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죄부의 실체


중세시대 가톨릭교인들은 돈이 많이 필요했을 듯싶다. 자기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교회에서 발행하는 어떤 증명서를 사야 했으니 말이다. 증명서란 흔히들 알고 있는 ‘면죄부’, ‘면벌부’, ‘속죄부’라는 것인데, 연옥에 머무르는 시간을 단축시키거나 없앨 수 있는, 탐나는(?) 문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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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발칙한 제도가 생긴 건 11세기 십자군 전쟁 때였다. 교황 우르바노 2세가 십자군 전쟁에 참전한 사람들에게 ‘너는 벌을 면해주마’ 하는 특혜를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참전하는 대신 기부금을 내는 사람에게도 그와 동일한 혜택을 주었던 것이다. 이후 면죄부 판매는 교황청의 주요 수입원이었는데, 교황 레오 10세는 로마의 산피에트로대성당을 리모델링할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했고, 청산해야 할 빚도 있었다. 그는 타고난 영리함으로 비책을 썼다. 독일의 대주교 테첼을 시켜 교인들에게 엄청난 양의 면죄부를 팔도록 했던 것이다.


테첼은 순진한 영혼들에게 이렇게 설교하고 다녔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죽은 친척들과 친구들이 여러분을 향해 애원하며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오. 우리는 무서운 고통 중에 빠져 있는데 당신들은 적은 돈으로 우리들을 건져낼 수 있지 않소!’ 여러분은 저들을 건져내기를 원치 않습니까?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애원하며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동전이 여러분의 부모들을 구해낼 수가 있습니다. 동전이 궤 속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영혼이 연옥에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설교를 들은 가톨릭교인들은 그걸 사겠다고 애썼을 것이다. 지옥 다음으로 두려운 연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데, 빚을 내서라도 그 증명서를 구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면죄부의 가격은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평민들은 면죄부 한 장당 ‘4분의 1플로린’을 내야 했다. 참고로, 플로린은 당시 사용하던 금화로, 1플로린을 지금의 화폐가치로 따진다면 40만원가량이니 한 장당 10만원 꼴인 셈이다. 당시 이 돈이면 허름한 집 6개월치 월세요, 송아지 3마리 값이다. 평민들이 이 돈을 모으려면 몇 달 동안을 한 푼도 안 써야 한다. ‘무전 유죄 유전 무죄’는 이때부터 생긴 말이 아닐까 싶다.


보다 못한 독일의 사제, 마르틴 루터가 폭발했다. 그가 살던 비텐베르크에까지 면죄부 판매 바람이 불어왔기 때문이다.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성교회 정문에 면죄부와 연옥에 대한 반박문을 골자로 한 ‘95개조 의견서’를 내걸고 공개토론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면죄부 판매를 규제하기 시작했고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대신, 마르틴 루터는 1521년 교황 레오 10세에게 파문당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사할 수 있다고 기록한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요,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돈을 주고 사려야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낱 금전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가톨릭의 죗값은 하나님께 억만금을 바친다 한들 사함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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