방백을 이루었다고 했다.(25: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아들 이삭에게 나이 60이 되도록 아들이 없었다. 얼마나 답답한 시험이었겠는가.

"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 하더라고 성경은 기록했다.(25:16). 그 기도를 진실로 20년 가까운 긴 기간의 기도였을 것이 분명하다.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처럼 오랫동안 아들을 주시지 않았을까 그가 약속을 받기 위해서는  참고 기다리며 간구하는 믿음 의 훈련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렇다! 히브리 10:36에 보면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하신 말씀이 있다. 이삭은 약속을 받기 위해서는 20년 동안 참아 기다리며 간구했어야 했다.

아브라함에게는 10년을 참지 못하여 첩을 얻었던 슬픈 역사가 있었다.(창16:3) 그러나 이삭은 그런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았다. 그는 20년 동안 참고 기도했다 마침내 그는 복을 받았다. 히브리서 6:14-15에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하신 말씀과 같이 약속하신 복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그가 남긴 신앙의 좋은 본이 있다. 그것은 그가 간 데마다. 우물을 판 일이었다. 아브라함은 간 곳마다. 제단을 쌓은 것으로 유명하나 이삭은 우 물을 판 것으로 유명하다.

창세기 26장에 그는 일곱 번에 걸쳐 우물을 판 역사가 있다.(15,18,19,22,25, 32 절). 그는 무엇 때문에 그처럼 우물을 파야 했던가. 그것은 우물을 파 샘물 을 얻었을 때마다 원수들이 시기하여 싸우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무와도 다투려 하지 않았다. 누가 싸우려 하면 그 물을 넘겨주고 그는 다시 옮겨 새 우물을 팠다. 그렇게 하기를 일곱 번 넘겨주고 그는 다시 옮겨 새 우물을 팠다 그렇게 하기를 일곱 번이었다. 그는 싸울 힘이 없어 그랬던 것이 아니다.

이삭의 부대는 아비멜렉 왕보다. 더욱 크게 [강성했다]고 성경은 말했다.(창26:16). 그러나 그는 싸우려 하지 않고 다시 자리를 옮겨서 우물을 팠던 것이다.

그는 진실로 속옷을 달라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벗어 주었던 인물이라 하겠다. 그러한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셨다. 가는 곳마다 복 주어 새로운 샘물을 얻게 했다. 마침내 아비멜렉도 그를 시기함은 헛된 일임을 알게 됐다.

그를 괴롭게 하던 그는 드디어 그의 군대 장관과 더불어 찾아와서 무릎을 꿇게 되었다.

창26:28 이하에 보면 "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희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했다. 저들은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이삭을 대항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디어 알게 됐다.

마침내 무릎을 꿇고 화친을 구하러 왔다. 그러나 이삭은 그들에게 과거의 소행을 조금도 꾸짖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이 저들을 맞아 [잔치]를 베풀었다. 창26:30에 "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고 했음을 본다. 진실로 이삭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악을 갚은 사람이었다.(롬12:17-18 참고).

끝으로, 이삭이 우물을 팠다는 사실은 누구를 위함인가를 생각해 보라. 그것은 온전히 자기와 자기 가족들과 종들과 소와 양떼들을 위함이었다. 결코 하나님을 위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자기를 위해 한 일이었다.

결론 및 적용
믿음으로 결합된 가정이며 이삭은 믿음의 남편이었다.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를 모리아산 제단에서 제물로 드리려할때 순종한 아들이었으며 그는 일생을 온유, 겸손한 성품의 인격으로 살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블레셋 사람들이 그가 판 우물을 세번이나 빼앗아도 양보하고 물러섰으며, 이런 그의 신앙의 성품은 180세 일생을 큰 대가없이 지나게 하였다. 리브가도 또한 믿음의 아내였다. 먼 밧단아람 나흘의성 우물가에서 아브라함의 종과 약대를 물을 길러 대접한 사건과 그가 아브라함의 종을 따라서 아브라함의 가정으로 오는 결단의 모습에서 그의 신앙의 인격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가정은 사랑과 신뢰로 이루어진 행복한 가정이었다.

1) 리브가는 이삭에게 모친 상사후에 큰 위로가 된 아내였다.

F.Bacon은 "아내는 청년에게는 연인이고 중년에는 친구이며 노년에는 간호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모두 부부간의 사랑과 신뢰를 통한 행복한 가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부부간엔 서로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2) 그들은 피차 예의를 지킨 가정입니다. 믿음의 가정은 부부간의 예의가 매우 소중합니다.
(1)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 나는 아내(남편)때문에 떳떳한 사회인이 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2) 나에게 맞추려 하면 실패합니다. - 완전한 아내 (남편)가 되어 주기를
바라지 않는 아내(남편)가 가장 완전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3) 아내는 남편에게 (주안에서) 복종하라고 하였습니다. - 정숙한 아내는
순종함으로 남편을 뜻대로 움직입니다.
(4) 남편은 아내에게 양보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5) 대화가 있어야 합니다.
(6) 양가의 부모를 잘 섬겨야 합니다.
(7) 단정한 용의모를 관리해야 합니다.


3) 이삭은 일생동안 일부일처의 가정이었습니다.  

성도는 부부외에 다른 권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말2:15) 에 하나님께서 영이 유여하여도 한 아내를 주신것은 경건한 자녀를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부모외에 다른 사람이 개입되면 부부의 신뢰가 금이 가게 되고 이것은 일생동안 회복되지 못하는 상처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가는 곳마다 먼저 제단을 쌓았습니다. 결혼후 20년동안 자녀가 없이도 기다리다가 기도하여 마침내 에서, 야곱,쌍동이를 얻은 가정이었습니다 (25:19-26) 그리고 어디를 가던지 먼저 제단을 쌓고 그 곁에 장막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예배중심, 교회 중심의 삶을 의미하며, 그리고 자기의 집을 세우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가정은 언제나 예배중심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그리고 자기의 집을 세울줄도 알아야 합니다. 성도중에는 하나님제단을 쌓을줄은 알면서 자기집을 세우지 못하면, 도리어 하나님 영광을 가리우게 됩니다. (1) 물질자립 (2) 자녀교육 (3) 교회봉사로 가정을 세워야 합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http://www.kidok.net/bbs/view.php?id=bible&page=4&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21&PHPSESSID=002503cdde172e593c7f3471fa7427c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