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 나타난 선교 정책및 방법

1. 예수님의 선교

신약성서의 선교는 예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사건에 깊히 관계 되어
있다. 전 세계를 향한 선교의 대명령은 예수가 고난의 메시야로서의 임무
를 완성하고 시편예언의 성취로서 사망을 극복하고 부활한 후에 제자들에게
준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예수의 공생애가 세계선교와 무관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수의 공생애 그 자체가 전세싸계를 위한 하나님의 선교였다. 예
수님의 사명은 "하나님의 인류구원의 약속과 성취"라고 신약성서는 일관된
증언을 한다. 그래서 역사의 종말이 오기 전에 하나님 나라 복음이 땅끝까
지 전해져야 한다는 예수의 선언은 부활후 주어진 세계 선교 명령 과 부합
된다.
즉 부활후에 제자들에게 준 선교명령은 예수의 공생애에 있어서의 전도와
제자들의 파견, 선교의 긴급성에 대한 언급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으며,
결코 독립된 단편적인 명령이 아니었다. 예수의 생애에는 일관해서 흐르
는 선교 정신이 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이스라엘 국경을 수시로 넘나들면서 선교를 하
셨다. 대표적인 경우는 사마리아 여행과 두로,시돈지방의 여행이다.
Ferdinand Hahn 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구원을 위해서 활동한 것은 곧 전세
계를 구원하기 위한 활동이었으며, 이방인에게 베푼 기적들은 이방인을 위
한 새 시대가 이미 예수 안에서 부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선교의 대명령은 예수님이 전인류를 위한 십자가의 고난과 영광의 부
활후 제자들에게 준것인데, 그의 구속사건은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사이의
장벽을 헐어버렸다.
 
2. 사도행전의 선교
유대인들은 지중해 연안 전역에 흐터져 살고 있었 으며, 바벧론 포로시
대에 시작한 회당 예배를 통해서 유대교 특유의 개종운동을 열심으로 수행
하고 있었다. 이 방대한 지역에 흐터져 있는 유대 교회당들은 초대교회
선교수행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이 회당들이 초대교회 선교의 매개
체의 역활을 주후 90년까지 감당했다.
사도행전의 선교명령(행1:8)은 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지리적 개념 위에
서 있다. 예루살렘,유다,사마리아,땅끝까지라는 순서를 강조한 것이라기
보다는, 모든 지역이 다 선교의 동일한 대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다. 여기에서 이방인 선교에 대한 명령이 구체적으로 그 실천에 옮겨지기
까지에는 네 단계의 준비과정이 있었다.
1단계는 오순절 성령 강림이며 모든 나라에서 온 유대인들과 개종한 이방
인들이 복음의 첫 열매가 됐다. 2단계는 스데반의 순교와 신자들의 피난
으로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갈릴리 전도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로서
이 지방에 교회가 성장해 갔다. 3단계는 바울사도의 소명과 회심사건으로
하나님은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다고 바울은 술회하고 있다.
4단계는 고넬료의 회개로 성령이 임하고 베드로는 그 가정에 세례를 주었
다. 베드로의 보고는 엘간의 논란후에 받아드려지며, 또한 그 결과로서
이방인선교가 하나님의 뜻으로 공인 받게 되었다. 이 사건은 예루살렘교
회 안에 이방선교의 문호가 열린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이방 선교에 진출
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오순절전에 제자들이 받은 선교의 멍령을 지상명령으로 생각하고 오순
절 후에 구체적으로 이방자딘 선교 계획을 수립하여 이 실천을 위하여 기도
하고 열의를 가지고 추진했다는 기록을 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오순절 후에도 주예수의 선교의 명령을 상기하고 이방선교에 노력을 경주했
다는 기록을 보지 못한다.
즉 예루살렘교회의 사도들의 소극적인 태도는 같았으나 성령이 사도행전
11장 18절까지의 준비단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관여할뿐 아니라 이방전
도의 주관자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사도들과 초대교회
는 이방선교에 민족적 우월의식이라는 제동을 걸어놓고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다.
선교의 명령은 이미 주어졌으나 사도들은 움츠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성령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안디옥 교회를 세우게 하고 바울과 바나
바를 선교단으로 내보내게 하므로 예수의 선교명령이 실천에 옮겨지게 했다.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이방선교에 파송한 것은 중요한 의의가
내포되어 있다. 첫째 기독교 교회사상에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땅끝까지 가서 선교하라는 명령이 실천에 옮겨지기 시작했다.
