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바른 진로(進路)

 

오늘날 교회 문제의 핵심은 교제에 있다. 그것은 근대에 기독교회 속에 들어온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교회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라는 문제이다. 이 점에 대해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는 포용적 태도를 취한다. 이것은 진리를 양보하고 이단을 용납하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타협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확실히 이단이며 따라서 그것은 기독교회 속에 용납될 수 없고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적 기독교가 자유주의 신학과 분리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절실한 시대적 요구이다. 이런 입장과 확신을 근본주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근본주의의 분리의 확신은 많은 오해와 비난을 받아왔다. 자유주의자들의 불신앙적 비난은 놔두고라도, 어떤 보수적 인사들은 근본주의를 세대주의로 오해하였고,352) 또 지식과 분별력 없는 다수의 복음주의 목사들은 잘못된 사랑과 화평을 말하면서 근본주의를 비난하였다. 그러나 근본주의를 비난하는 자들은 교회의 순결성에 대해 무관심함을 드러낼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순결한 교회를 원하셨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다.

근본주의는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근본교리를 고수하는 입장이었다. 19세기 말 미국의 나이아가라 예언사경회는 ‘나이아가라 신조’라고 불리우는 14개 조항의 신조를 선언하였다.353) 20세기 초 성경의 근본교리들을 옹호하는 근본 교리들: 진리에 대한 증언이라는 12권으로 된 책자들이 무료로 약 300만부 배포되었다.354) 미국 북장로교회 총회는 다섯 가지의 중요한 교리들을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본질적 내용’이라고 선언하였다.355)

자유주의자 커솝 레이크(Kirsopp Lake)는 말하기를, “근본주의를 하나의 새롭고 이상한 사상 형태라고 상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그런 유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때 모든 기독교인이 보편적으로 주장했던 신학의 잔존물이다”라고 하였다.356) 박형룡 박사는 말하기를, “근본주의는 별다른 것 아니라, 정통주의요 정통파 기독교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근본주의는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적 정통적 신앙을 그대로 믿고 지키는 것 즉 정통 신앙과 동일한 것이니만치, 이것은 곧 기독교 자체라고 단언하는 것이 가장 정당한 정의일 것이다. 근본주의는 기독교 자체다”라고 하였다.357)

근본주의는 기독교 근본교리를 고수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역사적 교단들이 자유주의를 제거하지 않고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넓어진 교회’가 되었을 때, 근본주의는 포용적인 교단들로부터 분리하는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즉, 근본주의는 ‘분리’라는 특징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자유주의의 포용, 자유주의자와의 교제를 용납할 수 없었던 신앙 양심에서 나온 것이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 모교단들을 떠났고 다른 이들은 모교단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그 후 ‘신복음주의’라는 한 경향이 일어났다. 이것은 소수파로 드러난 근본주의자들 가운데서 일어났다. 어떤 이들은 진리를 위해 끝까지 싸우기보다 평화와 안정을 더 좋아하였다. 또 그들은 신실한 소수의 보수주의자들과 보수주의 교회들 간의 교제와 협력보다 더 폭넓은 교제와 협력을 추구하였다. 그들은 성경적 분리의 교훈을 따르기보다 일치와 화합을 원하였다.

근본주의는 이런 자들의 행위를 진리를 양보하고 악과 타협하는 행위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근본주의는 자유주의자들과의 교제뿐 아니라, 신복음주의자들과의 교제도 합당치 않다고 본다. 근본주의는 기독교의 근본교리들을 보수하고, 배교와 타협으로부터 분리하는 입장을 취한다.

기독교의 근본교리들의 범위 문제는 쉬운 문제가 아니며 그것이 교파들이 생긴 한 주요 원인이었지만, 적어도 역사적 개신교회들이 공통적으로 믿는 교리들이 근본교리들 안에 포함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 그 공통적 신조들은 기독교회들의 일치의 기초이다. 그러므로 죤 칼빈이나 죤 오웬은 기독교의 본질적 교리들을 그리스도인의 일치의 기초로 간주하였다.358)

기독교의 근본교리들을 보수하려는 움직임은 초교파적으로 이루어졌다. 근본주의는 초교파적 성격을 띠었다. 근본주의는 기독교의 근본교리들을 보수하고 배교와 타협으로부터 분리하려는 초교파적 입장이었다.

