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도, 두 아내(게다가 자매)를 둔 야곱

창세기 29:1-30

 

+ 1절에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라고 되어 있다. '(여행)을 떠나(계속)'으로 번역되었는데, 원어는 '--' (נָשָׂא)이다. 원래의 의미는 '올리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손을 들거나, 얼굴을 들거나, 머리를 들 때 쓰이는데, 여기서는 '발을 들다'라는 표현으로 되어 있다. 야곱은 이제 새로운 기분으로 가볍게 '발을 높이 들어' 동쪽을 향해 달려갔다.

덧붙여서, 마찬가지로 '여행을 계속하다'라고 번역되는 히브리어에 같은 '--'(נָסַע)가 있다. 발음은 비슷한데 뜻이 다르다. 여기서 '--'는 천막의 말뚝을 뽑고 이동하는, '출발하다'라는 뜻의 동사이다. 야곱의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사망하여, 매장한 후 '(여행)을 떠나(계속)'(35:21)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נָסַע)이다.

 

+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이 그랬던 것처럼 '가다, 걷다' 라는 '-라후'(הָלַךְ)의 여행이 이제부터 야곱에게 있어서도 시작되는 것이다. 어떤 여행이 되어 갈 것인가. 아브라함, 이삭과는 다른 여행이다. 야곱의 '-라후'(הָלַךְ)의 여행을 통해 우리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보는 여행이 될 수도 있다.

 

1. 처음으로 속은 야곱

 

+ '야곱'이라 하면 속임수의 대명사이다. 보기 좋게 형 에서와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하나밖에 없는 축복을 자신의 것으로 해 버렸다. 그런데 야곱이 외삼촌 라반(어머니 리브가의 오빠)에 의해 속는 경험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게 된다.

 

+ 야곱은 밧단아람의 우물가에서 처음 만난 라헬을 자신의 아내로 삼으려고 라헬의 아버지, 즉 어머니 리브가의 오빠 라반을 칠 년간 섬겼다. 성경은 "야곱이 그녀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라고 적고 있다. 야곱은 자신의 평생의 파트너가 되어야 할 여자에 대해서 실로 건장하고, 또 진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 '라헬은 모습도 얼굴 생김새도 아름다웠다'라고 하는 것처럼, 야곱의 라헬에 대한 사랑은, 어떤 고생도 고생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기뻐, 수년의 세월도 단지 하루와 같이 생각되게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야곱의 사정일 뿐이었다. 두 딸을 둔 평화로운 라반의 가정에 야곱이 들어감으로써 예사롭지 않은 복잡한 환경을 실은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 라반의 시점에 서서 본다면, 그는 또 한 명의 자신의 딸(언니 레아)을 생각하는 훌륭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레아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생각하고 있던 것은 아버지 라반이었다. 그래서 라반이 야곱을 속였다는 것도 단순히 라반이 야곱과 같은 성격이었다고 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라반이 야곱을 속이게 된 사정을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라헬에 비해 언니 레아의 '눈은 연약했다'(29:17)고 되어 있다. 신공동역(新共同訳)'상냥한 눈(しい)'을 하고 있었다'라고 번역한다. 원어는 '라후'(רַךְ)라는 형용사이다. 조금 지나치지만 두 사람을 비교하는 부분을 두 성경에서 살펴보도록 한다. (성경책에서 이 부분을 특별히 강조하지는 않았다. 단순한 흥미본위이다)

 

신개역(新改訳):

"레아의 눈은 연약했지만, 라헬은 모습도 얼굴 생김새도 아름다웠다."

신공동역(新共同訳):

"레아의 눈은 상냥한 눈을 가졌지만, 라헬은 얼굴도 아름답고 외모도 뛰어났다."

 

+ 이상은 두 딸을 비교한 표현인데, 이것은 누구의 평가인지, 야곱이 본 주관적인 비교인지, 아니면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객관적인 평가인지 성경은 그것을 명확하게 하지 않고 있다. 형용사 '라후'(רַךְ)'연약하다, 상냥하다, 활기차지 않다, 나쁘다'라고 번역이 되는데, 같은 어휘라도 좋은 이미지에서는 '상냥하다'로 번역되고 나쁜 이미지에서는 '연약하다, 활기 없다, 나쁘다'로 번역된다. 어쨌든, 야곱은 라헬의 얼굴의 아름다움과 용모에 마음이 빼앗겨 버린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실은 하나님의 계획을 실현하고,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게 하는 요인 중에 하나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움직여지는 것이다.

