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선교 방법론에 대한 연구


 제1장 서론


1.연구의 중요성과 목적


대한 민국은 단일 민족 국가이지만 남북으로 분단된지 50년이 넘어 간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분단의 현실을 뛰어넘어 북한을 선교하기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현실상 선교의 가시적인 효과들이 나타나기에는 아직 미흡하다. 그 이유중의 가장 큰 요인은 북한의 폐쇄정책 때문이다.
그동안 겨우 극동방송이나 아시아방송과 같은 전파선교사만이 폐쇄된 장벽을 뛰어 넘어 나름대로 선교의 간접적인 효과를 거두는 정도이다. 이러한 간접선교는 어느정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근년들어 북한의 기아실태를 조사하고 식량원조의 일을 위해 교계의 여러지도자들이 많이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오는등 화해의 물꼬가 다시금 일어 나면서 북한선교에 대한 새로운관심이 일고 있다. 이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북한선교문제들을 다루어 오는 것을 볼 때에 아쉬운점이 없지 않게 있어왔다. 사단법인 북한선교회의 경우 전국적인 조직망을 가지고 군대조직과 같은 헌신자들을 모집 관리해 왔으나 결국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와해되어 버렸고 모퉁이돌 선교회의 경우도 사역의 특성상 너무 비공개적인 것이 많아서 투명성에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의 북한 소떼 1000마리 기증을 계기로 새롭게 열린 금강산 관광등 모처럼 찾아온 남북화해 공존의 시기에 우리는 새로운 북한 선교전략을 수립해 볼 수 있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2. 연구의 범위와 방법

본 연구논문이 논하고자 하는 주제는 북한이 과연 우리의 선교대상지역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것이 밝혀져야 방법이나 전략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북한에 대한 연구는 많았지만 선교적 차원에서 전략을 찾으려는 노력은 미비하였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북한선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부터 하고자 한다 .
본 논문은 먼저 북한의 해방전후 종교상황과 기독교현황 파악을 살펴보고 지금의 기독교 현화을 비교해 볼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종교정책 및 변화를 살펴 봄으로서 현실적인 선교의 가능성을 살펴보고 우리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위해 교회가 헌신할 수 있는 부분들을 살펴 보며 나아가 현시점에서 할 수 있는 북한선교의 성공적 전략을 모색해 보려고 한다. 그렇게 함르로서 북한의 문이 완전히 여리고 통일이 현실로 닥아 왔을 때를 대비하여 오늘 우리가 해 놓을 수 있는 준비들을 사려 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 1장 서론을 거쳐, 2장에서는 선교에 대한 개념이해와 북한선교의 문제를 그리고 3장에서는 북한의 종교현실이해를 위한 연구를 하며 4장에서는 북한선교에 대한 신학적 성경적 토대를 살펴 보는 작업을 할 것이다. 그리고 5장에서는 북한선교의 당위성과 현재 북한선교의 현황 그리고 북한선교의 현실적 전략을 다루고자 한다. 특히 4장에서 북한선교와 통일 이후의 북한 선교정책에 대하여 연구함에 있어 본 연구자는 무엇보다도 신. 구약성경속에서 통일과 화해의 원리들을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적 위기나 어려움 전쟁의 위험가운데서도 선교와 말씀의 전파를 마다하지 않았던 사역자들의 수고와 노력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그러한 사역속에 있었던 선교의 원리들을 살펴보고 이것을 오늘 우리의 북한 선교에 적용해 볼 것이다. 현재 우리의 현실처럼 남북이 대치되어 있는 상황속에서 또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던 상처들이 남아 있는 상황속에서 어떻게 하면 순리적으로 저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저들에게 접근 할 수 있을 것인지를 모색하도록 할 것이다.
5장에서는 현재 교계일각에서 이러어나고 있는 북한지역 교회 재건 운동에 대한 논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이의 실천 방안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제2장 . 북한선교의 개념 이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가 되시는 분이다. 그 분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놓은 담을 헐어서 둘이 하나가 되게 하셨다.(엡 3:4) 성경은 평화와 화해의 복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담이 허물어져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될 것을 말씀 하셨다. 지구상에 이제 유일하게 두체제로 남아있는 한민족은 그래서 성경적으로 보나 지나온 역사적 상황으로 보나 언젠가는 하나로 통일되어야 할 과제를 안고있다. 이미 한국은 분단된지 어언 50년이 다 되었다. 통일에 대한 열망은 너무나 가득하지만 이에 대한 접근은 너무나 더디어서 마치 거북이의 걸음에 비유될만하다. 정치인들에게 맡겨진 이 통일에 대한 접근은 양쪽의 정치적 이해에 의해 그 동안 많이 조작되고 왜곡되어 왔음이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북풍사건등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북한과의 접촉이나 통일논의가 정치권에만 맡겨둘 수없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통일을 위해 힘들여 노력을 기울인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인구의 4분의 1이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한국교회의 위치로 보건데 그 역할들이 매우 미비하며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분명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보거나 역사적으로 볼때에 한 민족이 하나로 나뉘어져 영원히 고착된 적이 없으며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협동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리고 우리는 머지않는 세월안에 남북이 통일된 것이며 또 통일은 곧 실현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유수한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며 특히 김일성의 사망 이후, 계속되는 북한의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북한의 급작스런 붕괴보다는 연착륙(soft landing)을 유도하는 쪽으로 국제사회가 북한을 원조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이것이 1998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론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수년안에 남과 북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대화 혹은 교류가 일어날 것이 기대되어진다 할 것이다. 그런 만큼 통일도 한층 가까워질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므로 이때야말로 한국교회가 북한을 선교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먼저 본장에서는 북한 선교의 당위성을 깨닫기 위해서 북한선교에 대한 개념부터 파악하도록 하자.

 

1.선교에 대한 이해

 

