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적

- 요한복음 2:1-11 -

샬롬선교회 


[요한복음 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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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첫 번째 기적이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20:30). 그러나 그 많은 기적들 중에서 요한은 일곱 가지를 골라 '표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가나에서 행해진 '표적'은 첫 번째 표적이다. '표적'... 영어로는 sign(사인)이다. 사인은 어떤 중요한 것을 가리키는 징조이다.

 

본문 2:11을 주목해 보자.

여기서 '표적''예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예수의 영광'은 무엇을 의미할까? '영광'의 히브리어는 '---'인데, '무겁다'는 의미와 '내면에 감추어진 광채'라는 뜻이 있다. 그 두 가지 측면을 요한은 '무거운 것, 중요한 것''영원 속에 감추어진 광채'의 다양한 측면을 그림으로 보듯 일곱 가지 '표적'의 형태로 기록했다.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이다.

 

1. 예수님의 영광을 아는 '프로스'(προς)의 신비

 

본문 2:11의 첫 번째 '표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요한복음서의 서두(요한복음 1:1-3)의 말씀을 살펴보고자 한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여기서 중심적인 존재는 '말씀'인데, 2절과 3절에서는 1절의 '말씀''그 분'이라는 표현으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14절에 이르러서는 '말씀', '그 분''아버지께로부터 오신 독생자'라는 표현이 되고, 18절에서는 '아버지 품에 계신 독생자 하나님'으로도 표현되며, 17절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이 명확하게 나온다.

요한은 복음서 서문에서 '말씀'이신 분, '그 분', '아버지께로부터 오신 독생자', '아버지의 품에 계신 독생자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 증거하려고 한다. 요한이 이 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오직 '그 분', 즉 예수님의 영광을 증거하고 그것을 듣는 자들이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분'이 말씀하신 것과 행하신 것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있다'는 이미지와 '~을 향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리스어에는 '함께'라는 뜻의 단어로 '' σύν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사용되는 그리스어는 전치사 '프로스'(προς)이다. '함께'라는 의미도 있지만, 본래는 '~로 향하다'라는 뜻이다. 게다가 '~로 향하고 있었다'의 시제는 미완료형이다. 처음부터, 지금도, 계속 '말씀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고, 지금도 '향하고 있다'는 뜻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계실 때에도 '계속 향하고 계셨던' 것이다. 말씀만이 하나님(아버지)을 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버지도 말씀(아들)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계를 가진 이미지가 바로 '함께'이다.

, 그리스어의 '프로스' προς라는 전치사는 기본적으로 '~을 향하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마주하다'라는 뜻으로 '함께'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마주함'이 바로 요한복음에서는 '생명, 영원한 생명'이라고 저는 이해한다. 그리고 그 생명에 '머물러 있는 것'이 요한복음의 키워드가 되고 있다.

 

기독교의 놀라운 점은 '말씀', '그 분'이라고 말씀하시는 분, 아버지의 품에 계셔서 항상 아버지와 마주하고 계셨던 분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본래 '그 분에 의해 지음 받은 우리'를 하나님 쪽으로 향하게 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다. 다시금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요한은 복음서 전체를 통해 반복해서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2.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주신 기적

 

+ 요한복음 2:1-11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어머니를 향해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여자여"라고 말씀하신다. 뭔가 차가운 느낌이다. 게다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신비한 대화가 오가고 있다.

어머니는 예수님을 믿으셔서 하인들에게 "저 사람이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해 주세요."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결혼식에 초대받았지만, 어머니는 이미 이 결혼식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엌을 관리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혼인잔치의 혈연관계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가나라는 곳은 1장 마지막에 나오는 나다나엘의 고향이다(21:2).

 

(1) 숫자에 집착하는 요한

 

유대인인 요한은 집착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고집'이라는 것은 거기에 어떤 깊은 의미를 느끼고 있고, 항상 명상의 원천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관복음서에는 없는 요한만의 고집스러움이 "저에게는 매우 매력적이다.". 그 중 하나로 '숫자'에서 요한은 '7'이라는 숫자를 고집한다. '일곱 가지 표적'이 그렇다. '일곱'은 완전수이고, 그 앞의 '여섯'은 사람의 수이다.

 

본문, 요한복음 2:1'그 후 사흘째 되는 날에'라고 되어 있다.

+ 1:19 이후 세례 요한의 증언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그분의 끈을 풀 만한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고 증언한다. '첫째 날'(장소는 베다니)

+ 29'그 다음날'... 실제로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보라. 세상 죄를 지우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언한다. '둘째 날'

+ 35'그 다음날'... 요한의 제자였던 요한과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났고, 그 날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 '셋째 날'

+ 43'그 다음날'... 제자로서 빌립과 나다나엘이 더 제자로 합류한다. 특히 나다나엘은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선생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당신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고 고백한다. '넷째 날'(갈릴리로 향하다)

+ 21절은 '그 후 사흘째 되는 날에'라는 말이므로 그날, 다음날, 그 다음날이라는 뜻이 된다. 요한은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은 여섯째 날이라고 말하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단순한 날짜가 문제가 아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은 여섯째 날, ''이라는 숫자는 불완전한 숫자이다. ''은 인간의 노력으로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하는 세상, '노력하다'라는 세상이다. 가나의 혼인잔치 사건은 인간의 한계가 있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완전함이 드러난 사건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여섯'이라는 숫자에 집착한다면, 26절에 "거기에는 유대인의 정결 규례에 따라 ... 돌로 만든 물두멍이 여섯 개 놓여 있었다."라고 되어 있다. 여섯 개의 물두멍이 상징하는 것은 유대교의 규례에 따라 자신을 정결하게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세계, 가치관이다. 그런 인간의 세계, 그 불완전한 여섯 개의 물두멍에 물을 가득 채워도 물은 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줌으로써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맞는 완전한 것으로 바꾸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요한은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런지 전혀 말씀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내 때가 이르면...' 이런 '표적', 즉 물이 향기로운 포도주, 즉 향도 맛도 뛰어난 포도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적'인 것이다.