이와 같이,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의 차이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태도에 달려 있었다. 근본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을 용납할 수 없는 이단으로 간주하고 그것으로부터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는 그것을 용납하고 그런 사상을 가진 자들과 교제하고 협력하였다.

그러나 무엇이 성경적으로 옳은 태도인가? 구약 시대에 노아는 어떠했으며 모세는 어떠했는가?(벧후 2:5; 출 32장) 엘리야는 어떠했으며 미가야는 어떠했는가?(왕상 19:10; 22:5-14) 에스라는 어떠했으며(스 9, 10장) 느헤미야는 어떠했는가?(느 2, 6, 13장) 신약 시대에 바울의 태도는 어떠했는가?(고후 11장; 갈 1장; 딤후 1-4장) 이단자들과 교제를 끊으라는 성경의 교훈은 너무 분명하다(롬 16:17; 딛 3:10; 요이 7-11; 유 3; 갈 1:8; 벧후 2:1; 딤후 2:17-18). 아무리 오늘날 기독교계가 포용적일지라도 주의 바른 종들과 교회들이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우리 입장은 근본주의가 아니고 개혁주의 혹은 칼빈주의이다”라고 한다.359) 그러나 그것은 근본주의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말이다. 개혁주의는 루터파와 대조된 하나의 신학 체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은 주로 장로교회의 신학 체계이다. 그러나 근본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반대하는 초교파적 입장이다. 그러므로 근본주의를 개혁주의와 대립시켜 말하는 것은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근본주의는 성경적으로 바른 입장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명백히 이단이다. 참 교회는 마땅히 자유주의 이단을 배격하고 자유주의자를 제거해야 한다. 자유주의자를 포용하는 것은 악에 대한 타협이며 주께 대한 불충성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의 배교와 신복음주의의 타협으로부터 분리를 주장하는 입장은 성경적으로 바른 입장이다. 근본주의는 바른 입장이다. 오늘날 배교와 타협과 혼란이 점점 심해지는 때에, 하나님의 뜻은 배교와 타협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이다.

우리가 근본주의를 옹호하는 까닭은 근본주의가 바른 입장이기 때문이며, 또 사람들이 근본주의를 잘못 알고 잘못 비난하기 때문이며, 또 근본주의라는 용어 외에 오늘날 바른 입장을 나타낼 적절한 말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참으로 근본주의 교회들이 필요하다. 근본주의 장로교단과 근본주의 초교파협의체가 필요하다. 또 근본주의 정신을 가진 신학교, 성경공회, 방송국, 선교 단체, 신문사, 출판사가 필요하다. 근본주의적 신념을 가진 목사들과 평신도들은 단합하여 배교와 타협의 이 악한 시대에, 작을지라도 바르고 순수한 하나님의 교회를 건립하고 하나님의 일을 바르고 충성되게 수행해야 할 것이다. 성경의 교훈들에 대한 확신과 현시대에 대한 분별력과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을 가진 종들은 뜻을 합해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한다.

현대교회는 위기에 처해 있다. 개신교의 전통적 대교단들의 지도층은 자유주의 신학을 배제할 의지가 없고 오히려 그것을 용납하고 그들 자신이 자유주의화되어 있다. 이것이 현대교회의 배교(背敎)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이 주께 대한 배신과 변절이 아니고 무엇인가? 자유주의 교단들 안에 있는 보수적 인사들이 배교에 대해 침묵하며 배교와 타협하고 협력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잘못이다.

복음주의 교회들의 타협은 더욱 가슴 아픈 일이다. 복음주의 교회들의 다수는 자유주의적 교단들과 지도자들과 교제하고 협력하고 있다. 포용주의가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들의 특징이 되었다. 우리는 신실한 개혁교회들과 신학교들을 찾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많은 고난 중에도 낙심치 않았듯이, 하나님의 종들과 자녀들은 언제나 낙심치 않는다(고후 4:7-8).

우리는 결론적으로 성경적 교회가 힘써야 할 몇 가지 점들을 정리해본다.

첫째로, 우리는 옛신앙을 파수하고 전파해야 한다.

