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믿음

 

갈라디아서3장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믿음이 오기 전에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오기 전에,’ 즉 신약시대 이전을 가리킨다.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를 믿어 구원얻는 진리를 계시하신 때를 의미한다.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는 말은 구약시대의 성도들의 상태를 가리킨다. 구약시대에는 사람들이 율법 제도 아래 있었고 또 율법의 정죄 아래 있었다. 율법은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계명들을 항상 행하지 않으면 저주 아래 있다고 선언하였다(27:26). 형을 선고받은 죄수가 감옥에서 형 집행을 기다리듯이, 모든 사람은 율법 아래서 사형 선고를 받고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와 저주의 벌을 기다리는 자들과 같았다. 물론 구약 백성도 의식법에 암시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누렸다고 보지만, 율법의 엄격한 요구와 조건 아래서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 죄의 형벌에 대한 공포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죄의 완전한 속죄와 영원한 의는 아직 미래의 것이었다.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몽학선생이라는 원어(파이다고고스)주인의 어린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또 데려오는 종을 가리킨다(BDAG). 사도 바울은 이 비유에서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을 어린아이의 시절에 비유하고, 신약시대의 성도들을 선생이 필요치 않은 성장한 나이에 비유했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의 어린아이 시절에 필요했던 제도이었다. 율법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예수께로 인도한 자이다. 그것은 죄를 깨닫게 하고 정죄함을 통해서이었다. 율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는 의가 없는 자이다, 나는 하나님의 요구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였다, 나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율법의 정죄와 저주를 깨닫지 못한 자는 결코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올 수 없고 그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려 함이다. 율법을 통한 정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의()에 이르는 길이다. 사람에게 두 가지의 의의 길이 있었다. 하나는 자기의 의로운 행위들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간주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간주되는 길이다. 행위로 의에 이르는 길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경험하는 대로 또 성경이 증거하는 대로 불가능한 길이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뿐이다.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믿음이 온 후라는 말은 시대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 즉 신약시대를 말하며, 개인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후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은혜가 선포되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를 믿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했고 기껏해야 도덕적으로 최선의 삶을 추구했었다. 그때의 우리의 삶은 범죄와 실수와 불완전한 행위로 인하여 죄책과 불안과 공포 아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었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율법의 저주와 공포로부터 자유함을 얻었다.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않다는 말은 율법의 제도 아래 있지 않다는 말이다. 우리는 더 이상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는 율법의 명령 아래 있지 않다. 우리는 또한 성막 제도 아래 있지 않고 제사들이나 절기들을 지킬 의무 아래 있지도 않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율법의 의를 완성하셨고 의식법들이 상징하는 바를 다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다. 우리는 신약 아래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 안에 있고 그의 대속 공로 안에 있다.

 

[26-27] [이는]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되었음이니 이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안으로]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옷 입었음이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문구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라고 읽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것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요한복음 1:12의 말씀과 같다.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더 이상 율법이라는 선생님 아래 있을 필요가 없다. 또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상징하고 확증하는 예식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즉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은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더 이상 율법 아래, 즉 율법 제도와 그 속박 아래 있지 않다.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본절을 직역하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없고 종이나 자유자가 없고 남성이나 여성이 없도다. 이는 너희가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임이니라이다. 이것은 구원의 복, ()의 복,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누림에 있어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차별이 없고 종이나 자유자가 차별이 없고 남성이나 여성이 차별이 없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는 다 동등한 복을 받았고 다 동등한 영적 특권을 누린다. 이 말씀은 물론 가정이나 교회에서의 남녀의 역할의 구별을 부정하는 말씀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다른 곳에서 그런 구별을 분명히 가르쳤기 때문이다(고전 14:34-38; 딤전 2:11-15). 그러나 믿음 안에서의 영적 특권은 동일하다.

 

[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그와 연합한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기업을 상속받을 자이다. 아브라함의 육신적 자손이 상속받을 기업은 가나안 땅이었으나, 그의 영적 자손인 우리가 상속받을 기업은 새 하늘과 새 땅, 곧 천국이다. 베드로전서 1:3-4,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본문은 율법과 믿음의 관계를 증거한다. 여기에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말한다. 믿음이 오기 전에, 즉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그리고 우리가 아직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믿지 않았을 때에, 우리는 율법 아래 매여 있었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혀 있었다.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였고 우리로 하여금 의()를 갈망케 함으로써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다. 그러나 이제 믿음이 온 후로는,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우리가 그를 알고 믿은 후에는 우리가 율법이라는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영생을 얻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의 상속자가 되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은 시시때때로 자신에게 질문하고 대답해야 한다.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고 있는가? 우리는 참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그의 뜻과 교훈에 복종하고 있는가?

 

 http://www.oldfaith.net/01exposit/02nt/2-09갈라디아서.htm#3장: 율법으로부터의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