둘째로는 세계선교의 준비단계를 거쳐서 세계선교의 문호가 열린 후 이방
세계에 진출한 것은 ,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인 사도들이 아니라, 희랍문화
권에서 성장한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바울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문화충
격을 받지 않고 선교할 수 있었다.
세째로는 안디옥 교회는 기독교 선교사상에 피선교지 교회의 모델 케이스
로 연구될 수 있을 것 이다. 안디옥교회는 피선교지 교회에서 급속히 탈
피하여 선교하는 교회로 급성장했다.
3. 선교의 대명령
신약성서에는 네 곳에서 선교의 명령이 나온다. 마태28:18 - 20,누가
24: 44- 49, 요한 20:19 - 20., 사도행전 1:8이 그것으로 각기 강조점은 달
리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즉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온 세계에 복음을 전할 것, 메시지는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사죄를 받을 수 있으며, 끝으로 모든
백성으로 주의 제자를 삼아 그리스도의 거룩한 교회를 이룩하는 일이었다.
모든 백성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하므로 유대인과 이방인 선교가 다 동
시에 수행되어야 할 것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이중 특히 구체적인 선
교명령을 가진 것이 마태복음 28장 18 - 20절의 내용이다.
" 예수께서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가
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끝까지 항상 너희
와 함께 있겠다'하고 말씀하셨다."
이 글에는 일반적으로 네개의 명령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어 번역은
선교명령을 평명적인 4대명령으로 본다. 즉 가라 - 제자를 삼으라 - 세례
를 주라 - 가르치라 . 그러나 만일 "가서" 를 명령동사로 보지 않고 분
사로 본다면 세 구분이 된다. 즉 가서 제자를 삼으라 - 세례를 주라 - 가
르치라.
이것을 현대 교회에서는 전도와 교육이라는 2단계로 분류하여 결과는 가르
치라에 핵심을 둔다. 이것은 결국 목회의 2원론적 주장을 초래했다. 이
로 인해 교회의 전도와 교육 사이에는 이원론적 괴리가 생겼고, 통일적이고
효율적인 사명 수행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러나 희랍어 원문에 대한 연구는 선교의 명령이 단 하나의 명령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일한 목적을 나가타내는 명령은 "제자를 삼으
라"는 명령동사이고다른 동사들은 주동사에 소속한 분사동사이다. 즉, 이
를 정리하면 그러므로 너희는 나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므로, 모든민족을 제자를 삼으라.
즉, 성경본문의 목적이 모든 교훈을 지키게 하는데 있으며 따라서 기독자의
영적 성장이 궁극적 목적인 것같은 인상은 여기서 온전히 사라지고 "제자를
삼으라" 는 명령이 분명하게 그리고 보다 선명하게 나타난다. "나가서 "는
수단을 뜻하기에 명령이 되지 못한다. 세례를 주고 가르치라고 번역된 두
분사도 수단이지 결코 명령이 아니다.
4. 제자를 삼는 선교
예루살렘 교회의 외부를 향한 진출이, 비록 예루살렘과 유다와 갈릴리
그리고 이웃인 사마리아 지방에 거의 한정 되다시피했으나 ,그것도 성령의
능력에 의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고 그와
같이 예수도 교회를 세상에 보냈다.
성령의 능력을 받기 위해 기다리던 제자들은 오순절에 능력을 받아 예루살
렘 거리로 나갔으며 또한 유다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진출해갔다.
그들은 가서 세례를 주고 가르칠 뿐 아니라 주의 제자로 삼는 일에 전력했
다. 그들의 사귐은 예루살렘의 놀라운 사건이었으며, 구원받는 수가 점점
더해갔다. (행2:41-47)
성령의 역사는 분명코 하나님의 세계안에서의 현존을 의미하며, 또한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내의 활동을 말해준다. 성령의 개입과 인도로 초대교
회는 이방선교에 나서게 되었으며 예수그리스도의 특별계시로 인하여 바울
은 이방선교의 사도로 활동했다. 바울의 선교활동은 땅끝까지 나가기 위
한 활동이었으며,그가 복음을 전하여 세례를 주었으며 교회를 세우는 일에
전렸했다.
