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강요 - 제권 성령론 - 요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수용하는 방법, 즉 그리스도의 화해사건 혹은 구속사업으로부터 어떠한 은혜가 우리에게 오며, 어떠한 효험이 일어나는가? 칼빈에 있어서 성화란 단순히 수도원적 이상을 실현하는 성화, 즉 세상과 담을 쌓는 교회내적 성화가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프로테스탄트적 성화이다. 이 성화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기도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의 수행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 믿는 자들과 연합했다는 신앙 내용이 중요하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것이 되시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소외관계가 성령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의 관계로 바뀐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인 까닭에 또한 생명이시다. 성령은 이신칭의를 계속 일으킨다.

이런 구원의 의인 때문에 성령은 생수라 불리운다. 우리는 신앙, 회개, 성화, 예정, 교회론과 성례론이 이 화해를 일으키는 수단으로써 중요한 신학적 주제들임을 안다. 신앙이란 성령께서 하나님의 복음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지성을 조명시키심으로 일어나는 초자연적 복음지식이요,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심으로 일어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선택과 결단 그리고 확고부동한 신뢰인 것이다. 인간의 학문들을 파악하는 데는 이해력과 기억력으로 충분하지만 복음의 파악과 신뢰에 관하여는, 이 복음이 전 영혼을 소유하고 마음의 깊숙한 곳에 자리를 확고히 잡지 않으면 안된다. 회개와 성화가 조건이 되어서 의인이 된 것이 아니라, 의인되었으므로 회개와 성화가 일어난다.

 

사람들은 보통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한다. 그런데 칼빈에 있어서는 복음의 은혜를 깨닫고 구원의 확신과 결단과 신뢰에 이르는 신앙이 회개에 선행한다. 칼빈은 인간의 회개는 인간의 자체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율법과 복음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이중적인 말씀에의 반응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이 반응이 다름아닌 신앙인데, 이 과정에서 회개가 일어난다.

칼빈은 회개를 가리켜 중생이라고 하며 이 중생의 유일한 목적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이다. 기독교인들은 성화의 과정 속에 있으며, 하나님의 요구 앞에서 항상 부족한 죄인으로 발견된다. 따라서 중생한 신앙인은 항상 전진을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 자신의 연약성을 끊임없이 뉘우치는 것이 중요하다.

 

신약성경과 종교개혁이 말하는 예배의 중심개념은 복음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사죄의 은혜와 영생의 약속을 받는 것이다. , 이는 은혜가 위로부터 우리에게로 내려온다는 측면을 강조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연합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때에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속하신 선물이 아니라 우리가 닮고 따라야 할 모범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 머리를 따라 살아야하며, 성령의 전이 되었으니 성령의 뜻을 좇아 살아야 한다.

 

기독교인의 삶은 이성과 의지를 전적으로 하나님의 성령혹은 그리스도의 통치에 순응시키는 것이요, 불신자의 삶은 이성과 의지의 원리에 순응할 뿐이다. 기독교인들은 본성상 지니고 있는 불경건의 성향과 폭넓은 세상적인 욕망들을 벗어버리고 자제, , 경건을 추구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교회공동체와 사회공동체의 공통의 선과 행복을 위해서 자기 부정과 이웃사랑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 믿는 자들은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해야 하며 악행을 선행으로 갚으며 저주를 축복으로 갚아야 한다. 그리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 때 보다 중요한 것은 진지한 사랑의 마음이다.

 

십자가의 경험은 우리의 방자한 육을 어거한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십자가 경험을 통하여 우리의 과거를 뉘우치게도 하신다. 이 경우 십자가는 아버지 하나님의 채찍이다.

 

이 세상에 아무리 죄악과 비참한 일들이 있어도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신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맛봄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락을 생각하게 되고, 환난과 고난을 뚫고 하나님 나라와 생명의 면류관을 기다리게 된다.

