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의 성령론

 

김경진 (기독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1. 들어가는 말

누가복음은 일반적으로 사회적인 복음서(a social gospel)로 알려져 왔다. 이는 누가복음 안에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이 다른 복음서보다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을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횡적인 성격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누가신학의 본질을 놓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가복음은 횡적(橫的)인 대인(對人) 관계만이 아니라 종적(縱的)인 대신(對神) 관계를 또한 매우 중시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성령에 대한 강조는 누가신학의 특별한 강조점 중 하나로서, 누가신학의 종적인 성격에 대한 매우 좋은 증거라고 생각된다.

 

성령에 대한 누가의 관심은 특별히 그의 두 번째 저작이자 초대교회의 복음전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은 수도 없이 많이 그리고 자주 등장한다. ‘성령이란 단어는 우리말 성경에서만 49, 원문으로는 프뉴마(pneu/ma)71회 등장하는데, 이 중 더러운 영’(pneu,mata avka,qarta)의 뜻으로 쓰인 두 곳(5:16; 8:7)을 제외하면 모두 69회가 된다. 69회 중 관사와 함께 쓰인 것은 20회이고, 관사 없이 쓰인 것은 18회이다; 또한 10회는 형용사 거룩한’(a[gion)과 함께 쓰였고, 2회는 나의 영’(to. pneu/ma evmou), 2회는 주의 영’(to. pneu/ma kuri,ou), 그리고 예수의 영’(to. pneu/ma vIhsou/)으로는 1회 사용되었다.

 

성령에 대한 이처럼 잦은 언급 가운데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성령이 독립적인 위격(位格)으로 언급되고 있는 구절들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으로 명하시고’(1:2), ‘성령()으로 충만하여(4:8, 31; 6:5)’, ‘성령 받기를’(8:15, 17, 19) 등과 같이 마치 수단적 도구로서 사용되지 않고, 예수님처럼 독립적 위격으로 등장하는 부분을 말한다;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8:29),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10:19), ‘성령이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10:44), ‘성령이 내게 명하사’(11:12),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11:15), ‘성령이 가라사대’(13:2), ‘성령과 우리는’(15:28), ‘성령이 아시아에서 못하게 하시거늘’(16:6),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19:6), ‘성령이 저들 가운데 감독자를 삼고’(20:28), ‘성령이 말씀하시되’(21:11), ‘성령이 말씀하신 것이’(28:25). 성령에 대한 이런 언급은 누가복음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부분이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사역의 조력자 혹은 협력자로서 도움을 주었던 성령이 이제 사도행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에 사도들과 교회를 통하여 주도적으로 활동하시며 사도들을 포함하여 제자들의 사역에 직접 간여(干與)함을 보게 된다. 이런 현상으로 인하여 노만 페린(Norman Perrin)은 누가-행전을 성령의 사역(the Ministry of the Holy Spirit)으로 간주하면서, 누가저작의 제 1권인 누가복음을 예수님을 통한 성령의 활동으로, 2권인 사도행전을 교회를 통한 성령의 활동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즉 두 권의 책의 중심 인물을 성령으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페린의 주장은 사실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킴으로서 누가의 본연의 사상을 축소시킨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러나 적어도 이렇게 표현될 정도로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역사가 두드러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음의 목록은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역사가 보다 적극적으로 등장하는 경우를 정리해 본 것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2:1 이하); 사도들의 성령 충만(4:23-31);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성령 거역으로 인한 죽음(5:1-11); 사마리아인들이 성령을 받음(8:14-17); 성령이 빌립을 인도함(8:29); 고넬료와 그 권속이 성령을 받음(10:44-48); 바나바와 바울이 성령의 부르심을 받음(13:1-4);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의 성령의 인도(15:28); 성령이 사도 바울의 활동을 도우심(16:6-7); 에베소 제자들이 성령을 받음(19:1-6); 성령이 바울의 운명을 예고함(20:22f.; 21:11); 성령이 교회에 감독을 세움(20:28) 등등. 이상의 자료들을 종합해 볼 때, 사실상 베드로와 바울과 같은 사도들이 전도와 선교사역의 전면(前面)에 나서 활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을 실질적으로 인도하고 이끈 것은 성령이었다고 우리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복음에서 그 능력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역 함으로써 그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도왔던 성령은 이제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을 직접 인도하고 지시하며 충만케 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사도행전(pra,xeij avposto,lwn)은 곧 성령행전(pra,xeij pneu,matoj)이라고 불려지곤 하는 것이다.

 

이제 아래에서는 위에서 열거한 성령과 관련된 사건 및 기사들 가운데 중요한 네 개의 사건을 집중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사도행전에 나타난 누가신학의 성령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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