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부인 예고

- 요한복음 13:36-38 -

샬롬선교회 


[요한복음 13:36-38] “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37.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1. 체질을 당하는 베드로

 

가롯 유다의 배신에 이어 사탄은 다음 타깃을 다른 제자들, 특히 베드로로 정했던 것 같다. 요한복음에서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지만, 누가복음 22:31-34을 보면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체질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회복된 후에 형제들을 '굳게 하라'는 암시를 주셨다.

 

'체질하다'는 무슨 뜻일까? ''는 농사일에서 곡식 속에 함께 들어 있는 쓰레기나 껍질 등 불순물과 곡식을 구분하는 도구다. 거기서 '체질한다'는 것은 분명히 사람 안에 있는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 위해 불순물을 제거한다는 의미이다. 사탄은 베드로의 신실함을 시험하기 위해 '체질'을 요구했고, 그 요구를 들어주었다. 아마도 사탄은 베드로를 '체질'함으로써 베드로의 마음에 악한 생각을 불어넣어 베드로의 믿음이 무너질 것으로 예상했던 것 같다. 설령 예수님이 베드로를 '바위'라고 부르셨더라도 그의 믿음이 쭉정이와 같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런 사탄의 계략을 주님은 왜 허락하셨을까? 그것은 그것이 베드로에게 필요하다고 주님께서 판단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베드로를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깊이 다루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만약 여기서 예수님이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셨다면, 아마도 베드로는 체질을 당하여 믿음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노니." - 이 확실한 보호 속에서 주님은 욥이 그랬던 것처럼 베드로의 내면에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고자 하셨다. 누가복음 22:31'체질하다'('시니어조' σιvιάζω)라는 어휘는 신약성경에서 여기에서만 사용된다. 베드로가 '체질화'를 통해 배운 실패의 경험은 결국 회복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축복을 가져다준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주님께 있는 자들이 체질되는 것을 허락하시는 이유라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계략을 허락하셨지만, 그 사탄의 계략을 통해 제자 베드로가 진정한 '반석' 같은 존재가 되어 '형제를 능하게 하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의 지혜를 볼 수 있습니다.

'힘주다'로 번역된 헬라어 '스테리조-' στηρίζω'강화하다, 견고하게 하다, 단단히 세우다, 굳건히 세우다, 흔들리지 않게 하다'라는 뜻이다. 이 동사는 누가복음 9:51에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στηρίζω)'라는 구절에서도 사용되었다. 거기서는 분명한 결심을 표명하고 단호하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은 괜찮다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가 배워야 할 점은 자신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었다.

 

2. 예수님의 경고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

 

베드로는 가롯 유다처럼 위선자가 아니다. 오히려 성실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바로바로 말하기 마련이다. 또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게다가 남들보다 더 강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다른 제자들과 비교하면 이보다 더 알기 쉬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 식탁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을 살펴본다. 다만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은 이야기의 흐름(맥락)이 다르지만, 예수님을 부인하는 말 - "(오늘, 혹은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하리라"(마태복음 26:34, 마가복음 14:30, 누가복음 23: 요한복음 13:38) -는 정확히 일치한다. 이 예고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도 네 복음서가 공통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1) 마태복음 26:31, 33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2) 마가복음 14:27, 29

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 누가복음 22:31, 33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4) 요한복음 13:36, 37

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37.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이상과 같이 베드로의 "모든 사람이 넘어질지라도 나는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릴 수 있습니다."라는 확신에 찬 말을 보면, 베드로는 매우 순수하고 열심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주님의 길을 따라갈 수 없었다. 실은 자신의 연약함을 모르는 자의 강인한 말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 베드로를 위해 하나님은 사탄이 제자들을 '체질'하는 것을 허락하신 것이다. 특히, 제자 중 가장 먼저 제자 중 가장 먼저 제자 베드로가 받은 체질은 정욕이나 탐욕과 같은 육욕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주님이 베드로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토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자신감 넘치는 베드로에게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말하게 하는 것은 사탄에게는 베드로의 체면을 구겨서 다시는 예수님 앞에 서지 못하게 하려는 음모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베드로를 지키고 구원하신 것은 예수님의 '침묵의 눈빛'이었다. 이 예수님의 눈빛을 접한 사람은 복이 있다.

 

3. 성경에서 '세 번'이라는 단어의 의미

 

예수님의 생애에도, 사도 바울의 생애에도 의미 있는 '세 번'이 있다. 예수님의 경우, 겟세마네 기도에서 세 번이나 아버지께 자신이 받은 잔을 꼭 마셔야만 하는지를 물으셨다. 바울의 경우, 세 번이나 자신에게 주어진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기도했다.

베드로의 경우에도 이번 경우처럼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세 번의 예수님 부인 예고가 있다. 베드로는 이를 부인하지만 실제로 그대로 이루어진다. 나중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묻는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또 사도 베드로가 옥상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하늘에서 큰 보자기 같은 것이 내려오는 꿈을 꾼다. 그러자 주님이 "그 보자기 안에 있는 짐승, 들짐승, 하늘의 새를 잡아먹으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단 한 번도 깨끗하지 않은 것, 더러운 것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주님은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깨끗하지 않다고 말하지 말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시고, 그 그릇을 하늘로 들어 올리셨다. (사도행전 10:16, 11:10)

저는 이 '세 번', '세 번이나'라는 말 속에 중요한 일에 대해 '납득할 때까지'라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 사물의 중요성을 바르게 받아들이게 하려는 하나님의 배려가 거기에 숨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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