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제네바 학살?  역사적 무지로 인한 오해


칼빈의 제네바 학살?

/ 역사적 무지로 인한 오해

   

- 종교개혁은 단지 교회에서의 사건만은 아니었다.

 

“물론이다. 종교개혁은 서구 사회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했다. 그야말로 세계사적인 사건이었다. 이런 면에서 Refo 500은 과연 오늘날 우리가 민족과 세계를 변화시켰던 선배들의 모습을 이어가고 있는가를 반성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성경에 충실하며 복음의 본질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그래서 시대의 정치와 경제, 문화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지 되짚어보는 장이 될 것이다.”

   

칼빈은 사람들 학살할 만한 정치적 위치 아니었다.

 

▲안 박사는 “칼빈이 제네바에서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다는 주장은

그를 반대하는 이들의 유언비어이며, 역사적 무지로 인한 오해”라고 지적했다.

ⓒ김진영 기자

 

- 칼빈이 스위스 제네바를 통치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다는 주장이 있다.

 

“역사적 무지로 인한 오해다. 그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은 대부분 그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지어낸 유언비어다. 이들은 16세기 칼빈에 의해 징계를 받았거나 권징을 받았던 사람들인데, 칼빈에 대한 악의로 그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을 퍼뜨렸다. 객관적으로 신빙성이 없다.

 

제네바에서의 칼빈은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아무런 권한을 갖지 못했다. 이는 당시 제네바의 정치체제나 행정체계만 알아도 금방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게다가 칼빈은 스위스인이 아닌 프랑스인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난민이다. 역사 공부를 조금만 하면 금방 아는 일이다.

 

제아무리 위대한 종교 지도자라 한들 난민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 상태에서 학살을 일삼을 수는 없다. 실제 칼빈은 한때 정치적 입지가 좁아져 제네바 밖으로 추방되기도 했었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정치적 위치를 강화할 수 있었던 때는 그가 죽기까지, 딱 9년 간 뿐이었다. 피선거권이 없는, 3등급 제네바 시민권을 얻은 것도 죽기 5년 전 일이었다”

 

 

 

- 칼빈의 예정론, 이른바 ‘이중예정’도 논쟁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칼빈의 예정론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질문은 아마 두 가지로 요약될 것이다. ‘개인의 행동이나 삶의 모습과 관계없이 누구는 날 때부터 천국으로, 누구는 지옥으로 가도록 예정됐느냐’는 것과 ‘구원이 예정된 사람은 정욕대로 악한 삶을 살아도 상관없느냐’는 질문이다. 우선 우리가 전제해야 하는 건,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이 이해하는 사랑의 모습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적이지 않다. 일방적이다. 그러므로 만약 내가 구원을 받았다면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그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라고 표현할 밖에는.

 

그럼 멸망으로 예정된 사람은 누구인가. 이것 또한 알 수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느 특정인을 멸망으로 예정된 사람이라고 판단하거나 차별할 수 없다는 의미다. 칼빈은 눈에 보이는 공동체, 즉 가시적 공동체가 있는가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 공동체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교회를 비가시적 공동체, 곧 영적인 공동체로 정의했다. 이는 아무리 신앙적으로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의 겉모습만을 보고는, 그를 구원으로 예정된 사람이라 단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겉모습이 신앙적이지 않다 해서 그를 멸망으로 예정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다. 칼빈은 구원을 논함에 있어 내적인 소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칼빈은 예정을 말하면서 성령의 사역을 강조했는데, 누군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마음에 깨달았다면 여기에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었던 것이라고 칼빈은 말한다. 마태복음 16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고백 부분과도 같은 맥락이다. 칼빈은 이것을 예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예정은 어떤 수학공식처럼 기계적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일하심이 동반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누구도 방종의 삶을 살 수 없다. 예정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할 수 없고, 예정에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것이라면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함부로 사는 사람은 심각하게 다시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내가 정말 예정됐을까’라고. 구원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일이다.

 

또 하나, 우리는 칼빈의 예정론이 어떤 문맥에서 등장했는지 알 필요가 있다. 칼빈은 대부분 자신이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이 예정론을 강조했다. 자신에게 닥친 절망과 고통을 구원의 확신을 통해 극복해 나가려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칼빈의 예정론은 선택된 자의 자기 확신과 소망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이지 결코 선택과 유기(遺棄)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 종교개혁 500주년, 이제 6년 정도 남았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지금 한국교회가 여러 면에서 성경으로부터 많이 이탈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고 종교개혁의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이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앞으로 6년 여 동안 의미 있는 대화가 이뤄지길 바란다.”

 

안인섭 박사는 고려대학교 사학과(B.A.)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했다. 네덜란드의 Kampen Theological University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Refo 500 아시아 프로젝트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칼빈학회 명예회장직을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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