선교는 이제 교회의 보편관심사가 되고 있다. 과거에는 선교가 문제를 가졌으나 지금은 "선교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다. 역사상에 있어왔던 많은 선교의 배경에는 정치, 경제, 군사적인 문제들이 뒤따랐다. 우리가 북한을 선교하기에 앞서 먼저 선교의 개념을 정립해야할 필요를 느끼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1)선교의 개념에 대한 견해
선교라는 말의 영어「Mission」이다. 이말은 라틴어 「Mitto」에서 왔는데 이는 헬라어 「 」와「 」에 해당한다. 이는 메시지를 전달하러가는 것을 말한다. 즉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어 여행하면서 그를 보낸자의 권위를 가지고 메시지를 전달하러 가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적인 의미로 씌여지면 신앙을 다른 공동체에 보내는 일을 말하는 것이 된다.
Missionary는 13세기 카톨릭 수도원에서 처음사용되었다. 그 의미는 세상에서 사도의 생활과 사역을 위하여 보냄을 받은자를 지칭하였다. 그러나 16세기와 17세기에 이르러 카톨릭교회가 세워지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기 위해 보냄을 받은 사람을 「선교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용어는 개신교 선교와 선교사에게도 그대로 사용되어 지금까지 이른 것이다. 개신교에서 이 선교의 개념을 처음으로 정립한 사람이 독일의 선교학자 바르넥(Warneck)이다. 그는 선교를 「비 기독교 세계에 교회를 설립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대에 이르러 선교의 개념에 대한 성경적 개념 형성에 많은 시도가 있었는데, 1952년 독일의 윌링겐에서 모인 선교대회에서 이의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 되었다. 교회의 선교적 임무란 주제에 대해 선교에 대한 교리는 교회일치, 그리고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인 세계질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본 것이다. 즉 선교수행에 있어서 교회 연합을 강조하고 선교의 주역은 서구의 교회와 함께 비서구의 신생교회들도 함께 담당하여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교즉 「Missio Dei」에 대한 관점을 정리하게 된다.
「Missio Dei」에 대한 개념이 보다 구체적으로 정립된 선교대회는 1968년 웁살에서 열린 W.C.C의 4차 대회이다. 이때 증거 보다는 봉사를 공존 보다는 대화를 해야한다는 적극성을 보임으로서 사회주의의 대화를 시작하게 되어 사회정치적인 선교의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다가 1975년 나이로비선교대회와 1983년 뱅쿠버 선교대회를 기점으로 사회선교의 관점에서 교회중심 그리고 말씀중심의 선교운종으로 바뀌게 되는 계기를 맞게 된다.
프랑크 프루트 선언문에서는 선교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세계에 전하되 모든 사람이 그를 믿어 구원을 얻을 때 까지 선포하는 일"이다고 했다. 여기에는 교회내외에서 행해지는 설교, 성례, 봉사등의 모든 활동이 그리스도교의 선교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복음주의 선교개념에도 두 가지의 조류가 있다. 첫째는 복음을 듣는 자들이 믿든지 안 믿든지 전달을 위주로 하는 선포의 선교이고 둘째는 사람의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듣는 사람을 확보한 다음 그들이 예수를 믿도록 까지 하는 설득의 선교이다. 후자 선교론의 대표자가 미국의 맥가브란 교수이다. 현재의 어떤 기독교인의 집단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30억(이제 잠시 후면 40억에 이름)의 인구 전부는 반드시 현대적 기독교 선교의 특수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2) 에큐메니칼 선교와 현대의 복음주의선교
20C 기독교교회에서 제일 중요한 운동중의 하나는 에큐메니칼 운동일 것이다. 「위대한 세기」인 19C에 서구교회는 전세계에 교회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서구교회는 분열로 말미암아 선교지에 혼란을 줄 뿐만 아니라 선교에 큰 장애가 되었기 때문에 교회연합 운동이 일어났다.
교파간의 대화가 기적적으로 그 문이 열려지기 시작한 것은 20C 초부터 강하게 일기 시작한 에큐메니칼 교회운동 때문인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점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은 그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 공헌이 인정되는 것이다. 이 에큐메니칼 운동은 1948년 암스텔담에서 세계교회협의회의회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를 탄생시켰다.
W.C.C는 매 7년마다 각국의 회원들이 모여 총회를 가지는데 이때 스탭들이 해온일을 보고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방향을 제시한다. 1954년에 에반스톤에서 2차 총회를 가졌고 3차 총회는 1961년 뉴델리에서, 4차총회는 1968년 웁살라에서, 5차총회는 1975년 나비로비에서, 6차총회는 뱅쿠버에서 가졌다.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하나지 환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인종적, 사회적 모든 장벽이 제거된 통일된 세계이다.
1952년의 Willingen 선교대회이후부터 「선교」란 말 자체가 전통적인 선교개념인 영혼구원에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개념으로 변하게 되었다. Missio Dei개념에 의하면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세상에서 일하셨고 또 지그도 일하시는 사역에 대해 교회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이 선교라 규정하였다. Willingen 선교의 개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선교란 주님의 말씀 대한 복종만이 아니며, 또 회중의 모임이 대 한 헌신만이 아니라 선교란 모든 구속받은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권을 세우겠다는 뚜렸한 목적을 가지고 이들의 파송인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가 참여하는 선교운동은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에 그 근원이 있다.」
Willingen 이후 Missio Dei를 이론적으로 체계화시킨 독일의 George F. Vicedom은 선교란 이상 「교회의 선교도 될 수 없고 심지어 우리의 선교도 될 수 없고 오직 그의 선교」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주의 선교론은 「하나님-교회-세계」의 도식위에 서 있는데 새로운 선교론은 『하나님-세계-교회』로 바뀌게 되었음을 보게된다. 교회는 더 이상 선교의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교회는 세계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어야 한다.
결국 이 선교의 개념은 파송하는 교회, 소명감을 가지고 파송되는 파송자 및 파송받은 자가 향하는 피선교자를 부정하고 모든 신자가 다 선교사요, 모든 삶의 현장이 다 선교지라는 유권해석을 내려 이 선교개념이 좋은 면에서는 모든 삶의 현장이 다 선교지이기 때문에 신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평신도 역할과 의무를 중시한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그러나 급진적인 이 선교개념우로 말미암아 순수한 복음전도로서의 선교운동이 많이 위축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선교의 목표는 「이방인의 회심」이나 「교회수립」또는 「교회확장」에 있지 않고 기독교 세계나 특정교파 교회의 안과 밖이라는 경계선 저 너머에는 세계의 인간성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웁살라 대회에서는 「새 인간성 창조」가 선교의 목표이다. 영국의 John Tayior는 이러한 인간화로서의 선교개념은 산업화, 도시화, 도덕의 타락등에 비추어 볼 때 바람직하다고 극구 칭찬했다.
1972년 방콕에서 열린 선교대회 주제는 「Salvation Today」였는데 방콕의 선언서 「교회에 있어서 교회갱신」의 제 3분과는 「해방」을 첨가하여 선교의 목적을 정의했다. 이때부터 W.C.C의 좌경화는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1970년대는 해방신학이 신학계와 선교계를 지배하였던 때이기도 하다.1975년 케냐의 나이로비 W.C.C대회 주제는 "자유케 하시고 하나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였다. 결국 해방신학이 세계교회들을 사로잡았다고 할 수 있다. 5년후 호주의 멜보른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란 주제로 정치적 탄압과 억압문제를 교회의 선교 목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선교가 정치, 경제, 문화의 문제로 나아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러면 이러한 에큐메니칼적 선교관은 옳은 것인가?
결국 에큐메니칼 선교의 주제는 인간화와 자유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지상적 임함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인데 이러한 이론의 배경에는 역사적 발전론 즉 헤겔과 마르크스적인 발전론의 전제위에 세상이 점차적으로 희망적으로 변활 것이란 전제가 깔려있는 것이다.결국 W.C.C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문화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것이 드러난다.
이러한 좌경화의 반대에 서있는 사람들도 생기게 되었는데, 이들은 선교의 대위임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서 반전을 시도했다.


 

3)북한선교를 위한 선교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종교는 대중의 아편이라고 규정한다.이는 종교란 현실에서 만족할 수 없는 욕망을 환상으로 만족시키고, 현실을 정당하ㅘ 하기 때문에 종교는 아편과 같이 비현실적인 것으로 행복한 것처럼 만들고 동시에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장벽과 댋이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하에서 북한이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버리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복음을 전해야 하고 교회를 세워야 하는 것이 북한 선교라고 한다면 이는 보통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그 나름대로의 창조교리와 원죄교리, 구원교리와 교회론 , 종말론을 가지고 있다. 그들 그들의 힘으로 의가 거하는 새 땅을 건설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사상위에 북한은 수령을 중심으로 한 주체사상이라는 1인 절대우상화에 빠져 있다. 분단이 된지 50여년이 되었지만 아직 한번도 정상적인 관계나 교류가 없었던 폐쇄성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다. 그런 북한을 상대로 선교를 한다면 우리는 어떤 선교관을 가져야 할까?
첫째, 우리가 가져야할 중요한 성경적 선교사상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 사상이다.남은 자 사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성경은 이사야 37:31절이다. 이스라엘이 바사와 애굽과 수리아밑에서 시련을 당하여도 그루터기는 남게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엘리야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꿇지 아니한 사람 7000을 남겨 두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이미 증명된 것이다. 지난 1992년 중국의 문호가 완전히 개방되고 난 뒤에 우리가 하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완전히 말살 되어 없어진줄 알았던 중국의 기독교가 오히려 핍박기를 통하여 더욱 성장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에도 우리가 현실적으로 파악하루 수는 없겠지만 분명히 남아 있는 그루터기와 같은 신앙인들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지고는 있지만 실제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많은 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지하교회를 형성하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워보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러한 그루터기는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남겨 진 것임으로 다시 하나님의 정한 때가 되면 그루터기에서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꽃이 피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선교는 이러한 남은 그루터기를 다시금 자라도록 하는데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둘째, 주님의 대 위임에 대한 철저한 순종의 자세이다. 바울은 아시아로 가려고 하다가 성령의 강권하심을 입어서 마게도냐로 갔다. 이것은 결국 역사적으로 볼 때 매우 중요한 일이어서 기독교는 서진을 하게되어 오늘날 전세계에 복음이 심어지고 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게 되었다. 또 바울은 핍박과 매맞믕 사형의 형틀이 기다리고 있는 로마를 간절히 가기를 원했다.(로마서 1장) 복음을 위해서는 핍박과 고난도 당연히 여겼던 것이다. 북한은 같은 동족이면서도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인하여 아직까지 한 명의 선교사도 파송할 수 없었던 지역이다. 그러나 주님은 "너희는 땅끝까지 가서"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이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전하는 자가 없이는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성경적 선교임을 자각해야 한다.
셋째, 성경적 선교관의 세 번째는 자기동족에 대한 사랑이다. 바울은 어느 지역을 가던 먼저 회당으로 들어가서 그들 민족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다. 이는 그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민족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우리역시 타문화권선교와 마찬가지로 북한동포에 대한 선교의 중요성을 가지고 더욱 선교의 지원에 관심을 집중시켜야 한다. 현재 북한의 기아현실을 돕기위해 벌이고 있는 기독교연합의 북한지원 프로그램은 이의 중요한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당국이나 북한 주민에게 사랑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북한 선교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북한선교의 중요한 선교관은 복음주의여햐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가은데 하나님께서 남겨놓았을 남은자, 거룩한 그루터기에 대한 지원과 현황파악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대 위임에 순종하여 적그적으로 접근해 들어가려는 자세와 동족에 대한 더 뜨거운 사랑이 북한선교에 임하는 우리들의 선교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제3장. 북한의 종교 현실과 기독교