 

2. 사람의 악을 불러들이는 불가측(不可測)한 하나님의 계획

 

+ 라반이 야곱을 속여 두 딸을 야곱에게 주는 것으로, 말하자면 야곱으로부터 많은 아이들이 태어난 것이 된다. 결과적으로 야곱에게 두 명의 아내, 그리고 각각 여종에게서, 12명의 아들들과 한 명의 딸이 태어난다. 하나님은 인간의 악(속이는 것이나 질투)도 하나님의 선으로 바꿀 수 있는 분임을 알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이 주는 것은 항상 좋은 것이지만, 하나님은 사람이나 역사를 이끌 때에는 청탁(清濁)을 겸비한 인간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다. 어떻게 해서든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어디까지나 얻고 싶어 하는 야곱의 타고난 성격이, 야곱으로 하여금 두 사람의 아내를 가지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실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들 인간의 생각이나 계획을 초월한다고 말해야만 한다. 예측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이 하나님에게 좌절하지 않는 자는 행복하다.

 

3. 29장에 보이는 강의형

 

+ 참고로, 29장에서 평소와 같이 어디에 강의형이 사용되고 있는지를 체크해 보도록 하겠다. 원문 안에 있는 강의형에 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경 자체가 강조하려 하기 때문이다. 29장에서는 6곳에서 이를 사용하고 있다. 빨간색 부분이 강의형, 피에르태이다.

 

신개역(新改訳)

(1) 라반이 야곱과 만났을 때

29:13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2) 야곱이 라반에게 속은 것을 안 후에

29:25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각주

29:27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29:28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27절과 함께 원어는 '채웠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 이상의 강의형의 흐름을 끌어당기면 어떻게 이 29장이 보일까. 처음에 라반은 야곱을 자신의 친척으로 대환영한다. 그런데 야곱이 라반을 7년간 모시고 정작 라헬과 결혼하게 되고, 그 잔치가 공식적으로 벌어져 막상 아침을 맞이해 보니 정작 상대는 라헬이 아니라 언니 레아였다. 레아와 하룻밤을 보낸 것은 법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 나를 속였습니까". 속았다고는 해도, 레아가 야곱의 아내가 되어 버린 것은 사실이며, 야곱에게 있어서 이것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일주일 계속 되는 혼례의 일주간을 보내는 것은, 레아와의 결혼이 누구의 눈에도 정식으로 인정되기 위한 것이었다.

 

+ 야곱은 라헬이 필요해서 라반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 즉 혼례의 주간이 지나고 나서 라헬을 아내로 맞이해 또 다른 7년간을 라반 밑에서 살게 되었다. 결국 야곱은 두 사람의 아내를 얻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을 속인 야곱이었지만, 여기에서 처음으로 외삼촌인 라반에게 속는다는 경험 속에서 하나님의 불가사의한 섭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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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속이다'라고 번역된 '--'(רָמָה)는 창세기에서는 이곳이 처음 나오는 어휘로, 게다가 1회뿐이다. 구약에서는 12번 사용되었으며, '속이다, 배신하다, 던지다(15:1)'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용어색인(사전)에서 이 부분이 사용되고 있는 부분을 명상한다면, 단지 '속이는 것'은 나쁘다는 것이라고 하는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보일 것이다.

 

+ 라반이 왜 야곱을 속였을까? 그 진의란 무엇이었는가?

야곱을 14년간 자기 밑에서 공일을 시키기 위해서였는가? 그렇다면 딸들은 아버지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라반의 주장은 그 곳 관례에서는 맏딸보다 먼저 딸을 시집보내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이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다른 남자보다는 친척인 야곱에게 두 딸을 시집보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눈이 나쁜 레아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즉 눈이 나빠서 아이를 데려갈 사람이 없는 것을 걱정했기 때문인가?

④ ①~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 진의인가?

 

어쨌든 라반이 취한 행동의 진의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야곱은 4명의 여자로부터 많은 아이들을 얻게 된 것을 생각한다면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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