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의 축복과 예수님의 슬픔의 한숨
[성경 구절] 6장 20절~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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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6장 20절~49절은 마태복음 5~7장에있는 "산상 설교 '와 병행 한 기사가 있습니다. 마태 그것은 "산"입니다 만, 누가는 "산기슭이나 평지"설교입니다. 예수의 기적적인 역사가는 누구에게도 분명히 알 수 있지만, 예수 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의 설교는 사람의 의표를 찌르는 것이며, 결코 사람에게 아첨하지 않는 설교입니다.
마태의 산상 설교의 시작 부분에있는 8가지의 팔복과 누가 복음의 그것과는 비슷한 부분과 그렇지 않는 독자적인 것이 있습니다. 누가 자신을보기 위하여 여기 마태와 누가 복음을 비교해보고자합니다.

1. 마태와 누가의 비교

(1) 마태 8 개의 "복있는 사람들"5 장 3 ~ 11 절

이미지 설명

(2) 누가 네 "복있는 사람들"과 4 개의 '한심한 자들 "(눅 6장 20~26 절)

① 복있는 사람들

② 한심한 자들

마태의 경우 모든 "복있는 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가 언급되어 있지만 누가 당신이 처음 네 가지 "복있는 자들"을, 그리고 나중에 4 개는 "불쌍한 자"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내용은 매우 대조적입니다.
전 "다행히 자들 '은'호이 마카이오이"명사 (복수)이고, 후자의 "불쌍한 사람"으로 번역 된 단어는 명사가 아니라 '우아이 "ουαι는 슬픔, 비통을 나타내는 감탄사입니다 (불변 가사라고도합니다). 이 감탄사는 신약에서 46 번 사용되고 있지만, 마태와 누가 복음과 요한 계시록의 독점 용어입니다. "아, 무서운 것이다 비참하다 저주하는 불쌍하다 '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모든 하나님 (주님) 또는 천사 또는 선교의 목소리이며, 이것은 곧 사람들에게 초래되는 운명을 응시 한 가슴 아픈 절규의 목소리입니다.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처럼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만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결코 사람들에게 아첨하지 않고 다행이라고 재앙을 모두 이야기 할 수 있었던 참 선지자였습니다.

누가가 적은 예수님의 네 가지 축복은 가난한 자들, 굶주린 자들, 우는 자들, 자식의 통에 어떤 박해를 받고 있는 자들에게서 입니다. 이런것 들이 예수를 만나서 축복받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누가의 특징은 마리아의 찬가에도 잘 나타나지만, 복음이 선명하게 전해짐으로써 역전의 묘기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윗자리에 있는 자들이 끌어내리고 낮은 입장에 있는 자들이 높이 올라간다.굶주린 자가 좋은 것으로 충족시키고, 부유한 자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쫓겨나는 일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2. 이름을 위하여 능욕되는 것을 기뻐하라

눅 6:20 이후에서 흥미로운 점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23 절의 말씀입니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

"그 날"이라 함은 사람의 아들로, 제자들이 어떠한 박해를받은 그때는 의미입니다. 그 날에는 "기뻐하고 뛰놀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모두이 동사는 그리스어로는 '아오리스토의 명령형'입니다. 즉, 아오리스토의 명령형이 의미하는 것은 상대의 결정적인 결단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 때문에, 어떤 박해와 괴롭힘을받은 경우에는 "즉시 기꺼이 버려라"라는 뜻입니다. 의지적으로 "즉시 기꺼이 버려라"라는 뜻입니다.

보통이라면 그런 일은 좀처럼 할 수 없습니다. 기가 죽거나 혹은 반대로 무기가 되어 반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의 가르침은 즉각 기뻐하는 결단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유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란 (원문에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γάρ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 때문입니다."(23 )라고합니다. "큰"로 번역 된 형용사 "뽀루스"πολύς는 잡동사니가없는 허풍을 의미합니다. 그런 보상이 있다는 것을 마음의 생각을 돌리 수 있다면 우리는 박해와 폭력 등으로 침체 않고 오히려 기뻐할 수있는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평소 예수님이 한 말을 마음에 쌓아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은 그 것을 일깨워 주시는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기뻐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5:41)

사도 베드로도 베드로전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4:14.  너희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