1.북한의 종교현실


1)해방이전의 북한 교세
기독교가 한국에 전래될 때 그 어느지역보다도 기독교의 부흥이 왕성하게 일어 났던 지역은 북한지역이었다. 그리하여 평양이나 선천은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리워졌다. 1938년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전체 60만을 조금넘는 기독교인의 75%가 당시 서북지방에 분포해 있었다고 한다.
1992년판 기독교 대연감에 따르면 1939년에는 전국에 5,289개의 교회가 있었으며 교역자수는 4,763명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신자수는 508,944명이었는데, 그중 북서지방의 신도수는 1940년에 이르러 265,285명 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평남이 642개의 교회에 529명의 교역자, 신도수는 88,718명이었고, 평북은 553개의 교회에 794명의 교역자, 61,323명의 신도가 있었다. 함남의 경우 245개의 교회에 216명의 교역자, 2,082명의 신자가 있었고, 함북은 125개의 교회에 134명의 교역자, 15,094명의 신자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해방이후의 북한 교세
1945년 당시 이북에 있는 총인구에 대한 기독교 인구가 일설에는 150만이라고 하지만 교회측 자료에는 30-35만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1946년 8월의 북한인구 916만명중 기독교인은 약 2,2%로 추정되는데 이것은 당시 조직화된 집단중에서 가장 큰 세력이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또 기독교는 당시의 지식인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집단이기도 했다. 어떻든 당시 신의주, 의주 , 선천, 정주, 영변, 평양, 강서, 진남포, 신천, 재령등 제 도시에 있어서 기독교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북한의 문헌은 그들 나름으로 북한 지역에서의 신앙의 자유 및 종교현황을 밝혔는데, 조선중앙년감 1950년판은 유일무이하게 당시의 종교현황을 기록한 북한의 공식문건으로 남아있다.
겉으로는 공화국 북반부에서는 완전히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다. 1946년 3월 23일에 발표된 20개 정강에는 "전체 인민에게 언론, 출판, 집회 및 신앙의 자유를 보장시킬 것"이라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할 것이 지적되어 있다. 공화국 헌법에는 제 14조에 "공민은 신앙 및 종교의식의 자유를 가진다." 라고 조선 공민에 대한 종교의 자유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북반부에 현존하는 주요 종교는 기독교, 불교, 천도교 등이다. 기독교는 구교, 신교가 있는데 구교에는 천주교(카톨릭)와 성공회(영국정교) 두가지 정파가 있으며 신교에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안식교, 구세군 등의 종파가 있고 장로교는 해방후 다시 소위재건파 혁신 복구파 라고 하는 두파가 발생하였다. 현재 북반부에는 기독교 교파중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는 장로교이며 구세군은 극소수이다고 했다. 그리고 북반부 기독교 교회수는 약 2,000을 헤아리며 교도는 신도만 약 20만여명에 달하고 신교에는 장로수는 2,142명이며 목사수는 410명 전도사수는 498명이다. 북한의 기독교 단체로는 종교 통일민주주의 전선 산하의 북조선 기독교 연맹이라고 밝히고 있다.


3) 1988년 이후의 기독교 현황
1950년 「조선중앙연감」에서 '종교'부분 마지막 기록이후 불행하게도 북한의 기독교 현황을 파악할 만한 어떠한 자료도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현재의 종교현황에 관해서 방문자료나 국제회의 자료와 같은 2차 자료들을 정리하여 소개하는 기사들이 1988년 이후 남한의 언론매체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현재의 기독교 현황을 파악해 보면 다음과 같다.
a.교인수:북한 전역에 1만명 (이들 일만명에 달하는 신도의 90%는 여자신자이며 초교파로 교회가 운영되기는 하지만 장로교가 80% 감리교가 17% 성결교가 2% 그리고 기타 교파가 1%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봉수교회 신자들은 15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b,교회수: 교회시설이 2곳이 있으며 이 두교회 이외에도 가정교회가 전국적으로 500여개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평양에 약 80여개가 있으며 평양당국은 앞으로 6개의교회를 더 세울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c.목회자수:현재 30여명의 목사가 있으며 그중 20여명이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데, 목회자 가운데 10명은 해방전에 안수를 받은 원로목사들이고 10명은 1972년에 3년 과정으로 세운 평양 신학원 출신이다.
d.교회현황
①봉수교회: 평양의 광복거리 입구 만경대 구역 건국동(@ 봉수동)에 자리하고 있으며, 1988년 좌석 300개의 규모로 새 건물을 지은 것으로 이성봉 목사와 박춘근 부목사, 그리고 장로 7명, 권사 4명, 집사 10명이 있으며 신도가 300여명에 이르고 있다. 어린이 주일학교, 청년회, 학생화, 전도회 등의 조직은 없으며 최근 성가대가 조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교회에는 조선 기독교 연맹이 함께 자리하고 있으며 이 조선 기독교 연맹에서는 신학원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 신학원은 3년 과정으로 운영되며 교회에서 2년내지 4년동안 전도사 생활을 하고 이후 목사 안수를 받도록 되어있다.
②칠골교회: 1990년 11월 평양의 김일성의 생가 근처에 세워졌으며 김일성의 어머니인 강반석을 기념하는 교회로 알려져 있다.
e.기독교 조직
현재 북한에 존립하고 있는 기독교 관련단체로는 '조선기독교도연맹'이 있다. 이 연맹의 내부 조직은 자세히 드러나지 않으나 표면적으로 나타난 조직을 보면 이 단체에는 중앙위원회가 결성되어 있으며 실질적으로는 정책을 수립하고 하부기관을 지휘 감독하는 조직이다. '조선기독교도연맹'은 기독교 각 파의 교직자들과 교인들을 망라하여 조직한 단체로 1946년 11월 28일 창설된 '북조선 기독교 연맹'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이 단체는 1960년대에 들어 표면적으로 활동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가 1974년 2월 4일 남한의 당시 상황에 대한 비난 설명을 발표하면서 부터 '조선기독교도연맹'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 단체는 70년대의 남한의 정치상황과 관련된 많은 비난 설명을 발표하면서 활발한 대외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1974년 8월에는 세계교회 협의회(W.C.C)에 가입 신청을 하기도 하고 아시아 기독교 평화회의나 세계 기독교 평화회의 등에도 참가하여 국제적으로 자신을 확인 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1981년 11월 3일부터 6일까지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조국통일 해외 기독자회'를 내세워 '조국 통일을 위한 해외동포 기독자간 통일대회'라는 모임을 개최하고 1982년에는 핀란드의 핼싱키에서 같은 명의의 제 2차 회의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1986년에는 세계교회협의회가 주선하여 스위스 글리온에서 개최된 남북한 기독교 대표자 회의에 중앙위원회 위원 김재원 등 5명을 파견하기도 하였으며 현재 '조선기독교도연맹' 중앙위원회 서기장은 고기준 목사이다.
'조선기독교도연맹'은 중앙위원회와 시, 도위원회 및 산하에 50개의 반으로 되어있으며 중앙위원회에는 위원장, 부위원장, 서기장, 조직부, 국제부, 선교부, 경리부 기타조직이 있으며 회비(수입의 월 2%)를 내는 회원 6,000명중 최고 인민회의 시, 도의회의원이 90여명이라고 한다.
f. 출판서적: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성경과 찬송가는 북한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남한의 공동번역을 참고로 하여 1983년에 구약성경 1만부를 발행하였고 1990년에는 신약과 구약의 합본을 1만부 발간하여 사용하고있다.
찬송가는 1983년 가사만 적힌 찬송가를 1만부 발행하였으나 현재는 1990년 4월 해방전의 장로교의 찬송가를 토대로하여 401곡의 찬송을 수록한 찬송가를 1만부 발행하여 사용하고 있다.
g.신학원
① 신학원의 위치: 평양시 만경대 구역 건국동 33반
② 신학원 개교: 1972년
③ 신학원 학제: 3년간 교육후 졸업, 신규모집
④ 신학원 교수: 고기준 목사(72세) 김운봉 목사(69세)
김송무 목사(57세) 최인덕 목사(55세)
이성봉 목사(69세) 최태권 목사(47세)
최옥희 (여전도사)
⑤ 신학원 교과목 및 담당교수: 조직신학(고기준), 교회사(김운봉), 신약학(고기준), 예배학(김운봉), 실천신학(김송무), 교회헌법(김송무), 구약학(이성봉), 예배실기(최성봉), 교회음악(이성숙)
*최인덕, 최태권의 과목은 미상
⑥ 현재 학생은 제 7기생으로써 10명의 남학생뿐임


