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의 기도(2)

'제자들을 위한 기도'

- 요한복음 17:6-19 -

샬롬선교회 


[요한복음 17:11, 15~19]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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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기도의 두 번째 부분은 제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1) '세상에서 꺼낸 자들'

+ 세상에서 꺼낸 자들. 혹은 세상에서 택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조금 뒤인 14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존재,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2) '예수께 주신 자들'

+ 누가 세상에서 데려가셨느냐 하면 아버지입니다. 누가 그들을 세상에서 택하셨는가 하면 아버지입니다. 앞서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로 올 수 없다."(6:4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예수님께서 중보하시는 사람들은 아버지께서 이끄셔서 아들 예수님께 맡기신 자들입니다. 누가 예수님께 맡겼느냐 하면, 아버지입니다.

 

+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기신 자들은 말하자면 이 세상의 엘리트들이 아닙니다. 뛰어난 자들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선택하시고 이끄신 사람들은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 예를 들면,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그들은 어부였고, 무식한 사람입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그들은 번개의 아들이라 불리며 성질이 급하고 감정적인 타입입니다.

*열성당원 시몬(로마제국에 무력 대항도 마다하지 않는)과 매국노로 불리는 세리 마태.

*의심이 많은 도마와 정직한 빌립(그는 아는 척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정직하다).

*예수님을 돈에 팔아넘긴 가롯 유다.

*그리고 그 외 바돌로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야고보의 아들 유다 - 이 세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3)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

+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참되고 진실이라고 믿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확실히 보내심을 받은 메시아라고 믿은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군중들과 지도자들은 믿고 받아들이지 못했으니까요.... 그들만이 믿었던 것입니다.

 

(4) '예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믿는 자들'

+ 예수님은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것은 너희 것이요, 너희 것은 내 것이니라. 그리고 나는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었느니라."라고. '그들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을 그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 전혀 불평할 것이 없지 않습니까? 훌륭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으로 믿고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다면, 그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더 이상 무엇을 더 요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도대체 제자들을 위해 무엇을 기도하시려는 것일까?

 

1. 파멸적인 멸망으로부터 지켜질 수 있도록 (소극적 기도)

 

+ 답은 11절 후반부입니다.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이것이 그들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이 표현이 조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Living Bible에서는 "이 사람들이 한 명도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십시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는 여기서 동의어입니다. 또한 이 기도는 15절의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라는 기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 참고로 '지키다', '보호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레오-' τηρέω는 요한복음의 특유한 동사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동사는 70번 사용되었는데, 그 중 18, 요한복음의 7번을 포함하면 25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 마태복음 6, 마가복음 1, 누가복음은 0회인 것을 감안하면 요한복음은 이 단어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 18회 중 12회가 '최후의 만찬'(13~17)에 있습니다.

 

+'-레오-' τηρέω14장에 4(15,21,23,24), 15장에 4(10,10,10,20,20), 16장은 없고, 17장에 역시 4(6,11,12,15)가 나오는데, 14장과 15장에서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연결돼 있습니다. 17장에서는 새번역에서는 '지키다'로 번역되어 있지만, NIV 번역에서는 protect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8, 9장에서는 keep, 2:10, 12:7에서는 좋은 것을 남겨둔다는 의미로 save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 이러한 '지키다', '지키다', '간직하다'(obey, product, keep, save)는 의무적인 관여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에 근거한 자발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잘 지켜졌지만, 이제 예수님이 세상을 떠난 후 세상에 남겨진 제자들이 악한 자들에 의해 그 관계에서 탈락할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믿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보내신 메시아가 맞다고 믿었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직 진정한 참여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의 여러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만 그 유대가 확인되고 강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험 속을, 시련 속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가 필요했습니다.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셨는데, 그 기도 중에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가 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라는 말은 본래 이상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시련은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도 편지 속에서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이를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여기라."(1: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예수님도 공생애 동안 끊임없이 시험을 당하였습니다. 시험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은 바로 그 시험의 정점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 아버지와의 신뢰관계가 최고도로 시험받는 동시에 최고도로 증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주님의 기도 중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는 시험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 뒤의 '악에서 구하소서'와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파멸로 이끄는 시험으로부터, 파멸적인 멸망으로부터 지켜달라는 의미의 기도이라고 저는 받아들입니다.