 

우리 믿는 자들은 이 세상에 집착하여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망각해서도 안되며, 종말적인 관심에 과도히 사로잡힘으로 이 세상으로부터 도피해서도 안된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초월이면서 내재이시듯이 우리 기독교인들은 초월의 영역을 지향하면서도 동시에 이 땅에서 올바른 삶을 살아야한다. 신앙은 복음을 통해서 제시되는 의를 수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행위없이 신앙으로만 칭의 하신다. 인간은 스스로가 의로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가 그에게 전가에 의해서 주어지기 때문에 의로운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의 칭의를 확실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인식해야 한다. 이신칭의에 있어서 우리는 두 가지 점에 유의해야 한다. 하나는 주님의 영광이 감소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즉 주님의 영광의 손상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평화로운 안식과 평온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신앙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칼빈은 은혜와 자연인의 상태를 대립관계에서 본다. 우리들이 행위의 공로를 자랑하고 자만할 경우 우리는 은혜로 베풀어주신 의와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수가 없다.

 

우리는 성령의 전이다. 우리는 더러운 삶이 아니라 거룩한 삶을 위하여 부름 받았다.

율법의 약속들과 복음의 약속들은 일치한다. 기독교인의 삶은 완전을 향하여 끊임없이 전진하는 과정중에 있으며 완성의 소망 중에 있다.

상급을 받는다는 것 때문에 행위에 의한 의가 가능할 수는 없다.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바라보고 나가는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모습을 따라 살아야 한다.

 

칼빈은 기독교적 자유를 3가지로 본다.

, (1)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2) 율법의 멍에를 벗은 자만이 율법의 요구에 순응하는 자유, (3) 중요하지 않은 것들로부터의 자유가 그 세가지이다. 그런데, 이신칭의에 의해서 자유를 확보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 역시 양심의 소리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국가의 법과 정부의 요구에 응해야 할 것을 칼빈은 원칙으로 한다.

 

기도 :

그것은 신앙을 훈련시키며 우리는 기도에 의하여 매일매일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는다. 기도란 하나님의 계명 중에 하나로서 구원론적 근거를 갖는다. 우리의 지성, 양심, 의지 및 정서는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성향을 갖추어야 한다. 곤궁을 절감하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겸허하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 확고부동한 소망을 가지고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신앙과 소망은 사랑의 실천을 위하여 기도할 때 꼭 필요하다. 칼빈은 공적인 기도에 관하여도 사사로운 기도만큼 꾸준히 해야할 것을 말하나 교회 안에서 정해진 질서와 시간을 따라 해야 할 것도 아울러 강조한다. 칼빈은 주기도문의 내용구조를 여섯 개의 간구로 구성된 것으로 본다. 처음 세 부분은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것이요 나머지 세 부분은 인간의 필요에 관한 것이다.

 

영원 전의 선택 :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도록 택정하셨고 또 어떤 사람들은 멸망받도록 택정하셨다. 구원과 성화의 경험과 확신이 택정함의 경험과 불가분리하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하여 사죄와 칭의를 얻고 하나님과 화해의 관계 속에서 날마다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만이 이 하나님의 신비한 예정을 고백한다. 칼빈은 성경귀절들에 근거하여 예정 혹은 선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결코 인간 자신의 그 어떤 공로를 계산에 넣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선택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하여 확인된다. 유기된 자들의 멸망은 하나님이 정하신 바이다. 하나님은 그의 택정하신 성도들을 영생에 이르도록 끝까지 참고 붙드신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택정하신 자들 만이 설교말씀을 통하여 성령으로 부름받아, 칭의를 얻고, 성화의 길을 걷고 끝내는 신비한 영광에 돌입하는 것이다.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연합하여 이미 종말적 복락에 참여한 우리 믿는 자들은 종말적 미래의 부활을 향하여 달려간다. 칼빈은 종말적 몸의 부활을 가리켜 또한 우리의 소망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것을 삼켜 살라버리는 소멸하는 불길 같으며 모든 피조물들이 모두 불에 휩싸여 불신자를 심판할 것이다. ,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