2. 북한의 종교정책


북한선교는 주체사상 김일성의 유훈통치와 같은 이데롤로기에 빠진 북한의 주민들을 기독교적 인간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위 그들이 말하고 있는 「공산주의적 새 인간론」은 무엇인지 알아야만 기독교선교에 의해서 하나님의 형사을 닮은 기독교적 인간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1)북한의 공산주의적 인간론
북한은 「사회주의 헌법」에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우리나라의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조선노동당의 주체사상을 자기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라고 하였다. 또 조선노동당의 규약에서도 "조선노동당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에 의해 창건도니 주체력의 혁명적 마르크스 레닌주의당이다"라고 하여 마라크스 레닌주의가 그들의 신념체계 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로보건데 북한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이것을 창조적으로 적용하였다는 「주체사상」을 그들의 교육이념으로 하고 있다. 그러면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이상적인 인간상은 무엇인가?
마르크스는 "인간은 충분한 인간이 아니다"는 것을 말한다.그가 본 인간은 소외되고 비인간화된 존재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외의 개념은 마르크스가 독창적으로 창추한 것은 아니다. 에릭 프롬(E. Fromm)에 의하면 18-19세기 서구에 있어서는 소외라는 말이 그 시대의 공허와 무기력을 비판한 말로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 였다. Johann W. Goethe에서 B. Spinoza에게로 전해졌고, 다시 이 상을 Hegel에서 Marx에 와서는 사회비판의 기본사상으로 크게 문제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소외는 어디서 오는가. Marx는 자본주의 사회구조 때문에 인간은 인간은 자기자신으로부터, 사회로부터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소외를 극복하려면 우선 소외를 발생시키는 세계를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기초로 하는 사회구조를 변화시켜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Marx에 의하면 소외된 인간은 스스로가 그 소외의 상태에서 해방된 가능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 이외의 어떤 도움이 필요 없다. Hegel의 변증법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그 소외는 발생을 위해서 사실 필요불가결한 긍정적 의미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므로 Marx의 인간관은 궁극적으로 말해서 낙관적인 인간관이다. 그것은 소외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도움없이 스스로를 소외의 상태에서 구원해낼 수 있는 인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Marx의 근본적인 인본주의가 나타난다. 그의 가르침은 성경의 가르침과 정반대에 위치해 있음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성경의 인간관은 절대적으로 비관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Marx의 이론에 근거를 두고있는 붃한의 헌법 제39조는 「국가는 사회주의의 교육학의 원리도 후배들을 사회와 인간을 위하여 투쟁하는 견결한 혁명가로 지.덕.첼,ㄹ 갖춘 공산주의적 새 인간으로 키운다」로 규정한 것이다. 북한이 자주 사용하는어휘, 즉, 「공산주의적 새 인간」, 「전면적으로 발전된 새 형의 인간」등은 현대공산주의의 사설이므로 전혀 놀라거나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다.북한이 말하고 있는 주체사상이라는 것은 이러한 공산주의적 인간관을 북한식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북한의 종교관
북한의 종교관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종교관을 기초로 하고 있다. 첫째, 마르크스는 종교를 하나의 이론(Theorie)이라고 했다. 이론적이라는 말은 결국 종교가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성이 없기 때문에 무가치하다는 것이다. 그는 "종교는 모든 인간 지능의 행위와 같은 일종의 환상이며 현실적인 가치가 없는 죽은 사물과 같은 것이며 일종의 미친 행위이다"
둘째, 종교는 관념(Ideologie)이다. 마르크스는 "물질의 힘은 그 물질의 생산 여하에 따라서 스스로 인간을 독립적인 존재로 만들어 간다. 그런데 이 물질의 힘을 조종하고 지배하며 물질의 생산 양상을 조정하는 것은 곧 정치 또는 법률이라는 형태안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서 물질의 가치를 무시하고 지나치게 정치적인 것으로 또는 류법적인 것으로 흐르게 되면 그것들은 내용을 잃은 이데올로기로 탈바굼할 것이며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맹목적인 소위 인간의 양심을 구속하며 드디어는 철학 또는 종교라는 양상으로 변질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종교를 「일종의 현실생활에서 사출된 현상」이라고 한다. dl 현상이 우주를 성화하고 의롭게 만든다고 할 때 소위 「종교적 양심」으로 나타나며 특히 이런 현상은 부루조아 사회에서 전혀 노동계층과는 관계없이 하나의 관념으로 머물고 만다.
셋째, 종교는 일종의 현상(Phanomen)이다. 현상이란 플라톤에 있어서는 영원히 불변 부동하는 이데아의 세계에 반하여 현실의 때와 장소에 반하여 생성소멸하는 세계를 총칭한 것이고, 아리스토텔스에 있어서는 반대로 현상이란 문자 그대로 존재자의 나타난 모양으로서 현상을 떠난 본체 그 자체는 볼 수 없다고 한다.임마누엘 칸트는 1786년 발표한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원리라는 저서에서 현상학이란 말을 사용했다. 칸트에 의하면 현상이란 어떤 가상이나 환상과는 달리 경제적인 실제라고 강조하면서 물질의 운동이나 정치표상의 형식 또는 양상에 관계시켜서 「외부적인 감성」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즉 「나타난 모양」이라는 의미보다도 「구성된 모양」의 의미를 더 많이 가진다. 이것이 막스의 현상론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막스가 더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헤겔의 현상개념이다. 그는 1807년에 「정신현상학」이라는 책에서 로고스, 이념, 우주이성등으로 불리우는 절대정신을 가정하고 세계는 이 절대정신이 변증법적 도식에 따라 발전하는 모양으로서 현상학은 이 정신의 발전을 기술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종교는 하나늬 현사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종교는 아무런 진리도 소유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의 소산이며 극히 인간적이고 의미있는 정신적인 현상의 실현이다.
넷째, 종교는 대중의 아편이다. 이 말은 막스가 한말은 아니다. 그 당시 반종교인들 사이에 유행하던 말을 막스가 인용한 것이다. 아편을 종게 사용하면 약효를 낼 수 있지만 여기서 강조된 아편은 중독성을 지닌 마약으로서의 아편이다. 종교가 아편이라는 것은 「종교」그 자체가 아편처럼 마약성이 있으니까 아예 접근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마르크스의 종교개편에 관한 첫 번째 명제는 「사람이 종교를 만드는 것이지 종교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엥겔스는 이에 더 부언하여종교는 인간성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관하여 인간이 잘못 생각하는 관념으로부터 생겨났다고 한다. 인간자신이 종교의 내적기원 이라고 하면 외적기원은 인간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전쟁이나 천재지변등 예외적인 사태로 인해 고통당하는 것 이상으로 자본주의의 맹목적인 세력에 의해 일반대중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 때문에 종교가 발생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공포가 신들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 종교비판은 모든 비판의 전제조건이 된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종교비판은 비판의 한계를 넘어선 종교부정이요, 종교의 핵인 신의 추방이다. 또한 종교의 민중아편설은 기독교 인물사에 역사적, 과학적 연구가 빈약한데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변증법적 유물론은 무신론의 귀결이며 체계화이다. 마르크스주의의 무신론은 「요청적 무신론」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이 인간안에 심은 종교심의 자연적인 충동을 부인한다.
그러므로 북한의 종교관은 이러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초한 무신론적 기초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김일성은 「김일성 저작선집」제1권에서 "종교는 일종의 미신이다. 예수를 믿든지 불교를 믿든지 그것은 본질상 다 미신을 믿는 것이다. 종교는 역사적으로 지배계급의 수중에 장악되어 인간들을 기만하여 착취, 억압하는 도구로 이용되었으며 또 근대에 들어와서는 제국주의자들이 후진국가 인민들을 침략하는 사상적 도구로 이용되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종교를 "민중에 대해 반동적이며 비과학적인 환상을 주는 세계관으로 정의하면서도 북한은 김일성의 유일사상을 종교화 하여 북한주민을 옭아매고 있다.


3)김일성 우상 종교화
북한은 종교는 역사적 산물로서착취제도가 없어지면 종교의 사회적 근원도 없어진다고 규정하고 사회주의 제도를 반대하는 소수의 악질 종교인에 대해서는 독재를 실시했다고 맗ㅁ으로서 북한지역에 남아있는 종교인들에게 온갖 박해와 탄압 그리고 말살 행위를 자행했음을 시인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북한은 당국에 의해 공식 발행하는 책자나 신문, 잡지를 통해서도 종교란 용어는 나타나지 않게 되었으며, 북한측의 유일한 연감으로 볼 수 있는 (조선중앙연감)에서도 당, 사회단체의 항목속에서 종교단체의 이름들은 의용단체를 제외하고는 전혀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모든 종교들을 말살하면서 한편으로는 김일성을 신격화 시키고 우상화하면서 종교로 대치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에 대한 신격화는 개인의 인격에 대한 신격화로부터 역사여정, 유적조작, 상징뭉 건조등 모든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이것이 개인숭배운동으로 변하게 되고 개인적인 영웅시에서 초인간적 신으로의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 김일성의 사후 그의 유훈을 통한 불사의 정신으로서 그들 인민과 함께 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3. 북한의 정치현실


북한의 1948년 8월 25일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실시하고 이를 통하여 9월 3일에는 북한 단독으로 제정한 북한 헌법을 공식 채택한 후 이어 9월 9일에는 김일성을 수상으로 하는 이른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수립 선포했다. 그 후 1950년 6월25일 북한은 남조선 해방이라는 미명아래 불법남침을 감행한 것이 결국 사상적으로 양분된 남북한의 분단을 심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 지리적 환경과 행정
북한은 북쪽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소련이 국경을 접하고 남쪽으로는 255㎞의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남한과 대치되어 있으며 동과 서는 각각 바다에 접하고 있다. 위도상으로는 북단은 북위 43°036. 남단은 북위 37°41, 0임 동단은 동경130°13. 서단은 동경 124°11, 0이다.
면적은 약 12만 2천㎢로 한반도 전체 면적 22만 1천㎢의 약 55%에 이른다. 북한의 지세는 전체면적 약 80%가 펑균해발 2천m의 높은산 60여개로 된 산악지대이고 나머지 20%는 강하천이 잘 발달된 평야지대로 잘 구성되어있다. 특히 북한에는 우리 민족의 성산이라고 했던 한반도의 최고봉인 백두산(2,744m)과 세계적인 명산인 금강산이 있는 지역이다.
그리고 북한의 행정구역은 1948년 정권수립 당시 분단이전의 행정구역 이전에 따라 6개 도, 9개 시, 89개 군으로 기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1949년도부터 지금까지 무려 수십차례에 걸친 행정구역개편을 실시하12여 현재는 1개 특별시 (수도평양), 2개 직할시, 9개 도, 19ㅐ 시, 37개 군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인구는 1986년말 현재 약 2천 19만명으로 추산되며 인구 증가율은 2.2%로 추정된다.  어으로는 동부지역이 산악이며 서부지역이 평야로 형성되어 있어 전체인구의 59%가 이 지역에 편중되어 있으며 도시인구와 농촌인구의 비율을 보면 47.5%대 52.5%로 농촌인구가 도시인구보다 약간 더 많은 실정이다.
그리고 북한의 행정부 구성은 국가의 수반이며 주권을 대표하는 주석은 최고인민위원회에서 선출된 이래 김일성이 계속 맡고 있다가 그의 사망후 아직은 공석이다. 하지만 조만간 김정일이 승계할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행정부 구성은 중앙인민위원회란 최고 지도 기관과 행정직 집행기관인 정무원의 2중 구조로 조직되어 있는데 중앙인민위원회 위원들은 주석의 추천으로 최고인민위원회에서 선출한다. 또 중앙재판소의 판사는 최고인민위원회의 상설회의에서 선거하거나 최고인민위원회의 주석 잋 중앙인민위원회가 책임을 지게 되어있어 있어서 사실상 독립성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북한은 단일 독재체제하에서 개방되기가 심히 불투명한 가운데 있지만 국제 정세의 추세에 따라 문화교류 등 대화창구를 점차 넓혀가지않을 수 없으리라는 전망에 따라 선교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


