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디어와 페르시아어 성경번역선교사


헨리 마틴(Henry Martyn)



“인도를 위해 나 자신을 불태워 버리겠다.”



1812년, 겨우 31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던 헨리는 그 자신이 말한 그대로 인도를 위해 자신의 삶을 불태운 사람이었다. 동인도회사의 방해가 여전했지만, 인도에서의 선교사역에는 많은 자원자들이 줄을 이었다. 아무런 말썽 없이 인도에 선교사로 들어오는 길은 동인도회사의 전속 목사가 되어 들어오는 것뿐이었는데, 이런 전속목사로서 커다란 선교적 업적을 이룬 사람이 바로 헨리 마틴이다. 그는 1806년 인도에 도착하여 1812년 죽음에 이르기까지 매우 짧은 기간 동안만 사역했으나, 중앙아시아에서 활동한 선교사 중 최고의 성경번역가로 여겨졌다.



마틴은 영국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캠브리지의 수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였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 누이의 끊임없는 기도, 목사님과의 영적 상담,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 등을 읽고 난 후의 감동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하나님께 헌신하게 된다. 그는 브레이너드의 희생적인 선교사역에 큰 자극을 받고 캐리의 인도사역자 모집에 적극 응하게 되어 해외선교를 인생의 유일한 목표로 삼게 되었다.



마틴은 매일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기도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힘쓰기 위하여 마틴은 먼저 자아를 깨뜨리는 일부터 하였는데, 독신생활 역시 자신을 깨뜨리는 한 가지 방편으로 여겼다. 그는 “결혼의 안락한 생활을 원하는 모든 욕망으로부터의 해방”에 감사를 드렸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많이 일할 수 있는 독신생활”을 선택하였다.



1805년 영국 국교회 사제로 서품을 받고, 동인도회사의 전속목사로 임명받은 그는 1806년 인도에 도착하였다. 윌리암 캐리와 세람포 선교사들은 마틴의 재능을 알고 성경번역 사역을 권유하였다. 동인도회사 직원과 그 가족 목회를 하면서도 마틴의 관심은 인도선교였다. 그는 신약성경을 수백만의 아시아인들이 읽게 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 4년간 군대에 종군하여 복음을 전하면서 학교를 세우고, 동시에 신약성경을 힌디어, 페르시아어, 아랍어 등으로 번역했다. 1810년 중앙아시아의 열사의 기후를 이겨내지 못한 그는 힌디어 신약성경 출판을 앞두고 병이 나 치료를 하게 되었고, 이후 페르시아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페르시아어 성경번역을 완성하게 되었다. 1812년 건강이 다시 악화된 그는 영국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소아시아에서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 쓴 그대로 인도를 위해 자신을 불태운 선교사로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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