 

+ 그 증거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전하사', '한 사람도 빠지지 않게 지켜주소서', '악한 자로부터 지켜주소서'라는 예수님의 기도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자들은 이후 예수님을 배신합니다. 그러나 그 배신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멸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고 두터워집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용서하셨고, 그들도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단 한 사람만 파멸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가롯 유다입니다. 그에 대해 예수님은 12절에서 "그들 중 누구도 멸망하지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만 멸망하였느니라. 이는 성경이 성취되기 위함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롯 유다는 회개하지 않고 자책한 결과 자살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파멸적인 멸망도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 예수님의 제자들은 시험을 받아 예수님을 배신했지만, 그것으로 인해 그들이 파멸적인 멸망을 초래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의 희생으로 '아버지의 이름 안에 머물러 있고', '악한 자들로부터 보호받고' 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 중보기도하시는 기도의 내용은 그들이 파멸적인 멸망으로부터 지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보면 '소극적'인 내용입니다. 그들이 파멸적인 멸망으로부터 지켜달라는 것뿐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인 의미의 기도 내용은 '그들이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2.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적극적 측면의 기도) 

 

+ 이 점은 하나님의 구원의 가장 중심적이고 가장 핵심적인 부분과 관련이 있는데, 11절의 마지막 부분을 살펴봅니다. 거기에는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라' -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은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 우주적인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들이 하나가 되는 것'. 그리고 그 '하나'(헬라어로 '헤이스' ες)'우리가'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처럼 '우리가' 하나라는 뜻입니다. 참고로 17장에서는 '헤이즈' ες4번 사용되었습니다. *11, *21, *22, *23.

'일치'의 주제는 20절 이후의 '모든 신자를 위한 기도'에서 더 전개됩니다.

 

+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친밀하고 밀접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랑의 관계야말로 요한복음의 주요 주제인 '영원한 생명'이며, 아버지와 아들의 '영광'의 현현입니다. 그리고 이 '영원한 생명' 안에, '영광의 빛' 안에 우리가 초대받아 함께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에는 '하나 되게 해달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5절에는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함께 가졌던"라는 것은 다시 말해 '하나였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진리로 인한 성별(聖別) - 세상에 있으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

 

+ 본문, [요한복음 17:16~19].

+ 세상에 있으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예수님은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긴장감을 가지고 사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 유일한 지침은 예수님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 세상에서의 '외교 정책'입니다. 세상과 멀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에 매몰되어 동조하는 길도 아닙니다. 세상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야 하는가 - 그 외교정책을 위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결국 제자들이 취한 외교정책의 원칙은 예수의 삶의 방식에서 배운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소극적인 정책 중 하나로 '보복하지 말라'는 원칙이 있습니다(로마서 12:17, 데살로니가전서 5:15, 베드로전서 3:9, 마태복음 5:39 ). '누구에게나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사는 삶입니다. "스스로 복수하지 말라. 하나님의 진노에 맡겨라. ... 악에게 지지 마십시오." (로마서 12:19)라는 가르침은 예수님의 삶 그 자체입니다.

 

+ 보다 적극적인 외교정책으로는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12:17)는 원칙입니다. "선한 일을 도모하라"는 가르침은 데살로니가전서 5:15, 누가복음 6:27, 베드로전서 2:12, 15 등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는 것',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축복하는 것'도 이 선한 일을 도모하는 것'에 포함됩니다. 또한 중요한 일을 하는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세상의 권위자들을 인정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존경하는 것도 '선한 일을 도보하는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내야 할 세금은 내야 하는 것입니다.

 

+ 이렇게 세상에 보내질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어떤 외교정책을 취해야 하는지는 이미 예수님께서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라는 것은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진리이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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