2) 통치체제의 특수성
북한의 정치 체제는 40년간 일관된 노동당 1당 독재체제이다. 특히 김일성 일인이 40년간 통치했고 김일성부자 세습체제를 구축했으며, 김일성 주체 사상을 유일한 지도 이념으로 삼고있다. 그리고 현재에도 김일성 유훈통치라는 사상으로 그 세습을 이어가고 있다.


3)북한의 경제현실
북한은 1946년부터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 명의로 종래의 사유재산 중심의 경제제도를 사회주의 체제로 개혁하기 시작했다. 1946년 3월5일 토지개혁을 실시한데 이어 같은 해 8월 10일에는 광산, 철도, 체신, 은행등 국가 주요산업을 국유화하여 민간주도형 경제체제를 생산수단의 사유를 인정하지 않는 집단, 또는 국가주도형 경제체제로 전환하였다. 따라서 1958년 8월경에 이르러 모든 사유재산 영역이 소멸되었다. 북한의 경제체제는 1972년 12월에 새로 제정된 사회주의 헌법에 의해 명확히 나타나고 있다. 이는
첫째, 생산수단에 대한 사유재산 불인정
둘째, 노동참가의 의무화
셋째, 계획경제 실시
넷째, 세금제도 폐지
다섯째, 무역의 국가 독점이다.
이들에게 급겨한 집단주의적 경제제도를 형성한 과정에는 많은 부작용이 따랐다. 그리고 북한의 GNP를 서방의 개념에 따라 추게해보면 1986년 현재 1,735억불 정도 이고 1인당 GNP는 860불 수준인데 1992년 이래 계속되는 가뭄과 홍수로 이제는 서방과 한국의 도움이 아니고는 굶어 죽어을 수밖에 없는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김일성은 살아 생전에 쌀은 곧 공산주의다고 말했지만 오늘날 북한은 이 쌀이 없어서 나라가 파탄날 지경에 까지 이른 것이다.

 


제4장. 북한선교를 위한 성경적 신학적 기초


1.성경적 기초


전장에서는 우리가 선교하고자 목표하는 북한에 대한 개괄적인 현실을 살펴 보았다. 이것은 우리가 북한을 선교하는데 지금까지 방해물로 작용 해왔다. 그리고 그 난관은 매우 골이 깊고 봉우리는 넘기 힘들었다. 70년대를 지나 80년대 그리고 90년대를 지나면서도 구체적인 선교전략을 수립하기조차 힘들었던 것은 그 만큼 북한 지역이 폐쇄적이고 장애를 가지고 있는 곳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장에서는 이러한 걸림돌을 뚜어 넘어 새롭게 선교의 장을 펼칠 수 있는 전략이 방법이 있는지 성겨을 통하여 찾아보려고 한다.


1)구약에서의 근거
기독교 선교는 성경에 뿌리를 박고 있다. 성경에서 우리는 선교의 메시지와 명령과 동기와 방법론을 끌어낸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선교운동은 전혀 의미가 없다. 먼저 구약의 선교론에서 중요한 이슈는 『구약에는 '타문화전도'라는 관점에서 선교가 있느냐』의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 2가지 반대되는 견해로 나눌 수 있는데 한팀(화란의 선교학자 블라우, 독일의 신학자 겐시헨과 한)은 구약에는 선교 명령이 없다고 하며, 다른 한팀(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과 일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구약에도 선교의 사상이 나타나 있다고 믿는다. 특히 순두클러(Benkt Sundkler)는 「구약의 선교는 구심적이요, 신약은 완성적」이라고 주장한 최초의 학자이다.
미국 기독교 개혁파의 리더 Richard R. De Ridder는 그의 저서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에서 구약의 선교를 생각하지 않고는 신약의 선교는 불가능하다고 함으로서 선교에 있어서 구약과 신약의 연속선을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구약성경은 해외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의미에서의 선교활동은 없으나 하나님께서 온 세계 민족중에서 그의 백성을 불러 모으신다는 사상은 창세기로부터 말라기까지 나타난다. 이러한 구원의 범위의 세계성이 곧 구약선교의 뿌리이다.아브라함의 소명은 구약에 나타난 첫 선교의 명령이다. 창세기 11장까지는 전세계의 하나님을 기록하였으나 12장 부터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선택하시는 하나님, 즉 세계주의(Universalism)에서 특수주의(Partcularism)로 전환한다. 아브라함은 구언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선교적 선구자는 아브라함이라 할 수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은 '모든 족속의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어 하나님께서 인류를 향한 구원사의 시발이 된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선구적 선교사'로서 일컬음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출애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부르신 것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선교의 절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왕같은 제사장의 나라로 형성되는 중요한역활을 한 인물운 모세이다. 근대 선교학은 모세를 해방신학의 대표적인 인물로 부각시키지만 구약 신학자 로올리(Rowley)도 모세를 "우리가 아는한 최초의 선교사"로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선교목표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곧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한다고 볼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모든 열방의 통치자가 되심을 선포하는 사명을 부여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구약의 선교적 개념 가운데 역사서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록이라면 예언서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세상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해준다. 특히 이사야서에서 사렙다 과부에게 베푼 엘리야의 이야기(왕상 17:2-24), 수리아 장군 나아만을 전도한 이스라엘의 계집종 이야기(왕하 5:25)는 기독교 신자의 현존을 통해서만 전도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 사회에서 무명의 평신도가 입으로 증거한 구약의 선교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서에서 선교사상의 절정은 솔로몬의 성전 봉헌기도 가운데 잘 나타나고 있다. 그의 기도에서 성전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만민의 집"으로 언급된 것에 유념해야 한다(왕상 8:41-43). 따라서 이방인들도 성전에 나아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선포하고 불신자와 이방세계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심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의 약속과 미래의 영광을 보여주는 미래 지향적 선교개념이다. 이 희망은 하나님의 나라가 '샬롬'을 향하여 나아가는 중요한 선교의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2)신약의 선교기초
신약성경은 구원의 복음을 온 세상에 알리는 선교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이 예언한 메시야는 예언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으로 세상에 오셨다. 선교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보내셨으며(요 3:16) 또한 이 예수는 그의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는 명령을 하신 후 승천하셨다. 승천 후 제자들은 요엘의 예언대로 성령에 충만하였으며(욜 2:28-32), 이 성령은 선교의 영으로서 제자들로 하여금 구원의 메시지를 온 세상에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요하네스 블라우는 요한복음서 역시 다른 복음서들과의 비교선상에서 그 자신의 특유한 위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특히 요한복음 20 : 21- 23을 언급하고 있다. "요한은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것과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신 일 사이의 연속성을 지적하고 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이끄시는 대로 그의 구원 활동에 쓰여지는 하나님의 군병으로서 하나님의 구원계획 안에서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것이다"고 했다. 어찌 되었건 이러한 진술에서 드러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데 있어 첫째 되는 가장 중요한 전제가 된다는 것과 둘째로 성령의 은사가 주어짐도 오직 만국에의 복음전파 때문이라는 것이 블라우의 주장이다. 성령안에서의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의 영원 임재는 제자들로 하여금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할 임무를 수행 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그리스도 자신이 성령을 통하여 지금도 선교하고 계시다는 명백한 진술이 되며, 그가 제자들에게 선교를 명하시고 성령을 또한 선물로 주셨다는 것은 제자들에게 선교를 맡겨 버리셨다는 뜻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 성령을 통하여 복음전파의 사역을 담당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성령의 신학을 보여주는 것이 요한복음서 인 것이다.
제 4복음서인 요한복음에서는 특히 인자의 선재성이 강조되고 있다. 즉, 人子는 하늘에서 선재하였고 하늘로부터 세상에 내려왔으며 그 하늘로 올라가는 자이다.(3 : 13 ; 6 61) 이같은 표현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언급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3 : 16f ; 16 : 28}.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이 언급되었듯이 人子의 영광도 언급되엇다(12 : 23 ; 13 : 31). 1 : 49-51에서 예수는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나다나엘의 고백을 받아들이면서 마가복음 14:61f에서처럼 人子에 관한말로 대답한다. 후에 예수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를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 : 15f.) 人子와 하나님의 아들을 동일시하는 가장 명확한 구절은 5 : 26f.이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 됨을 인하여[그가 人子이기 때문에]그에게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人子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신적인 본성을 공유한다. 또한 이 본성은 니고데모에게 언급 하였듯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인자의 권리와 역할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준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다니엘서에 약속된 그 메시야로서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하여 인자로서 오셨으며 결국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또한 이 사실을 그의 제자들에게 선포하라고 명하여 온 세상으로 가라고 파송하셨으며 성령을 선물로 저들에게 주셨다.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저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 하셨다. 이는 곧 예수 자신이 성령안에서 세계만국에 복음을 전하겠으며 사람들을 부르시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5)사도행전
사도행전은 누가복음과 같이 동일한 사람의 작품이다. 이 두성경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한 선교적 위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선교사역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고 있다. 누가는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또한 그 시대에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전해져야 할 것을 강조하고 따라서 "죄 사함을 얻게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온 족속에게 전파" 되는 일이 시급함을 전한다(24:47) 보쉬(David J. Bosch)는 용서와 결속이 누가복음의 선교모델의 핵심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누가의 선교신학의 특징을 여덟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연진은 몇가지로 요약해서 우리에게 전해준다. 첫째, 누가는 성령의 사역을 강조한다. 성령은 곧 선교의 영이시라는 것이다.
둘째, 누가는 선교에 있어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상호 협력하므로 열매맺게 됨을 강조한다.
셋째, 누가는 선교에 있어서 증인됨을 강조한다. 선교는 증언이며 선교사는 그리스도 부활의 증인들이다. 누가는 때때로 증인과 '사도'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했다(행1:2. 8; 10:41) 이상에서 본 것을 종합하면 선교는 곧 교회의 사역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교회가 이 사역을 수행해 나갈 때 핍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눅 9:51-19:40). 이러한 증거들은 선교가 곧 영적인 전투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있을 것이다.
사도행전은 선교의 교회 모델이다. 바울의 서신서는 복음을 철학적으로 변호하는 변증서가 아니라 선교의 기록이다. 따라서 신약성경에 나타난 선교사의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행동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선교사로서 바울의 활동과 그의 선교개념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은 성경 중에서 선교에 관한 가장 중요한 책이다. 사도행전은 "하나님의 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을 기술하였거니와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을 잘 알려주는 선교의 책으로 사도행전이 없으면 바울으 서신도 갈 이해될 수 없다.
사도행전에서 가장 큰 특징은 성교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중요한 선교전략으로는 첫째, 그룹위주의 선교전략 이었으며 (사도행전은 분명 선교에 있어서 그룹중심의 전략을 말하는 책이다. 사도 행전은 선교 방법과 개종을 3천명,5천명,다수, 많은 사람, 도시 및 가정단위로 말한다.)둘째, 사도행전의 전도는 동역의원리이다. (사도행전은 소위 "우리(we)"라는 표현이 나오는 곳에서 선교는 더 이상 신앙적 영웅의 개인위주의 선교활동이 아니라 팀선교이다.) 셋째는, 선교의 문화의 문제를 잘 이해하였고 넷째로, 대도시등 전략적 가치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였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바울의 선교는 도시 교회안 안디옥에서 시작하여 빌립보,데살로니가,고린도,아덴등 지방의 중심도시를 먼저 점령하였으며, 그 도시의 신흥 교회로 주변 지역을 전도하게 하였다.)또한 서신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선교의 개념은 선교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서신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이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게 된 궁극적인 목적은 회심과 교회 설립이며, 세워진 교회가 주안에서 바로서게 하는데 있었다.