바울은 그 자신의 이러한 목적을 "내가 예수를 본받은 것같이 너희도 나
를 본받으라"(고전11:1)고 말하면서 선교의 대열에 참여 하여 고난을 같이
받으라고 권면했다.
 
5. 성장하며 선교하는 신약교회
했다. 또한 교회에서 집중적인 성경 공부를 시킨 것을 보게 된다. 이같
은 그의 활동은그에게 확고부동한 목표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복음을 받아드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를 믿고 "구원받을 뿐 아니라"
예수의 충성된 마제자요, 예수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능동적이고 책임적이
며 생산적인 회원이 되어, 주를 우니하여 고난을 기쁘게 받으면서 주의 일
에 초대교회의 교회성장은 제자를 삼는 일과 은혜 안에서의 성장을 , 즉 양
과 질의 관계,전도활동과 목회활동의 관계를 이원화 시키지 않았다.
또한 교회에서 집중적인 성경 공부를 시킨 것을 보게 된다. 이같은 그의
활동은그에게 확고부동한 목표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복음을 받아
드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를 믿고 "구원받을 뿐 아니라"예수의 충성된
마제자요, 예수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능동적이고 책임적이며 생산적인 회
원이 되어, 주를 우니하여 고난을 기쁘게 받으면서 주의 일에 또한 교회에
서 집중적인 성경 공부를 시킨 것을 보게 된다.
이같은 그의 활동은그에게 확고부동한 목표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복음을 받아드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를 믿고 "구원받을 뿐 아니라"예
수의 충성된 제자요, 예수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능동적이고 책임적이며
생산적인 회원이 되어, 주를 우니하여 고난을 기쁘게 받으면서 주의 일에
헌신하게 하는데 있었다. (빌1:29)
헌신하게 하는데 있었다. (빌1:29) 또한 교회에서 집중적인 성경 공부를
시킨 것을 보게 된다.
이같은 그의 활동은그에게 확고부동한 목표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복음을 받아드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를 믿고 "구원받을 뿐 아니라"예
수의 충성된 제자요, 예수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능동적이고 책임적이며
생산적인 회원이 되어, 주를 우니하여 고난을 기쁘게 받으면서 주의 일에
헌신하게 하는데 있었다. (빌1:29) 그들은 선교의 대명령에 나타난
유일한 목표인 제자를 삼는 일은 2 단계 작업이 아니라 계속적인 일관된 작
업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선교활동을 통하여 철저하게 예수의 제자를 삼는 운동을 했다. 그
는 복음만 전했을 뿐 아니라 그들 중 결심자를 얻고 세례를 주고, 그들을
모아서 주의 몸된 교회를 세웠다. 이처럼 그의 선교는 주의 제자를 삼는
일 뿐 아니라 교회를 신설하는 것도 전제했던 것이다.
여기서 질과 양의 문제는 사라지며, 전도와 목회임무의 이원론적 견해도
해소되었다. 바울에게 있어서는 목회는 선교의 결실이면서 선교를 전제하
고 있었다. 선교없는 목회와 목회없는 선교는 논의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
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안디옥교회의 선교는 이상적 교회상을 보여준다.
6. 결 어
성서적인 선교는 복음을 듣지 못한 지상에 있는 30억 인구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설득적인 선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선교명령과
사도들의 선교활동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범세계적 선교
활동의 실정을 이해하게 해 준다.
첫째로 모든 민족은 6대륙과 모든 도서에 사는 사람들을 만한다.
둘째,선교는 처음에 사도(유대인)들로 인하여 수행되었다가 (이방인과 유
대인 포함) 이방 기독신자(참이스라엘)가 이방세계에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
하였다. 그리고 불원간에 유대인은 이 선교의 대상에서 탈락됐다. 그
후 오랜 세월동안 그들은 선교의 대상에서 오르지 못했다. 이것은 성서적
인 의미에서 현대의 선교는 실질적인 의미에서 신약성서적 선교라고 할 수
없다.
신약성서의 선교명령은 지상의 모든 백성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오늘날
까지의 선교는 유대인을 완전히 제외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세계 선교는 반드시 범세계적인 선교로서 이스라엘 선교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성경, 빌립보 1장 2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