옛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이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음”을 전파했던 것과 같이, 오늘날 목사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만 전파해야 한다. 그것은 영원불변의 복음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다. 그 뿐만 아니라, 교회는 옛부터 믿어온 교리 체계를 지키고 후대에 전해야 한다. 바른 신앙의 보수와 전파는 이 혼란한 시대에 더욱 요구된다. 속죄의 복음을 믿고 그것을 전파하는 참 교회들이 처처에 세워져야 한다. 여기에 천국의 소망을 가진 사랑의 공동체가 있고 죄와 죽음을 정복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있다.

둘째로, 우리는 오직 말씀과 기도로만 진행해야 한다.

우리의 힘은 신비적 은사체험에 있지 않고, 선진들이 하던 대로 성실한 성경 연구와 날마다의 진실한 기도에 있다. 우리가 성경말씀대로 믿고 그 말씀대로 살기로 굳게 다짐한다면, 현대교회의 문제들은 다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자들이라면,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교회라면, 모든 불신앙과 불순종을 회개하고, 또한 땅의 것을 구하기 때문에 오는 인간적 변명과 타협을 깨끗이 털어버리고, 성경에 밝히 제시된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복종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성경적 분리의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먼저 자신이 속한 교회의 순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하며 성급한 분리를 피해야 한다. 또 배교와 타협에 대한 책망이나 분리의 권면은 눈물과 동정으로 행해져야 한다. 그러나 교회가 자유화되었을 때, 성경을 믿는 목사들과 신자들은 거기 머물지 말고 거기서 분리되어 나와야 한다. 또한 보수적 교회들은 무분별한 연합활동을 중지하고 자유주의 교단들과 분리해야 한다. 또 오늘날 사회정치 활동을 선교라고 생각하는 선교 개념의 변질을 배격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을 그대로 증거해야 한다. 또 보수적 교회들은 예배와 교회음악의 타락, 낙태와 동성애의 용납 등 윤리적 부패에 대해 확실히 반대해야 하고 은사운동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

오늘날 중요한 것은 교제의 문제다. 보수적 교회들은 보수적 교회들과만 교제해야 한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진다.” 참된 교회들은 교회의 영광을 교인수나 건물 크기나 헌금 액수 등에서 찾지 말고, 그들이 고백하고 선포하는 복음 진리와 거룩한 순종의 삶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 땅에 속한 것들을 바라지 말고 저 하늘에 속한 것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바른 신학교들을 세워야 한다.

신학교는 제자 훈련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거기에서 목사 후보생들은 경건과 거룩의 훈련과 더불어 성경의 전체적, 기본적 지식을 얻어야 하고, 기독교 교리들에 대한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립해야 한다. 그들은 또 사도시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교회의 역사에 대한 바른 지식과, 특히 현대교회문제들에 대한 바른 분별력을 얻고 바른 입장을 확립해야 한다. 거기에 덧붙여, 그들은 또 목회와 전도의 실제 문제들에 대한 지식과 훈련도 쌓아야 한다.

바른 신앙과 건전한 인격과 실력을 구비한 충성된 교수들의 채용은 바른 신학교 건립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디모데후서 2:2,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교회는 공정하고 성실한 시험과 면접을 통해 그들을 선별하여 채용하고 그들이 신학 연구와 교수의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야 한다.

다섯째로, 우리는 분열의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자유주의 이단들과의 분리는 정당한 일이지만, 교권 쟁탈을 위한 분열, 지방색을 따른 파벌, 이권과 명예심으로 인한 분쟁 등은 죄악된 일들이다. 욕심, 교만, 미움은 옛 사람에 속한 것이다. 갈라디아서 5:19-21,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청결한 마음과 겸손과 사랑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다른 이들을 섬기는 것은 성도의 초보적 생활 원리이다. 우리는 동역자들 간의 단합을 중요히 여겨야 한다. 마태복음 20:26,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에베소서 4:1-3,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나님의 진실한 종들과 성도들과 참된 교회들은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시대에 잠들지 말고 깨어 있어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고 죽도록 충성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보수하고 전파하고 실천하자!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라”(딤후 1:13).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2-5).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

 

http://www.oldfaith.net/03modern.htm#19. 성경적 분리의 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