2.북한선교의 당위성


예수께서 부활후 제자들에게 주신 계명은 선교의 대명령ㅇ다. 4복음서는 모두 선교의 대명령으로 끝나며, 사도행전은 대사명으로 시작한다는 것이 앞서 살펴본 내용이다. 대사명의 내용은 본문이나 저자에 따라 다른 시각에서 기록되었지만 요약하면 마가복음에서는 선교의 범위를, 마태복음에서는 선교의 권위를, 누가복음에서는 선교의 순서를, 요한복음은 영적자격과 요구를 각각 강조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명령은 단순한 권면이 아니라 명령이며 이 명령은 2000년 선교역사에서 선교의 중요한 동기로 여겨져왔다. 따라서 교회는 지역과 인종을 초월하여 선교사를 보내어야하며 교회를 설립하고 셰례를 쥬며 가르쳐야한다. 그러므로 이 명령에는 북한도 포함되어있으므로 북한도 복음선교의 대상으로서 우리가 순종해야할 땅끝이다. 그러므로 신구약의 선교적 사상을 토대로 이제 남북의 현실에 맞는 동족에 대한 선교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 것인지를 살펴보자.


1)전략적 측면
동족을 먼저 복음화해야한다는 것은 신구약이 동일하게 강조하고 있다. 신약성서의 복음서들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체로 '특선주의적' 바탕을 보여준다. 하르낙은 복음서에서 이러한 경향을 발견하여 자기민족에 대한 책임을 보여준다. 예수께서 누구보다 먼저 자기 민족인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였던 것이 드러나고 있고, 수가성에서 만난 사마리아여인에게도 "구원은 유대인에게 속해있으며"(요4:22) 또 열두 제자를 파송할 때도 "이방인의 길로 가지말고 차라리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10:5-6)고 하셨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이러한 말씀들이 선교의 개념이나 선교의 지역적 제한이라기 보다는 예수의 선교전략이요 또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때문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동족복음화 우선사상을 언약적 측면이 아닌 전략적 측면에서 본다면 선교의 출발점을 자기의 민족들로부터 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타당하다고 생가한 것이 틀림없다고 김명혁은 말한다. 이러한 예수의 모본을 따라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알고도(갈 2:8)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롬1:6) 그는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롬 9:3) 하였고, 로마서 10장 1절에서는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하려 함이라"고 고백하였으며 "그러므로 말하노니 하나님이 저희 백성을 버리시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머리이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나니....(롬11:1)라고 하였다. 진정 바울도 자기 민족이 먼저 구원 받기를 원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하면서 선교하였던 것이다. 또한 사도행전에서 나타난 선교의 구속명령을 보면 사도들이 따라야할 구체적인 순서가 언급되어 있는데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대와 사마리아로 가고 그리고 전세계까지 가도록 되어 있었다. 누가는 이 순서를 사도행전의 개요로 삼았으며 1장에서 7장까지 예루살렘에서의 복음전파를 기술하고 10장이하 부분은 온 세계를 취급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분명히 전략적 방법으로서 동족을 먼저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여야 겠다는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타문화 선교가 성서 전체의 선교사상이며 양자 동시 수행(Synchronization)의 명령이 주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 확실하지만 그러나 동족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선순위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2)북한에 대한 선교적 접근의 당위성
북한이 현실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어렵기 때문에 단순히 복음을 전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북한이 동족이면서도 장기간 분리 되었었고 또 김일성 우상화에 의해 철저하게 무신론적 이데올로기를 주입당해 왔기 때문에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 혹은 종교관에 있어 전혀 다른 문화권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즉 해외에 있는 한국교포들을 대상으로 교포교회를 세우는 방법과 같은 접근으로는 북한지역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기 어렵기 때문에 선교적 차원에서의 다가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때 선교를 위한 성경적 접근은 주님께서 보여주신 방법 "성육신"의 방법으로 해야한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하나님의 나라는 자신의 사역과 그리고 장차 그 나라의 왕으로서 등극하게될 보좌와 우주적통치를 포함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고난의 십자가를 받아 들이셨다. 그러나 그는 "메시야"라는 호칭을 거부 하셨고 오히려 "인자" 라고 칭하시기를 좋아 하셨다. 복음서 기록자들이 예수안에 우주적 메시야 의식이 있었지만 십자가와 부활로 그의 사역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그의 친구들이나 원수들이 그 의미와 범위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인자"라는 칭호의 사용이 가장 빈번한 것은 마가복음이다. "인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해를 마태복음에서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인자" 사상의 핵심은 "성육신"이다.
우리가 앞에서 복음은 희랍어로 '좋은 소식을 갖고 온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나 '좋은 소식'자체를 의미한다고 하는 것을 살펴 보았다. 이 좋은 소식은 신약성경이 중심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예수그리스도를 성육신, 생애, 가르침, 기적, 죽음, 부활의 승리들을 둘러싼 구원의 사건들이다. 즉 하나님이 역사에 찾아오셔서 죄악에 멍에를 메고 죽음의 공포속에 신음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허락하셨다는 것이다.(요 3:16) 예수그리스도 자신도 이 복음을 선포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다니가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며…'(마 4:23) 또한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의 소식울 제자에게 맡기고 이것을 모든 민족들에게 전파하라고 분부하셨다. "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하셨다 예수님은 이러한 명령을 명령으로서 끝낸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을 위한 "성육신"의 역사적 사건으로 이 세상에 들어오셨고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 들이셨으며" 그리고 선교를 위해 우리들도 그러한 삶을 살 것을 명령하셨다마태 복음 5장의 산상수훈중 의를 위햐여 핍박 받을 것을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북한선교를 위하여 어떤 자세를 취하여야 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바울은 복음을 거룩하게 맡겨진 것이라고(딤후 4:17)했다. 하나님이 맡기신 것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포해야만 하는 소식이라고 하였다. 그의 기본적 입장은 복음의 소식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누구나 이것을 들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며 (롬 1:13∼15) 우리는 이 소식을 나누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전 9:16) 당연히 북한도 우리가 전할 복음을 들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 안에서 결정적으로 구원의 시대를 문을 열며 이 시대에 누구든지 그를 주로 고백하고 믿음을 갖는 이들은 의롭다 여김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통해서 소외된 세상이 그와 화해할 길을 열어 놓으셨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는 이제 예수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과 가까워 졌다. 여러 가지 악한 힘에 종 노릇하던 우리는 이제 자유로움을 받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빚진자로서 예수의 모범을 따라 당연히 선교에 나서야 한다.