 

요한의 수에 대한 집착은 하나님의 독생자를 통해 우리에게 온전한 것이 나타났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가져다 주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유대교의 관습적인 시대는 끝났고, 이제 메시아로 인해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기쁨을 표현하는 포도주의 시대가 왔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과 인간의 친밀한 관계가 가져오는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2) 기쁨의 잔치를 나타내는 포도주

 

요한은 하나님의 완전함을 '향기로운 포도주'로 표현하고자 했다. -'순진한 포도주'라고 하는지 알 수 있는 이유는 10절에 '네가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잘 간직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포도주는 성경에서 <기쁨>을 상징한다. 무대는 결혼식이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 예수님도, 예수님의 어머니도, 그리고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초대받았다. 혼례는 사람과 사람이 맺어지는 기쁨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 기쁨의 혼인잔치에서 빠질 수 없는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결혼식 연회 도중 준비한 포도주가 없어진다. 당시 이 지역의 관습상 혼례 연회는 며칠, 때로는 7일 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혼례 연회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진다는 것은 손님을 초대하는 입장에서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혼인잔치 집의 사정을 파악한 예수의 어머니는 아들 예수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알린다(3). 어머니는 예수님에게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어떤 행동을 기대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의아한 말씀을 하신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4).

 

이 부분(24)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예수님은 사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어머니의 부탁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이 '여자여'라는 부르심에도 나타나 있다는 생각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적인 활동을 시작하신 이상,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넘어선 분으로 발언하신다는 이해이다.

+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의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하늘로 올라가는 영광의 때를 의미한다. 그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포도주가 다 떨어졌다고 해도 어떻게 관여하라는 말씀이신데,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때가 오지 않았으니까.

+ 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때가 왔을 때 나타날 영광을 가리키는 '표적'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표적'을 말이다.

+ 예수의 어머니는 '어머니 교회'를 상징한다는 생각이 있다. 예수의 어머니가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예수에게 제안하는 것은 어머니 교회가 세상을 위해 중보하는 모습이라는 이해이다. 이것저것 많은 것을 손에 쥐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 그런 세상의 현실을 호소하며 중보하는 교회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예수의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와는 아직 아무런 관계가 맺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라는 뜻이다.

 

(3) 예수의 어머니와 예수의 신비한 말씀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어머니와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하신 신기한 말씀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 예수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하신 말씀 : "그분이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다 해 주세요."

+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하신 말씀 : "물동이에 물을 채우라."

 

후자의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하신 말씀, "물동이에 물을 채우라"는 매우 난해한 말씀이다. 포도주가 없는데 물병에 물을 채우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지시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하인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하였다."라는 것이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예수님 말씀대로 믿고 따랐다'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이다. 말씀하시는 것은 단순한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고 그대로 믿어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예수님의 어머니가 한 말(5)을 마음에 새겨보자.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행하라." 그렇게 하면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것과 같은 일이 당신의 삶에 일어날 것이다.

'혼인잔치'는 하나님과 사람의 교제에서 그 완성을 상징한다. 요한계시록에서는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과 교회의 휴거가 '어린양의 혼인잔치'로 묘사된다. '포도주'는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의 기쁨을 상징한다. 포도주가 없어진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교제에서 '기쁨이 고갈되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 시대에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사람의 교제를 유지하기 위해 정결의식, 금식, 자선 등 여러 가지 업을 행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기쁨이 없었다. 단지 의무일 뿐이다. 해야 하니까 하는 것이다. , '열심히 해야만 하는' 세상이었다. 그래서 거기에는 '기쁨'이 없었다. 기쁨이 고갈되어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기쁨을 상징하는 포도주가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에 의한 업이 무너져 내려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가 회복되어, 향기로운 포도주로 상징되는 최고의 맛으로, 좋은 향기로서 맛볼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그 맛을 누리는 것이 실현되는 것, 그것이 바로 메시아 왕국의 도래이다. 요한계시록 19:9에 주의 사자가 요한에게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기록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맛있고 질 좋은 기쁨의 포도주를 마실 수 있다. 그 비결은 간단하다. '그 분의 말씀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것'이다. 정말 좋은 것, 진짜 좋은 것은 처음엔 거칠고, 잘 안 먹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깊이 접하고 맛보면 그 좋은 점을 점점 알게 된다. 성경은 결코 우리에게 거칠게 대하지 않는다. 생명에 관한 것, 무거운 것의 시작은 잘 붙지 않는다. 그러나 믿는 마음과 인내심을 가지고 임한다면 그 맛과 내용의 깊이가 그 어떤 것보다도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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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버지께로부터 온 독생자'는 영원토록 '아버지께로 향하신 분'임을 말씀드렸다. 그러나 어둠의 세력, 죄의 세력은 우리를 하나님 쪽으로 향하지 못하게 하는 세력이다.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려고 보내신 예수님께 무관심하게 만드는 힘, 그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힘, 그것이 흑암의 힘이고 지배이다. 그리고 그 힘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기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음에서 부활시켜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셨다. 이 땅에서 아무리 핍박을 받고, 사형을 당해도 아들 예수님은 한 순간도 아버지로부터 떠나지 않으셨다. 오히려 끝까지, 십자가의 죽음까지 그 마음은 아버지를 향하고 있었다. 이로써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할 수 있도록 하셨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은 지금도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다. 그리고 어둠은 이 빛을 '이길 수 없다'(요한복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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