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 누가복음 8:19~25 -

 샬롬선교회


19. 예수의 어머니와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로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20. 어떤 이가 알리되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22.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23.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서언.

 

누가 8:19-25에는 두 가지 주제가 다루어져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호수 위의 풍랑의 사건이다. 언뜻 보면 서로 다른 사건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1.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으로서의 공동체 (8:19~21)

 

'하나님의 말을 듣는다'라는 뜻은, 예수님이 '듣는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라', '듣는 법에 주의하라'라고 말한 것과 관련이 있다. , 듣는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듣고 알았다고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은 그 뜻을 스스로 묻는 것, 스스로 묻고 진의를 아는 것이 '듣는다'라는 것의 의미였다

 

'하나님의 말을 듣는다''듣다''그것을 행하다''행한다'는 동사는 각각 함께 현재형 분사로 '계속 듣다', '계속하다'를 의미한다. 주께 있는 새로운 공동체란 그런 공동체이다. 항상, 반복, 납득이 갈 때까지 물어가는 공동체이며, 참뜻을 깨닫고 따라가는 공동체이다. 예수님이 말하는 매세지의 참뜻을 묻고 그것을 행하기 위해, 하나님께 선택된 자들, 이것이 혈연관계와는 다른, 그것을 초월한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이다. 하나님의 식탁에 앉아, 함께 하나님의 말씀의 참뜻을 살피면서, 그것을 먹는 즐거움을 얻는 신앙의 공동체이다.

 

2. 예수님의 질문 (8:22~25)

 

누가의 복음 8:22-25은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기 위해 예수님이 먼저 배에 올랐고 그 뒤에 제자들이 따랐다. 그들은 먼 호수로 나갔다. 예수님은 배에 오르자, 예수님은 깊이 잠들어 버렸다. 신개역(新改訳)'예수님은 곤히 잠드셨다.'(23)고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몰아친 폭풍, 맹렬한 돌풍이 그들에게 몰아쳤다. 이 때문에 그들은 물을 뒤집어쓰고 배도 물에 잠기며 덮쳤다. 제자들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아 예수님을 깨웠다. 불쑥 일어난 예수님이 바람과 폭풍을 꾸짖는다. 바람과 풍랑은 멈추고, 바람이 멎고 물결이 잔잔해졌다. 제자들은 놀라고, 바람에 권위를 갖고 명령을 내리고, 그것을 막은 예수님에 대해 두려워하고, 놀라며,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라고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확실히 예수님이 바람을 향해 꾸짖고, 바람이 멎고, 물결이 잔잔하게 된 현상이 놀랍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한 물음이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8:25)

이 한마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이 사건의 열쇠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라고 하는 분은 하나님 나라의 의(奥義) 속에 항상 살아 계시고, 거기에서 말씀하시고, 행하고 계신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 진의를 알아보고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폭풍우를 만났을 때, 그들이 예수님이 말하는 것을 어떻게 듣고 있었는지가 폭로되고 말았다.

 

여기서 진정한 놀라움은, 폭풍우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배 뒷머리(舟尾)에서 곤히 주무셨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이 예수님의 모습보다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으로 폭풍우가 멈추는 것에 더 놀라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잠이 드신 모습에서야 말로 하나님 나라의 참 훌륭함을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에 대해 놀라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이 기적 같은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

 

원래 예수님이 배를 타고 건너편에 건너가려고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돌풍이 불어오는 위기를 맞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은 위기적인 사건에 있어서의 신앙의 살아있는 현장 훈련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폭풍을 만났을 때 제자들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 예수님은 '침착하게, 아버지를 신뢰하고' 계셨다. '아버지를 신뢰하고' 있던 예수님은 폭풍우 속에서도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 신앙이란 이런 것이라고 가르치려고 한 것이다. 예수님이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이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현실이다. 그리고 이 믿음을 주고, 키우기 위해서,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공동체, 같은 한 배에 탄 운명공동체가 필요한 것이다.

 

결언.

 

1. 하나님께 선택된 자들은 혈연관계와는 다른,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이다. 하나님의 식탁에 앉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함께 먹는 즐거움을 누리는 신앙의 공동체이다.

 

2. '평안한 잠'은 두려움을 몰아내는 하나님의 사랑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의 힘이야말로 영원한 생명,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의라고 할 수 있다.

=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쿠데타로 낙향했을 때 지은 시편 3편에, 다윗은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시편 3:5)라고 했다. 또 시편 27편에,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편27:4)라고 했다.

다윗이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면, 우리도 다윗이 단 하나의 일로 청한 것을 자신의 우선 요구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3.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행하심, 그 모든 것이 우리의 현실을 증거하고 있다. 우리의 두려움을 몰아내는 그 신앙은 어디에 있는지를 예수님은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 예언자 이사야는 강대국의 위협에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이사야 30:15)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했다. 그런데 하나님 백성들은 그걸 원치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