3.교회사적 측면에서의 당위성


조선에 대한 36년간의 일본제국주의의 지배가 끝나고 연합군의 승리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이 땅에서 사라진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연합군의 승리와 남한에서의 일본군의 철수의 대가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미·소 초강대국들에 의한 분토에 분할 점령이었다. 이러한 분할점령은 결국 국토뿐만 아니라 민족도 분열시켰다. 1948년 남북에 각기 다른 이념을 바탕으로한 정권들이 세워지면서 분열은 더욱 고착화 되었고 긴장은 더욱 고정화 되어갔다. 이러한 시점에서 교회는 이른바 "교회의 재건"이라는 장을 통해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이재건은 일면으로는 일제 말기 "조선교단"으로 통합되었던 각 교단들이 각기 다시 원래의 교단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다시 돌아온 선교사들까지 가세한 교권의 장악의 그 일차적 목적이 주어져 있었다. 예 붇한에서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국가와 교회 재건에 일하다. 실패하고 남하한 교회 지도자들 마저 가세하자 교권장악을 위한 위한 투쟁한 그 절정에 달했다. 선교사들이 자기들의 새로운 입지 확보를 위한 관여와 배후 조정이 사태를 더욱 어렵게만들었다. 경제적 기반이 약한 당시의 한국교회로서는 여전히 강력한 물적 기반을 가지고 군립해 온 선교사들과 제휴하지 않고는 교권장악이 대단히 어려웠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힘들이지 않고 상실했던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해방직후 교회가 재건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했어야 할 일 즉, 일제하에서 감당하지 못했던 민족사에 대한 잘못을 "공동으로"고백하는 일에 실패함으로써 교회우ㅢ 재건운동은 단순한 교권장악 운동으로 전락되고 말았던 것이다. 신사참배 반대를 위해 목숨을 걸고 항거하다 투옥되어 온갖 수난을 다 당한 출옥 성도들의 애끓는 죄책고백이 있었으나 이것은 신사참배 거붕운동 당시에도 그랬듯이 민족사적 반성에 근거한 죄책고백이 아니라
일본의 "신도"라는 우상에 절했던 것에 대한 단순한 종교적 죄책고백이어서 결과적으로 이들의 종교적 순수성은 바리새주의적 배타성이 교회를 분열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죄책고백의 실패는 결과적으로 교회내 친일세력의 청산을 불가능하게 했다. 이와 같은 교권장악 과정에서 친일했던 교권지도자들은 교모하게 시류를 이용하여 자기들의; 입지를 강화해 나갈 수 있었으며 선교사들은 자파 세력확장을 위하여 과거의 모든 비리를 덮어둔 채 이들마저도 끌어들였던 것이다. 선교사들을 배경으로하여 벌어진 신학적, 지방색적 분열은 결국 1945년 해방직후 남과 북의 교회들이 교회재건에서 공적으로 결의한 "통일된 조국과 통일된 교회"라고 하는 대의는 뒷전으로 밀쳐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북 5도노회나 남부대회는 민족해방과 함께 따라온 국토의 분단을 앞에 놓고 "교회는 남북이 통일될 때까지 기구적으로 하나로 남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었다. 글나 남한에서 정부도 ㅅ립하기 이전에 교회가 먼저 1947년 4월에 대구에서 2차 남부대회를 열어 1942년 일제로 말미암아 해체된 31회 대한 예수교 장로회를 승계한다고 선언함으로서 "통일된 조국과 통일된 교회"라는 민족사적 과제를 포기해 버렸다. 따라서 분단을 고착화 시키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따라서 해방직후 교회내에서 벌어진 교권 투쟁전과 그것으로 유발된 극단적 교파분열을 통해 결국 남한 교회마저도 4분5열 나뉘어지는 아픔을 겪게된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50여년의 긴 시간을 지나면서 어두운 역사를 뒤로하고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였다. 이것은 인간의 부족함과 지상교회의 불완전함을 아시는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이루어진 축복이다. 그래서 이제 어두운 역사를 뒤로하고 우리는 더울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와 자유로운 신앙 활동을 위해서 역사적 사명을 감당해야할 중요한 시점 에 서 있다.


4.신학적 측면에서의 당위성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시대의 민족과 교회의 사명은 통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으로는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지나온 반세기의 역사를 통해 읽을 수 있다. 1980년대 전 까지는 사길 정치적인 현실 때문에 논의 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문민정부를 이어 김대중 정권의 햇볕론으로 북한에 대한 개방의 움직임이 조금씩 활발해 지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북한선교에 대한 물꼬를 열도록 일차적으로 기여한 사람들은 재외 동포들이다. 특히 재미동포들은 미국의 시민권을 이요하여 북한을 방무할수 있게 되고 조금식 북한의 교회현실을 알려 주고 또 선교의 간접적 시도를 하게 되었다.
또 W.C.C1984년 일본 고잔 대회 이후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간헐적으로 북한을 방문하게 된다. 그러나 K.N.C.C가 1988년 2월 29일자로 '민족과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회의 선언'이 보수주의 교회로부터 많은 도전과 반대를 받게된다. 선교가 너누 급진적이고 좌경화 되었다는 것 때문이다. 그래서 이때부터 보수교회에서 복음주의적 선교의 기치를 내걸고 순수한 의미에서의 선교를 시도하게 되기에 이른다.
따지고 보면 선교에는 항상 핍박과 반대가 따랐고 억압과 국가적인 탄압이 있어왔다는 것이 성경의 증거이다. 그러므로 북한지역을 선교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해서 우리가 간과하고 지나갈 수 있는 자유란 없는 것이다.(행 13:48-52, 17:1-54, 18:1-11). 주지하다시피 최근까지 모든 공산주위 구가들에는 합법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아 금지 되어 있었으며 중국의 경우도 사실상 지금도 외국인에 의한 선교는 금지되어 있지만 직 간접으로 선교는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닫혀진 가운데도 열려있는 선교의 문을 찾아내어 다각도로 복음을 전할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다.


1)성육신의 복음
북한을 선교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그 곳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리가 견지하여 할 첫 번째 신학적 입장은 예수님의 "성육신" 사상이다. 메시야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하신 한정된 방법으로만 사용될 수 있는데, 이 길은 대리적인 고난과 죽음의 길인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의 종이기도 한 인자(人子)는 복음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하나님의 고난의 종이라는 사명과 함께 재림하실 인자의 사명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고 할 때 마태복음은 이러한 요소를 가장 잘 충족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당시에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던 서기관들의 가르침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는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 나라에로의 초청이었으며 선포는 종말론적인 메세지이지 묵시문학적인 것이 아니었기에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모든 설교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였다. 그리고 그의 모든 사역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이었다. 결국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선교사요 선교의 개척자라고 할 수있을 것이다. 즉 예수님은 이러한 선교의 사역을 수행하기 위하여 "성육신"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육신"은 바울의 고백처럼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제를 가지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빌2:6-8)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사건이다. 이렇게 자신을 비워 종의 몸을 입는 겸손과 낮아짐이 북한선교를 위해서는 더욱 필요한 것이다.


2)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그러면 우리가 북한을 선교하기 위하여 견지하여야 할 신학적 주제는 무엇인가? 그 둘째는 화해와 일치의 복음이다. 에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복음은 회개와 고난의 복음인 동시에 하나됨(통일)에 관한 복음이라고 할 수 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10:34-36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않으시고 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에베소서 2장 14절 이하에서 바울 사도는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이는 이 둘로 자기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 그리스도께서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되게 하시는 유일한 해결책임을 서신서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서로 화해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두 정권이 너무나도 오래고 골 깊은 원수의 골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복음 뿐이라는 것을 남쪽의 교회가 깊이 인식할 때에 북한 선교의 중요성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분단의 갈등과 적대감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의 화해와 일치의 복음 뿐 인 것이다.     


