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의 죽음을 계기로 묘지를 취득하려는 의도

창세기 231~20

샬롬선교회

 

불과 20절 안에 두 가지 사항이 있다. 하나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죽음이고, 또 하나는 사라를 매장할 묘지를 취득하려는 아브라함의 집념이다. 평생의 반려자를 잃은 아브라함의 슬픔과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아내를 매장하는 묘지 취득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생각하고자 한다. 참고로 전자는 단 2절뿐이고, 후자는 18절분에 걸쳐 기술되어 있다. 당연히 후자에서 말하는 것이 이 장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 사라를 위해 애통하고 눈물지은 아브라함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 그 사람에게 있어서 소중한 인물과 사별하거나 혹은 헤어지거나 하는 경험을 한다. 사람이 아니어도 애착이 있는 것, 어떤 입장이나 지위, 환경 같은 것이라도 그것을 잃는다면 그 나름대로의 슬픔이나 고통을 받는 것 이다. 그 중에서도 반려자의 죽음은 최고 수준의 고통을 초래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은 동서고금의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사라의 생애는 127. 사라는 아브라함의 배다른 남매이기 때문에, 태어나서 계속 아브라함과 함께 살아온 것이다. 언제 부부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소명에 응하고 아브라함이 75세 때 하란을 나와 가나안 땅을 표류하게 되면서부터 무려 62년간 신앙의 여정을 함께 한 것이 된다. 90세에 이삭을 얻은 이후로는 37년을 산 셈이다.

 

"사라는 헤브론에서 죽지만, 아브라함은 "와서 사라 때문에 한탄하고 울었다."(1)라고 나와 있다. ""라고 되어 있으니, 아내의 임종 시에 아브라함은 집을 떠났던 것처럼 보이지만, 中沢訳으로는 '나아가서'라고 번역했다. 덧붙여서, 신공동역에서는 번역하고 있지 않는다. 어쨌든 아브라함의 사라에 대한 이별의 아쉬움은 컸던 것으로 보인다. 히브리어 직역으로는 '그리고 왔다, 아브라함은 탄식하기 위해, 사라를 위해, 또 그녀를 위해 울기 위해'라고 되어 있다. '탄식하다'는 가슴을 치고 애통하는 '-파드(סָפַד)'라는 동사가 쓰인다.

 

기쁨도 슬픔도 모두 함께 해 온 배우자에 대해, 오랜 기간 자식을 얻기를 간절히 바랐던 반려자, 숱한 어려움과 시련을 함께 통과한 반려자였다. 또 어릴 적 고향일 옛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던 사라에 대한 슬픔의 눈물은 당연하고 자연스럽고 아름답기도 하다.

 

2. 사라의 묘지 취득에 대한 집념

 

그러나 3절에서 아브라함은 "그 죽은 자의 곁에서 일어나" 다음 행동으로 옮긴다. 여기서 부터가 23장의 중요한 부분이다. 남겨진 자로서의 의무가 있다. 그것은 사라를 매장하는 일이다. 4절 이후에는 묘지 취득에 있어서 그 방법에 대해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이 그곳에 살던 헷 족속에게 묘지 협상을 벌였을 때, 그들의 대답은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라고 매우 호의적이었다. 아브라함은 헷 족속에게서 인정받았던 존재였던 것 같다. 그들 중에 '하나님의 방백'(신개역),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신공동역), 히브리어로 최상급의 표현을 할 때에는 '하나님의'가 붙는 경우가 많은 듯하지만, 어쨌든 아브라함은 당시 사람들과의 사이에서는, 리더적인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덧붙여서 '방백'라고 번역된 명사 '네쉬-'(נְשִׂיא)'올리다, to lift up'이라고 하는 동사 '--'(נָשָׂא)에서 왔다.

 

이 장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토지수용 협상에서 햇 족속으로부터 여러 차례 '드린다'라는 말을 듣고도 아브라함은 정식 절차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묘지용 토지를 구입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아브라함의 집념이 대체 무엇일까? .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신앙의 증거로 묘지를 취득했다는 것이다. 한때 아브라함에게는 다음과 같은 약속이 있었다. 그것은 1513~16절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 땅이 자기 자손의 것이 되기 위해 이 묘지를 그들을 위해 준비해 두었다고 생각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네가 머물고 있는 땅, 즉 가나안 전역을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겠다'고 하신 약속 받았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그 땅에서 얻은 최초의 것은 묘지였다.

 

사라만을 위한 무덤이라기보다는, 사라의 죽음을 계기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앙의 증거가 될 수 있도록 묘지를 위한 토지를 취득하는 것에 매달렸다고 할 수 있다. 덧붙여서, 이 묘지에 매장되게 되는 것은, 사라를 시작으로, 아브라함,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 그들의 아들 야곱, 그리고 그 아내 레아, 아내 라헬의 아들 요셉이다. 요셉은 이집트에서 죽었지만, 그 유해는 이윽고 약속의 땅에 들어온 세대에 의해, 이곳에 묻힌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앙의 증거, 그것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약속된 가나안 땅을 떠나지 않는다. 이 땅이야말로 하나님이 나와 내 후손에게 주신 땅이기 때문이다, 라는 신앙의 표시였던 것이다.

 

3. 어휘의 문법적 시점에서의 뒷받침

 

아브라함이 집념하는 것에 대한 히브리어의 문법적 뒷받침이 있다. 그것은 히브리어 동사에 특유의 강의형(強意形), 이 묘지를 주고받을 때에 사용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번역된 성경에서는 그 뉘앙스가 전해지지 않는다.

 

(1) 3"헷 족속에게 말하여 가로되"

'-(דָבַּר)'의 강의형을 단순히 '말했다'로 번역하지 않고, '고하여 말했다'로 신개역은 번역했다. 신공동역에서는 '부탁했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아마도 이곳에서 특별한 생각과 결의를 가지고 상대방에게 말한 것을 알 수 있다.

 

(2) 7~8"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거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8절의 '말하여 가로되'라고 했을 때는 3절과 마찬가지로 '-(דָבַּר)'의 강의형이다. , 7절의 '몸을 굽히고''굽히고''--(שָׁחָה)'라고 하는 동사의 재귀형(再帰形)이다. 이것도 강의형이다.

 

(3) 12, 13절의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 백성을 대하여 몸을 굽히고, 그 땅 백성의 듣는데 에브론에게 말하여 가로되여기서도 '몸을 굽히고'7절의 '굽히고'와 같이, --(שָׁחָה)'라고 하는 동사의 재귀형(再帰形)이다. 그리고 13'말하여 가로되''-(דָבַּר)' 의 강의형이다.

 

이들 강의형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왜 이러한 교환에 강의형이 이용되고 있는가? 아마도 아브라함은 여기서 특별한 생각과 결의를 가지고 상대와 교섭하고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아브라함은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 없이 매우 신중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일이 진행되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묘지의 취득이 아브라함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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