제5장. 북한선교의 실천문제


1.북한 선교의 시대적 상황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떼와 함께 한 북한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그는 뒤이어 올 가을이면 금강산을 관광할 수 있다는 희망찬 뉴스를 가지고 왔다. 그러나 이같은 희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동해상에 출현한 북한 잠수정과 무장간첩의 출현등 현재에도 남북의 화해와 일치는 멀기만한 것 같다. 그러나 각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연일 거듭된 정부의 정경분리 원칙 천명으로 햇볕론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고. 아무튼 시시각각의 긴장속에서도 상종가를 올린 현대 관련주의 주가상승과 현대그룹에 몰리는 금강산 관광 예약문의 폭주는 한국인의 영원한 과제가 통일임을 가르쳐 주는 것이 라고 생각되어 진다.
새정부 들어 햇볕론으로 대별되는 대북통일정책을 조율하고 이를 관장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강인덕 통일부 장관. 그가 지닌 25일 한기총 통일선교정책 위원회(위원장 박완신 교수)에서 주최한 6.25 제 48주년 특별강연회 「새정부의 통일 정책과 한국교회의 북한선교 방향」에 참석, 새정부의 대북정책을 설명하고 한국교회에 바라는 북한선교 방법을 제시했다.
강장관은 먼저 대북정책의 최고 책임자인 통일부 장관으로서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새정부의 대북통일 정책을 브리핑 한다.
그가 밝히는 새정부 대북정책의 목표는 평화·화해·협력의 실현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 또 이를 달성하기 위해 견지되는 새정부의 대북정책 3대원칙의 바탕에는 확고한 안보태세 확립과 그동안 통일과 관련하여 주로 논의됐던 북한 흡수논의를 배제한 남북연합, 그리고 우선 실천가능한 분야부터 화해·협력을 추진, 남북관의 신뢰를 구축하여 중단된 「남북기본 합의서」채제를 복원해 나간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강 장관은 또 대북정책을 안보와 협력의 병행 추진 바탕 위에서, 평화공존과 평화 교류를 우선 실현하려는 입장에서, 남북간 상호이익을 도모한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남북당사자 해결원칙 하에서, 결정과정의 투명성을 담보한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여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새 정부가 펼칠대북정책의 방향을 다섯가지로 요약하는 강인덕 장관. 남북관 대화를 통한 남북기본합의서 이해·실천, 정경분리 원칙에남북경협 활성화 남북 이산가족 문제의 우선 해결, 북한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대북지원 탄력적 제공, 당사자 해결원칙과 4자 회담등을 활용한 한반도 평화환경 조성이라는 다섯가지 방향이 그 핵심인데. 그의 이야기의 골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선 한국교회가 무분별하게 너무나도 북한지역에 교회를 건축하려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직접적인 북한선교보다는 우회적인 방법의 북한선교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교회의 대북지원은 상호주의와 연관해서는 안된다. 즉 대북 정책에 있어 정부가 정치적 연유로 적극 담당할 수 없는 부분(북한 지원)에 교회가 발빠르게 대처해온 점을 높이 평가하지만 이제는 그 방법을 달리하여 쌀이나 비료지원과 같은 단회적 지원 보다는 국수공장 건설, 종자 지원, 농업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 지원등과 같은 북한의 자립을 유도하는 프로젝트성 지원으로 대북지원을 변화해야한다는 것이다. 셋째, 북한선교방법면에 있어서도 직접적 방법(북한지역에 교회 건설, 선교사 파송)을 고집하지 말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할 것등을 권면하고 있다. 이는 그 동안 한국교회가 대중국 선교에있어 직접적인 선교를 통하여 득 보다는 실이 많았던 점을 거울 삼으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넷째, 강장관은 한국교회에 대해 조급증을 경계하라고 권면한다. 지원과 연계해 어떤 과시적인 성과를 기대하면 일을 그르치기가 쉽다고 이야기 한다. 강장관에 이어 박완신교수(관동대)는 강장관과 같은 주제를 가지고 보다 학적인 접근을 시도 했는데, 그는 우선 새정부의 대북, 통일 정책이 남북 기본합의서의 이행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점을 높이 평가하며, 특히 새정부가 표방한 정경분리 원칙이 남북관계 개선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긍적적인 평가를 한다. 아울러 북한의 라디오, TV등 북한언론매체를 개방, 북한고나련정보의 공개확대를 천명한 조치를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통일에 크게 기여할 조치라고 환영한다. 진정한 사랑으로 북한동포를 돕는 것이 북한선교의 지름길이라고 그는 언급한다. 이는 곧 드러내지 않는 꾸준한 사랑의 지원, 그리고 임기웅변이 아닌 또 소영우주의나 전시효과를 노리는 일회성 사업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북한선교라고 말했다. 이점은 현실적으로 한국교회가 주지하고 인식해야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교회의 선교가 무조건 정부의 이야기만을 듣고 실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교회는 이 시대적 상황과 요청에 부응하는 선교전략을 수립하여 이를 실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작금의 북한 선교 현실을 알아보고 나아가 구체적인 전략들을 살펴 보도록 하자.


2.북한선교의 현황


1)선교단체 현황
최근들어 남북화해무드를 타고 1988년 이후 북한선교를 담당하는 선교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물론 향후 북한을 복음화 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긍적정인 측면이 많다. 그러나 난림에 따른 부정적인 면도 에상되는데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남쪽 교회들의 교파주의가 그대로 북한 지역에 생길까 하는 것이다.
첫째 설립 연대순으로 살펴보면 1980년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는데 1980년 이전에는 방송국 2개와 교회중심의 선교단체가 3개 독립적인 선교회가 2개로 모두 6개 였다 이들 중에는 방송국 외에는 그 구체적인 활동의 성과나 괄목할 만한 열매도 이야기 하기 어렵다.
그리고 1981년 이후 현재까지 14개 단체가 되었는데 교회중심 단체 4개와 10개의 독자적인 선교단체가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둘째 이들 선교단체 대부분은 서울과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들 역시 방송선교외에는 직접적 선교활동은 두드러지게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 없다.


2)북한지역교회 현황
현재 북한에 교회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숫자는 북한정부가 정책적으로 운영하는 교회나 신학교 외에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고기준 목사의 설명대로 라면 가정교회 형태로 적게는 7-8명 많게는 30여명이 모이는 곳이 북한전역에 산재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교회의 현실을 다르게 보는 시각도 있다. 즉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 즉 북한의 모든 보이는 교회는 선전능 위해 날조된 것이므로 정확한 현황 파악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을 탈출한 난민이나 중국 조선족신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 보다도 훨씬 많은 가정교회 신자들과 비밀 집회소가 있다는 것이다. 이로 종합해 보건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옛날 엘리야 시절에 남겨놓은 7000명의 진실한 신자들 처럼 그루터기로 존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란 추측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무엇보다도 직간접적으로 이들에 대한 현황을 파악할 정보력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본다.


3.북한 선교의 구체적 실천방안


1)제1단계
한국의 교회는 북한이나 북한의 교회들에 대해 부정적 측면에서와 긍정적 측면에서 보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그래서 사실상 북한교회에 대한 통일된 전략을 가지기가 어렵다.그런 가운데서도 1980년 이전부터 방송을 통한 선교는 꾸준하게 이루어져 왔고 열매들도 많음이 보고되고 있다. 특히 극동방송 아세아방송은 지난날 중국이 개방되기전 중국의 동북3성에 있는 176만명의 조선족 동포들이 "어머니 방송'으로 칭하면서 신앙을 지키는 일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로 보건대 현재 북한 지역에서의 유일한 선교 메시지의 선포는 전파를 통한 방법 뿐임을 알려준다. 둘째 방법으로는 문서를 통한 방법이 있겠는데 현재까지 풍선을 통한 전달, 중조 국경에서 이루어지는 지원물자속의 성경반입, 그리고 조선족 동포들의 북한내 친지 방문을 통한 전달 방법등이 은밀히 행해지고 있다. 이러한 방법들은 북한당국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은밀하게 행해져야 하기 때문에 단기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다. 그러나 구 소련이나 동구 공산권 국가에서 보듯이 서방의 교회들이 은밀하게 지원했던 지하교회나 성도들이 개혁의 구심점이 되고 결국 개방으로 나아오게하는 원동력이 되었듯이 북한의 지하교회에 은밀하게 지원하는 사업은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2)제2단계
2단계 전략으로는 남한의 모든 교회들이 힘을 한데로 모아 북한의 당국을 설득하고 남한의 정부관계자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북한의 유엔 가입 이후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고립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무조건적인 종교탄압은 점점 하기 힘들 것이다. 그들의 헌법도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는 이상 남쪽의 교회들이 사랑을 많이 베풀어서 종교가 국가사회발전에 도움이 훨씬 많이 된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앞서 우리가 살펴본대로 북한의 식량난을 돕기위한 여러 가지 지원을 하였지만 이제는 그기에서 한 걸음 더나아가 국수공장을 세워준다든지 종자개량을 도우든지 의약품공장을 세우는등의 프로젝트성 지원사업을 많이 벌여야한다. 이는 현재 유엔의 지원하에 벌어지고 있는 나진 . 선봉지역의 개방과 투자지역선정 그리고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사업을 통한 북한투자등과 연계해서 한국교회가 공동으로 후원하고 헌금해서 사업을 벌이도록 기구를 조정 혹은 통합해야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교단 교파를 초월한 연합이 이루어져야 다시는 북한땅에 남한 교회와 같은 교단경쟁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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